내 안의 완벽주의
"직장에서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요."
의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의사 가운 안에 연한 회색 셔츠를 입고 있다. 나는 셔츠 칼라 부근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업무 특성상 일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즌이 있어요. 그때는 정말 정말 일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의 여유를 즐길 법도 한 데 저는 할 일을 찾아 방황해요. 문서함에 들어가서 아직 제게 배정되지 않은 공문이 있는지 막 찾아보고요, 제가 놓친 일은 없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피곤하고 힘들어요."
의사는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무척 초조해 보여요."
"하... 대체 왜 이럴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죠."
나는 양 팔을 약간 들어서 어처구니없다는 몸짓을 취했다.
"최근에 큰 변화나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나요?"
"아니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체중은 늘 신경 써요. 제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늘 그 안에서 몸무게가 변해야 해요.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언제 체중을 재나요?"
"아침에 한 번, 저녁 먹고 나서 한 번."
물론 거짓말이다. 저녁엔 서너 차례 이상 잰다.
"저녁을 먹고 재는 몸무게는 큰 의미 없는 거 아시죠?"
나는 순한 양이 되어 말했다. "네."
"일주일에 1번만 재는 건 어떨까요?"
"안돼요!"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루에 두 번 재는 것도 많은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하루에 한 번만 잴게요."
의사 맞은편에 앉은 나는 거절도, 수긍도 잘한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는 말이 맞겠다.
그러자 의사가 나를 설득했다.
"이 모든 일이 강박과 관련된 건 아시죠? 몸무게 재는 횟수를 점점 줄여봐요.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이런 식으로 말이죠. 강박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 다른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어요."
나는 체중에 집착하는 내 모습과 학교 일이 직접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제 생각에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약간 영향을 주긴 할 거예요. 중요한 건 할 일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할 일을 찾아서 문서함을 살펴보는 행동 역시 강박과 관련 있다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물었다. "할 일이 없으면 어때요? 어떤 기분이 들어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죄책감이 들어요."
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서 죄책감을 느껴요. 알 수 없는 죄책감이요."
나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죄책감 말고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든 내가 잘하지 못한 점, 실수 같다고 느낀 점(실수한 점이 아니다), 잘못했다고 믿은 점(이것 역시 잘못한 점이 아니다)을 찾아 노력했다. 이 노력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잠시 내 상담기록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어릴 때 경험과 관련 있어요. 학습된 습관이에요. 어릴 때 비판적 사고가 형성되기 전에 습득된 거죠. 지금은 어른이니까 반드시 그 감정을 따를 필요는 없어요."
나는 그가 말한 '습관'을 '감정'으로 바꿔서 이해했다. 아마 자동반사 같은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늘 바쁜가요?" 의사가 물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저만큼 일이 몰리는 시즌은 없지만 대체로 무척 바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지요."
"동료들이 여유가 있을 때 뭘 하는지 눈여겨본 적 있어요?"
"음, 별로요.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에 한번 관찰해봐요. 그 사람들이 보내는 방식을 따라 해 봐요. 사실, 지금처럼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이상하다, 불안하다, 이렇게 인지하는 것도 큰 변화지요."
뭐, 그가 설명 안 해도 안다. 뻔뻔하게 말하자면 알아차리기는 이제 도가 텄다.
"인지한 뒤에는요? 뭘 해야 해요?"
"테스트요. 실행에 옮겨보는 거예요. 한 번에 다 바꾸거나 과감하게 하는 건 어려우니까 조금씩 조금씩 작은 것부터 테스트해보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어, 이렇게 해도 괜찮네. 별 이상 없구나.'라고 생각하면 한 걸음 더 나가는 거죠."
역시 그는 내가 늘 막히는 지점을 짚어주었다.
할 일이 없어서 불안한 것은 학습된 감정일 수 있고, 여유 있는 나 자신이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내가 뭘 잘못하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걱정하고 의심하는 습관 탓이겠지. 그러니 이 모든 걸 멈추고 싶다면 그의 말대로 테스트하는 것.
내가 자신 없어한다는 걸 알아챘는지 의사는 인지와 테스트를 한 번 더 강조했다.
"그럼 한 달 뒤에 뵐까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문을 듣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시계가 어느덧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 타러 가는 길에 투썸이 보였다. 가게에 들러서 홀케이크를 사려다가 그냥 나왔다. 케이크 옆에 적힌 어마어마한 칼로리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가서 소고기를 구워 먹고, 몸무게는 재지 않았다. 밥은 적게 먹고, 고기를 많이 먹은 걸로 위안을 삼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몸무게는 한 번만 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