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강박증 때문에 힘들어요

내 안의 완벽주의

by 키키 리리

"며칠 전에 기말고사가 끝났어요. OMR카드는 금방 리딩 해서 상관없는데 서답형 답안지의 경우에는 제가 며칠 동안 채점을 해야 돼서 제 손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답안지가 없어질까 봐 늘 걱정을 했어요. 물론 그런 일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죠. 그렇지만 걱정이 사라지지 않아요."


나는 한숨을 삼켰다.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문제가 일어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레 겁먹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는 내 고질병을 어떻게든지 해결하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가 스캔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비록 원본은 아닐지라도 스캔을 해 두면 시험지가 없어질 경우 대처는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의사가 가만히 듣더니 "그거 참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맞장구 쳐주었다.


나는 그 외에도 가스밸브나 현관문의 잠금 상태, 콘센트를 여러 차례 확인하는 버릇이 있고, 심지어 눈으로 본 것도 믿지 못해서 손으로 연신 만져보며 내가 원하는 상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는 말을 했다. 불안이 심할 때는 외출하기 전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도중에 집으로 다시 돌아간 적도 있다.


내 두 번째 의사는 정 불안하면 집을 나서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어두거나 스캔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강박증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업무상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연말에 비전자문서를 행정실로 넘기기 전까지는 교무실 안에 있는 내 사물함에 보관해두는 데 이런 상황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해당 사물함을 열고 닫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손댄 적도 없는 서류가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없어지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번번이 확인했고, 그럴수록 마음속에선 괴로움이 번졌다.


내 이야기를 담담히 듣던 의사가 말했다.


"뭔가를 바로 확인하려는 마음을 버텨봐요. 그 마음을 뒤로 미루는 거지요. 그리고 버티는 시간을 점점 늘리는 거예요. 5분, 10분... 이런 식으로 말이죠."


나는 천천히 그의 말을 곱씹었다.


버티라고? 확인하려는 마음을?


나는 늘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손을 뻗어 서류를 뒤적이거나 사물함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퇴근할 때면 사물함을 잠근 뒤 서랍 손잡이를 여러 번 당겨서 잠겼는지 확인한다. 열쇠로 문을 잠그면 무의식적으로 잠금 상태를 확인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 핵심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불안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겠지. 지금 먹는 약은 우울과 불안,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완화해주기 때문에 의사의 조언대로 뒤로 미루는 방법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예전에 직장 동료가 퇴근하면서 서랍을 잠근 뒤 잠금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교무실에서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의 뒷모습을 무척 가벼워 보였다.


세상에...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사실 세상 사람 모두 나처럼 잠금 상태를 확인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문을 잠그고 다니는지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내가 느낀 놀라움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의사의 조언대로 확인하려는 마음을 뒤로 미루려고 했지만 힘들었다. 손만 뻗으면, 몇 발자국만 걸으면 확인할 수 있는데 어떻게 미루지? 다른 일을 하거나 시선을 돌리려고 해도 이미 익숙해진 습관 때문에 쉽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잠금 상태 확인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겐 그 횟수를 줄이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반복된 행동을 할 때면 스스로 조용히 말한다.


"이미 확인했어. 여기서 그만."


"확인했어. 이상 없어. 그냥 가."


이렇게 문제 행동을 자각해서 스스로 멈추는 방법이 내겐 더 적절했다.


오늘 퇴근하기 전, 서랍 손잡이를 여러 번 잡아당기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서서 교무실 밖으로 나오는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치 예전에 봤던 동료의 뒷모습처럼 말이다.


문제 행동을 스스로 발견하고 멈춘 경험이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박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정도나 횟수를 줄여나갈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믿는다. 아쉽지만 여러 가지 강박증상을 제거하는 건 그다음 단계. 그러니 오늘은 딱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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