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완벽주의
며칠 전부터 입안이 헐고 부었다. 이가 아프니 자연스레 두통이 따라온다. 무려 3일을 꼬박 견디고 드디어 오늘 아침부터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다.
예전에 공황 증세로 힘들어서 처방해준 약을 반알씩 쪼개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잘했어요. 억지로 버티지 마세요. 참을 필요도 없어요. 필요하면 약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아요."라며 나를 칭찬했다.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도 잘 잊지만 아프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잘 잊는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끌고 병원에 도착했다.
"요새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요?"
나는 학기말에 폭주하는 일감과 그 속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장면을 떠올리며 신세한탄을 줄줄줄 늘어놓지 않고 그저 할 일이 많다고만 말했다. 왜 학기말에 일이 몰릴 수밖에 없는 별난 업무를 맡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힘이 없었다.
그가 갑자기 손바닥을 활짝 펴서 내게 보여주었다. 물론 자신의 얼굴 근처에 손을 든 채로.
"자, 할 일이 10개라고 합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0개가 다 중요해요?"
"네."라고 성급히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다 지친 재수생의 심정이 되어서 손바닥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니오."
"덜 중요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2~3개쯤은 있을 거예요. 그런 일은 한 번만 확인해요."
최근 내가 처리한 일들을 쭈욱 떠올렸다. 승진가산점과 관련된 일, 다면평가, 교사초빙, 방학계획, 졸업진급사정 또 뭐가 있을까? 교사 전보나 평가, 승진과 관련된 일은 상당히 중요해서 공문을 작성할 때 수 차례 확인을 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선 채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진이 빠졌지만 나는 쉽사리 안심하지 못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일수록 틀리면 안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나머지 일들은?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는 일이나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일의 경우에도 위의 업무처럼 여러 번 확인을 했다. 내게는 덜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이 다 중요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학교 일에 전력질주를 하면 말할 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짜증과 무기력만 남았다.
그의 조언을 들으니 내가 손가락 10개 위에서 전력 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도 잘 잊지만 아프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잘 잊고, 모든 일에 전력 질주한다는 사실도 잘 잊는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봤어요?"
"네. 전임자가 정리해 놓은 파일을 항상 참고하지요."
"어때요?"
"틀린 것도 보였고 오타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았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임자가 한 업무를 살펴보고 그대로 따라 하다가 교육청에서 수정 요청을 받은 적이 더러 있었다. 분명 작년에는 무사히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담당 장학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며 틀릴 경우 고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실수 없이 처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과도한 책임감과 부담감에 짓눌리는 나는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한다. 다 잘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