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부모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조금씩 생긴 변화

by 키키 리리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때 부모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죠? 한 달 전이라서 기억이 나실는지..."

그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다행히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록해놨네요."


그는 당시 기록한 내용을 보더니 내게 말해주었다.

"당신의 증상에 대해 말했어요.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 줄 전혀 모르고 계시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 듣고 별로 속을 썩이지 않아서 잘 지내는 줄 아셨대요."

나는 코웃음을 쳤지만 금세 슬퍼졌다.


"산후우울증이 지금까지 진행된 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당신 마음이 약해서 우울증에 걸린 거라고 말씀하셨죠."


서글펐다.


난 약하지 않다. 내가 나약하고 마음이 약해서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다. 내 탓이 아니라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안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쭈그려 앉아 울고, 베란다 앞에 서서 넋을 놓고 세상을 바라볼 때도 많다. 목과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 때문에 숨을 헐떡일 때면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사라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으며, 제발 나 좀 내버려 달라고, 혼자 있고 싶다고 소리친다.


우울증이 더 심해지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버거웠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손질하며, 가방을 챙겨서 나가는 일상적인 행동을 전혀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이런 내 모습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 전,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내가 서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언급하며 못 가겠다고 부모님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가야 한다."였다. 나는 내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기 싫었고, 부모님과 다투기 싫었다. 어차피 설명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지었다. 결국 신경안정제를 집어삼킨 뒤, 결혼식장에 갔다. 친척 어른들과 인사말을 나눌 때, 마음속에서 갖가지 걱정과 우울이 소용돌이치며 나를 아래로 잡아끌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땅 속으로 꺼질 것 같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장에서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디든지 당장 드러눕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조금 흘렀는데 가족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해서 슬펐는지 아니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슬펐는지 잘 모르겠다.




의사가 내 슬픈 표정을 읽었는지 위로해주었다. 의사와 나는 비슷한 나이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 몇 가지를 들려준 뒤 이렇게 말했다.


"아마 우리 부모님 세대의 특징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아요."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죠?"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포기하는 거죠. 기대치를 낮추고요. 대신 당신의 감정은 계속 표현해야 해요."


나는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가 내민 해결책은 명쾌했고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포기한다는 말이 슬프게 들렸다. 그 누군가가 '부모님'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선을 그어버리라니. 나는 자식 된 도리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 앞에서 죄책감을 느꼈다.


정말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내게는 부모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어느 누군들 타인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은 내 마음이다. 상대방에게는 나를 이해해줄 의무 따윈 없으며 내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해서 그를 이해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내 힘든 상황을 계속 말해야 한다. 말하다 보면,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지금도 여전히 의사의 말이 거짓말 같고,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는 지금의 마음처럼.


뭐, 당장 결론 내리지 않아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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