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잠이 늘었어요

조금씩 생긴 변화

by 키키 리리

"2주 전에 면접을 봤어요."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최종 합격을 하면 책 출간을 해주죠. 서류 합격을 했고 면접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 뒤로 잠이 늘었어요."


"하루에 얼마나 자죠?"


"보통 7시간 정도요. 그런데 오전에 2시간, 오후에 1시간가량 잠을 자요. 이런 것도 방어기제인가요?"


"그럼요."


나는 내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제가 휴직하고 4월부터 석 달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녔거든요. 그걸 바탕으로 글을 썼고 제출했어요. 제 글을 읽은 심사위원들 중 한 분이 제게 어디를 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했어요. 사실 우울증 환자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은 몰라요. 하루하루 의욕 없이 살아가는데 다음 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우울의 시간을 단축시키죠."


그가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프지 않은 사람을 정상인으로 말한 거나 제 인생에 대해 함부로 재단한 거는 굉장히 심하다고 느꼈어요. 학생들에게 제 병명을 공개하는 게 낫다는 말은 제가 결정할 문제지 그들이 충고로 할 말은 아니죠.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이해받기 위해 나간 자리가 아니란 건 알지만 상처가 컸어요."


"맞아요. 그런 자리가 아니죠. 아마 리리 씨를 이해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음... 무례한 건 맞아요. 심사위원이라도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그들 탓을 했어요. 제가 걷는 게 아무 의미 없다고 믿도록 만들어버린 그들이 나쁘다고 욕했어요. 물론 잘 되지 않아서 욕해야지, 나쁜 사람들! 의식적으로 연습을 했지만요."


"잘하셨어요. 남 탓하는 거 필요해요."


"그런데 더 나쁜 점은요, 제 탓을 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듣기만 한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요. 자책하는 마음 때문에 더 힘들어요."


"아, 그러면 너무 손해예요. 심사위원 탓하는 건 괜찮아요. 익숙하지는 않지만 잘 알아차리고 연습도 하니까요. 아마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으면 바로 반박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더라도 자책까지 하면 자신에게 너무 손해예요. 이미 1차 가해까지 받았는데 스스로 2차 가해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익숙한 패턴이라서 자책하는데 그 패턴을 깨버려요. 남 탓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자책하는 건 습관이니까요."


"이것도 자꾸 연습하면 되나요?"


"물론이죠."


우리는 면접 이야기를 좀 더 나눴다.




"면접을 본 뒤로 전혀 걷질 않아요. 집에 틀어박혀 있어요. 그나마 1시간씩 유튜브 보고 홈트를 해요. 찾아보니 재미난 게 많더라고요. 아이들과 같이 하는데 남편에게 권했더니 거절했어요."


의사가 풋, 하고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는 내 과거 진료기록을 쭈욱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예전의 리리 씨 같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었을 텐데 지금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찾아 하고 있어요. 많이 나아졌어요."


"저도 알아요."


나는 뿌듯해져서 슬쩍 웃었다.


"잠이 늘었는데 나중에는 괜찮아지겠죠?"


"당연하죠. 몸을 다치면 회복되는데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뻔한 사실인데 잊고 있었다. 마음도 회복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은 주관이 많이 작용하죠. 누군가 더 잘 쓸 수는 있지만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지 않아 탈락했을 수도 있어요. 그, 있잖아요. 리리 씨 책 달라고 했던 환자분."


"아, 기억나요."


"봐요. 누군가는 좋아한다니까요. 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저 역시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난 진료에 이어 또다시 그 환자 분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계속 글을 쓰라는 말보다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내 노래를 좋아하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있다면 열심히 노래하겠다는 무명가수의 비장한 마음을 알 리는 없지만 그 단 한 명의 관객이 옆에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처방약을 들고 병원을 나서며 오늘은 낮잠을 조금만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오가느라 제법 많이 걸었더니 몸을 계속 움직이고 싶었다. 어디든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잠을 계속 자고 싶지는 않았다.


잠은,

밤에 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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