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생긴 변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의사가 다정하게 물었다.
"요즘 사람들하고 말을 하기 싫어요. 직장 동료들이요. 그들 사이에 끼이기도 싫고 저한테 말도 안 걸었으면 좋겠어요."
"왜 그렇죠?"
나는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언제부터 그랬죠?"
"지난달부터요."
"요즘 일이 많나요?"
"아니요, 1년 중 제일 한가한 시즌이죠."
"... 약을 줄인 게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언제부터 약을 줄였어요?"
내가 묻자 그는 차트 기록을 살펴보더니 대답했다.
"4월 말부터네요. 복직했을 무렵엔 이런 생각을 했나요?"
"아니요. 전혀요."
나는 그의 눈치를 슬슬 본다. 다시 복용량을 늘리기는 싫다.
"약을 줄이고 변화가 좀 생겼는데..."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냥 이대로 먹을게요. 여기서 빨리 탈출하고 싶어요."
그가 웃는다.
"그렇죠. 빨리 졸업하고 싶을 거예요. 그러기엔 밑 작업을 아직 더 해야 해요."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여길 뜰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도 나도 모르긴 매한가지.
나는 그 외에도 내 자존감을 깎아먹는 불안한 소망과 거듭된 실패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많이 지쳤군요."
"네? 작년에 1년 동안 육아 휴직하면서 쉬었는데 벌써 지쳤다고요?"
"사람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더 빨리 지치는 사람이 있지요."
그래, 그건 나겠지.
빌어먹을-
욕이 나온다.
살면서 누군가를 아주 미워하거나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악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특정한 단어에는 그렇지 않다. 듣기만 해도 몸서리친다.
"네가 좀 견뎌봐."
"잘 견뎌야 할 텐데..."
우울증을 앓던 초기엔 저 소리가 마음을 찢어놨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데 어떻게 견디지?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나는 무너지고 있다고, 이대로 사라지거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인데 왜 견디라고 말하지? 어째서 저런 소리를 타인에게 할 수 있지? 나는 어디든 처박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데 목구멍에선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진료 때 의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5분이든 10분이든 일단 버텨보는 거죠."
견디라고 하지 않고 버티라고 말해줘서 눈물 나게 고마웠던 순간. 나는 지친 의사에게 그 말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도 나도 지친 금요일 저녁. 우리는 각기 다른 이유로 똑같은 약을 복용 중이다. 그도 제법 오랫동안 약을 먹고 있다.
"일단 지난번과 똑같이 처방해드릴게요. 한 달 더 드셔 보고 그래도 힘들면 약을 조절해야 해요."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내가 어떻게 지낼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약을 다시 늘리더라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우리, 이왕 같은 약을 먹고 있으니 좀 더 이 시간을 버텨봐요. 언젠가는 졸업할 날이 오겠지요.
내년이면 우울증과 함께 한 지 10년이 된다.
참말로 긴 시간이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 참 대단한 인간인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