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가 밉상 같아요

과도한 죄책감과 자책

by 키키 리리

"그다지 힘든 일은 없어요. 가끔 누가 나를 미워한다고 느끼거나 내가 하는 행동이 밉상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며칠씩 땅굴을 파면서 지내지 않아요. 자고 나면 흘러가버려요. 아마 약 용량을 늘려서 그럴지도 모르죠."


그는 내 말을 유심히 듣더니 입을 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당신이 많이 노력한 덕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을 워낙 오래 앓아서 그런 감정들이 아예 없어지진 않을 거예요."


의사는 내 진료기록을 잠시 훑어보았다.


나는 다음 말을 천천히 기다렸다.


"죄책감을 느끼는군요."


"... 맞아요."


그가 어떤 기록을 보고 하는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제 감정의 기저에는 죄책감과 자책이 깔려 있어요."


"어떤 상황일 때 그런 생각을 하죠?"


"제가 점심을 먹고 항상 운동장을 걷거든요. 운동화로 갈아 신고 뛰다시피 걷는데 20분 정도 돼요. 사람들이 일 안 한다고 수군거릴까 봐 사실 눈치가 좀 보여요. 밉상이나 꼴불견 같을까봐 위축될 때가 있어요."


"점심 먹고 걷는 사람은 없나요?"


"물론 있죠. 잠시 산책 겸 한 두 바퀴 정도? 저처럼 작정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없어요. 땀을 뻘뻘 흘리거든요. 저 나름대로 합리화는 해요. 걸으면서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이랑 인사도 나눠요. 저랑 같이 걷는 애들도 가끔 있어요. 고작 20분 걷는다고 일을 펑크 내거나 안 한 적도 없고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운동장을 걷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평균적인 생각 말이에요."


나는 의사가 말한 평균적인 생각에 집중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때요?'와 함께 부정적으로 쏠리는 사고 의 방향을 전환시켜주는 질문이다.


"아마 운동 열심히 하네? 그 정도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딱히 타인에게 관심 없잖아요. 뭐, 운동하는구나, 하고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요."


"뭔가 다른 사람이 날 싫어한다고 느끼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는 게 좋아요. 내가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 늘 하던 생각에 머물러 있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좀 달라질 수 있어요. 생각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거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어떤 상황에서 우울이 올라오는지 패턴을 파악해봐요."


"그게 도움이 되나요?"


"내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무의식 속에서 우울과 불안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분명 있을 거예요. 패턴을 안다고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분명 공장 문을 닫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사실 나는 그의 마지막 조언을 이해하지 못했고 다시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여러 명의 대기 환자들이 떠올라서 입을 닫았다. 두 번이나 설명을 들었는데 이해를 못 한 나 자신이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묻는 일이 눈치가 보여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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