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죄책감과 자책
나는 의사에게 투고를 시작했다는 말로 상담을 시작했다.
(몇 개월 전의 대화라서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투고 안 해요.)
"투고를 하고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거든요. 아예 연락이 없을 수도 있고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나 봐요. 틈만 나면 낮잠을 자요."
"어떤 점이 견디기 힘드나요?"
"투고 메일을 잘 받았다, 결과는 어떠하다. 이런 명확한 언질이 없어요. 투고 메일을 받았다고 연락해 주는 출판사는 잘 없거든요. 게다가 거절 메일 또한 보내주는 곳이 드물어요. 그러니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 모르는 거예요."
나는 침울하게 말했다.
"왜 꼭 책을 내고 싶어요? 이유가 뭐죠?"
"인정받고 싶어요."
"누구에게요?"
"전문가에게요."
"그것 참 어려운 목표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가 내 투고 원고를 전부 본 듯한 착각에 빠져 의기소침해졌다. 그의 표정을 살피며 '아, 나는 결국 안 될 팔자보구나.'라고 체념했다.
"기다리는 일이 힘들다면 낚시하듯 낚싯대를 던져놓고 잊어버려요. 그러면 좀 나을 거예요."
그의 말을 듣고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기다리는 일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의 변화.
"리리씨를 형성하는 정체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작가 말고도 교사, 아내, 엄마 등이 있죠. '작가'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정체성에 분산을 해 봐요. 그러면 정신적으로 덜 힘들 거예요. 그리고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아요. 자기 객관화는 참 힘들거든요.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정체성에 균형을 찾는 거죠."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 내게는 작가 정체성을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요!'라고 속으로 외쳤다.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절절매는지 잘 모르겠다. 트라우마 상담할 때는 이게 워낙 뿌리가 깊어서 파헤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내 그릇된 사고방식을 깨우쳐주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책을 못 내면 어떨 것 같아요?"
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고, 그에 걸맞은 정답을 내놓았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전 생계를 유지할 직장이 있고요, 꼭 책을 내지 않아도 제 생활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그가 내 대답을 듣더니 싱긋 웃었다.
"그러니 마음을 좀 편안히 가지면 어떨까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도 잘 될 것 같지 않아요. 음, 정확히 말하면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요.
"부정적인 생각이나 반응이 워낙 오래돼서 그래요. 습관처럼요. 그래서 고치려면 오래 걸리죠."
그 말을 듣자 좌절감이 몰려왔다. 우울증을 10년 넘게 껴안고 사는데 그만큼 내 부정적인 사고회로는 뿌리가 깊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잘 될 거라고 단 한 번도 긍정적으로 예언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잘 안 될 거야, 난 되는 일이 없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지도 않았다. 그저 낙관한 적이 없을 뿐. 어떤 일을 하든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시도하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그 옛날 엄마는 내게 배에 힘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넌 배에 복이 많으니 밥 잘 챙겨 먹고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당차게 살라고. '될 대로 되라지'와 '당차게 살라'는 말의 차이가 어마어마하지만 엄마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것 같았다.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조급해지지 말자고. 인생은 길고, 내가 40년 넘게 살아온 삶의 방식을 아니, 생각의 방식을 바꾸려면 그만큼 오래 걸리지만 결국은 바뀌게 될 거라고 말이다. 나는 그리 믿고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