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잘 지냈어요. 스트레스받는 일도 딱히 없고요."
나는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천천히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저는 집에서 나와요. 빠르면 8시 반부터요. 2시간쯤 등산을 하거나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관광지를 돌아다녀요. 그런 뒤에는 늘 맛있는 점심을 사 먹죠.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면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께 아이들을 잠시 부탁하기도 해요. 화창한 봄날에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신나게 걷고 나면 기분이 좋죠."
"이렇게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쓴 적이 있어요?"
"아뇨. 전혀요. 2년 전 휴직할 때는 코로나가 워낙 심해서 혼자 어딜 가겠다고 생각조차 못했고, 아이들도 학교나 유치원에 안 가는 날이 많았어요. 그래서 늘 집에 있었죠. 지금은 아주 만족하면서 지내요."
"좀 부럽군요."
그가 슬쩍 웃었다.
"혹시 여행 준비를 너무 완벽하게 한다거나……."
"아, 그렇진 않아요. 갈 곳을 즉흥적으로 결정할 때가 많아요. 아무 준비 없이 나올 때가 더 많고요. 마감이 정해진 일이 아니니까 발 닿는 대로 돌아다녀요."
"잘하고 계시네요."
그의 칭찬에 나는 왠지 우쭐해져서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 이야기를 마구 해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예전만큼 힘들지 않아요. 아이들이 커서 수월해진 면도 있고 제가 여유가 생긴 덕분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해결하려고 애써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야 풀리는 문제도 있더군요."
마치 인생의 고난에 통달한 사람처럼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무척 놀랐다. 다른 이에게 감화를 주고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순식간에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이 치기 어린 변신은 다음 대화에서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쓴 글을 모아서 출판사 몇 군데에 투고를 했어요. 난생처음 해 본 일이라서 좀 떨렸어요. 그동안 왜 안 했냐면 거절당하는 게 무서웠거든요. 막상 투고하고 거절 메일을 줄줄이 받았는데 '그렇구나.' 하고 말았어요. 거절당해도 큰일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글도 계속 써요."
솔직히 말하면 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실눈을 뜨고 읽어봤다. 눈을 똑바로 뜨고 메일을 읽기에는 용기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출판사마다 거절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그 이유를 읽을 때마다 수치스러워서 땅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일상의 평온을 되찾았다. 여전히 두 발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어서 기뻤다. 손바닥을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등산로를 걸을 때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을 그것대로 떠나보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간을 썼다.
갑자기 의사가 물었다.
"글을 왜 쓰죠?"
"말하는 것보다는 글 쓰는 일이 훨씬 편해요. 제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어요. 그리고 딱히 대가가 없어도 글 쓰는 일이 좋아요. 일종의 자아실현이죠."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면서 내면에 존재한 한 자락의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오늘 그의 질문에 말한 모든 대답이 정말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아니라면 결국 내 본성을, 내면에 존재한 성향을 무시하는 일일까? 탈바꿈과 변신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려고 하자 생각을 멈췄다. 너무 많은 생각과 깊은 고민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난 안다. 자신에 대해 너무 몰두하면 결국은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잘 잊고 뒤돌아서면 그만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런 말을 할 수조차 없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난 많이 나아졌다고.
이날 의사 선생님께 내가 만든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렸고, 그는 의사 생활하면서 환자에게 받은 세 번째 책이라며 신기해했다.
"우울증과 함께 살면서 겪은 일들이에요.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봐야겠다고,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이야기예요."
나는 조금 우쭐해져서 되는대로 설명했는데 그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자신과의 일도 적었는지 궁금해했는데 아주 잠깐 등장한다고 대답해줬다.
진료가 거의 끝날 무렵 그가 내게 물었다.
"오늘 왔을 때, 약을 줄이는 걸 기대했을 텐데요?"
"맞아요."
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조금 줄여봅시다."
"그런데 걱정은 돼요. 지금은 휴직 중이니까 딱히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고 여유 시간도 많아서 자유롭게 생활하잖아요. 만약 복직하면 어떻게 될까? 상황이 나빠져서 내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은 있어요."
"설령 그렇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겪어서 예전보다는 훨씬 잘 이겨낼 거예요. 점점 단단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 전 아이에게 읽어준 인디언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버터 반죽통에 빠진 개구리가 벗어나려고 열심히 반죽을 딛고 발버둥을 쳤더니 반죽이 단단해져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난 반죽통에서 벗어나듯이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 않았지만 개구리처럼 쉬지 않고 움직였다고는 믿는다. 2019년 가을부터는 이전처럼 임의로 약을 끊지 않았으며 진료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다니고 있다. 하루에 일정 거리 이상을 걷고, 글을 꾸준히 쓴다. 자신이 쓸모없고 무능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기보다는 그 생각의 경계에 서서 내가 가진 좋은 면을 끌어온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가 강점과 약점, 능력과 한계를 가진 입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약봉투를 보니 하루 150mg씩 먹는 약을 100mg으로 줄였다. 약이 줄어드니 약봉투가 가벼워지고 약값도 줄었다. 다시 약을 늘리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의사 선생님이 해준 말을 믿기로 했다. 너무 낙담하지 않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