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런 일로 죽을 사람은 없어요.

조금씩 생긴 변화

by 키키 리리

비 오는 토요일 이른 아침, 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가 부지런히 차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별일 없었어요. 토하는 것도 일주일에 1~2회로 줄었고요. 스트레스 받는 일도 딱히 없어요."


"체중 증가는 어떤가요?"


"아빌리파이정을 줄였는데 먹는 것은 그대로라서 그런지 체중변화는 없어요. 운동은 매일 30~40분 정도하고 있고요."


"잘하고 계시네요." 의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데 여전히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해요.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는 일이 두려워요."


"그것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는데 일주일에 1번, 아니면 사나흘에 1번 정도로 체중을 재는 일을 줄여보세요."


"알겠어요."




"있잖아요, 선생님."


"네." 그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6월 말에 기말시험을 쳤거든요. 한 학생이 서술형 채점기준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했어요. 맞게 해달라고 말이죠. 제가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 자세히 설명했거든요. 같은 불만을 제기한 친구가 2명 더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모두 수긍하고 돌아갔어요. 그런데 그 학생은 제 옆에서 서서 10분가량 우는 거예요. 제가 무척 난감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동교과 다른 선생님들께도 여쭤보았는데 제 기준이 맞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더더욱 그 학생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죠."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제 옆에서 훌쩍이고 있는 학생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한 거예요. 네 상황을 이해한다, 속상하겠구나, 수행평가 점수도 잘 받았고 중간고사 시험도 잘 봤으니 A를 받는데 별 무리가 없을 거야, 이런 식으로 위로도 해줬지요. 그런데 학생에게는 전혀 위로가 안 된 모양이었어요. 망부석처럼 제 곁을 지키고 무언의 항의를 하는 학생 때문에 심난했어요. 학생이 돌아간 뒤에도 그 학생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이 일 때문에 속상해서 학교를 안 나오겠다고 말하거나 급기야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어요. 근데 곧 이런 일로 죽을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분명 내일이면 별 무리 없이 학교에 나올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죠."


나는 잠시 말을 끊으며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을 겪으면 불안이 너무 심하게 올라와서 잠을 못 이뤘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잠도 잘 자고 걱정도 그렇게 크게 하지 않았어요. 전 학생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위로도 해줬거든요. 제 위로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건 그 학생의 몫이라고 여겼죠. 그러니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내가 불안에서 많이 벗어났구나, 이렇게요."


"상당히 스트레스가 될 수 있었는데 잘 해결했군요." 의사는 나를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다음 날 학생은 제게 밝게 인사했고 학교도 잘 나왔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예전의 제 불안이 쓸데없이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또 불안이 너무 크면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나는 내가 생각한 바를 그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는 내심 약을 줄이길 기대했으나 의사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한 달 치 약을 처방해 주셨다. 나는 약간 실망한 채로 진료실 문 밖을 나왔다.


부디 한 달 뒤에는 항우울제를 줄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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