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생긴 변화
"안녕하세요."
나는 짧게 인사하고는 바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라는 의사의 물음이 먼저 나오기 전에 말이다.
"별일 없었어요. 복직하고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생각보다 적응을 잘해서 스스로 놀랐지요."
"어떻게 그렇지요?"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20년 가까이 직장을 다녔으니, 물론 육아휴직을 오랫동안 하긴 했지만요. 담임 업무도 오랜만인데 마치 어제 한 것처럼 했어요. 모르면 주위 사람들한테 묻고, 작년 전임자가 해 놓은 업무도 살펴보고 그랬어요. 게다가 반 아이들은 순한 편이에요. 뽑기 운이 좋았나 봐요."
"그렇군요. 운도 좀 따라줬네요.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나요?"
"2학기에 일이 많아요. 제가 맡은 업무도 그렇고, 중3 담임이니까 고입원서도 써야 하고요."
"중3 담임은 그렇군요."
"그래서 관련 공문을 잔뜩 출력해서 미리 읽어보려고 했어요. 1~2주 정도 불안에 떨다가 모든 일을 대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손을 좀 놓았어요."
"맞아요. 대비한다고 하지만 완벽하게 하기란 불가능하지요."
"그때가 되면 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커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엄청 불안에 떨었다. 밤마다 머릿속으로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특히 이번에 맡은 업무는 죄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해보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작년 공문을 검색하고 잔뜩 출력한 뒤 전임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조금씩 감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맡은 일의 대부분이 앞서 말한 것처럼 2학기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걱정해도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자 2학기 일을 잊어버렸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하지 않나요?"
"피곤하긴 하죠. 그래서 일찍 자려고 노력하고요, 잠은 하루 8시간 꼭 자요. 일어나면 씻고 애들 깨우고 아침을 준비해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바로 몸을 움직여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게 맞아요. 고민을 안 하는 거죠."
"잘하고 계시네요. 제가 잔소리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의사가 웃으며 나를 칭찬했다.
'아무렴, 우울증 환자로 살아온 지 11년 차인데다가 당신을 만나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은 지 5년째입니다.'
"아, 스트레스받는 일이 하나 있는데요. 작년 12월에 새로 처방해 주신 OO약을 먹고 석 달 동안 5 킬로그램이 쪘어요."
그러자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약의 부작용 중에 체중증가는 없는데 혹시 탄수화물을 많이 드시지는 않으셨나요? 먹는 양이 이전보다 늘었다던가 식욕이 증가했다던가 말입니다."
"먹는 것은 비슷해요. 복직하면 움직임이 많아져서 살이 빠질 줄 알았는데 더 쪘어요."
나는 슬픈 눈으로 내 뱃살을 바라보았다.
"혹시 모르니 잘 살펴보세요. 꼭 약 때문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네."
우리는 내 증상이 호전되었기 때문에 OO약의 용량을 줄이는 데 합의했다. 마음 같아서는 OO약을 아예 안 먹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약을 끊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처방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OO약 때문에 살이 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들어서 살이 쪘을지도 모르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료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