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생긴 변화
"밤마다 식은땀을 흘려요. 땀이 식으면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요. 이불을 두껍게 덮어도 추워요. 그러니 수면의 질은 현저히 낮아져서 많이 자도 잔 것 같지 않아요. 식은땀을 흘리는 게 노화 증상인가요?"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제가 아는 의학 상식 중에 그런 건 없어요. 지금 복용 중인 항우울제가 땀을 좀 흘리게 하는데 거기에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어떤 일이 스트레스죠?"
"이번에 중3 담임을 맡았거든요. 담임을 거의 6~7년 만에 맡아서 해요. 그러니 제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담임을 할 때마다 힘들었거든요."
"무슨 일이 힘들었죠?"
"제가 좀 물렁한 담임이에요. 엄하지 못하죠. 그러니 애들이 제 말을 안 들어요. 거기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아이들이 있지요."
마지막 문장은 말하지 않았다.
"이번엔 좀 다를 수 있어요.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요. 지금의 김리리 씨는 과거와 같지 않죠."
나는 그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 계속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런 말이.
"대신 알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요, 잘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려도 아마 그럴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제 말을 잘 기억해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잠은 하루에 얼마나 자죠?"
"하루에 8~9시간쯤 자요. 낮잠도 자고요. 틈만 나면 자요.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이 나빠요.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즐거운 일도 없고요. 자는 게 좋은 데 눈 뜨면 슬퍼요. 몸을 움직이기가 싫어 어딜 가는 것도 싫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자꾸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게 힘들어요. 작년에 저희 집에서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가셨거든요. 주말마다 자꾸 아버지 댁으로 오라고 하는데 사실 귀찮아요. 애들 보고 싶어 하는 거 알지만 말이죠."
"가면 불편한가요?"
"네. 엄마가 점심도 차려주시고 전 설거지만 하면 되고요, 애들도 아버지가 전적으로 놀아주시지만 불편해요. 그것보다도 아버지 댁까지 가는 게 힘들어요. 몸을 움직이기가 귀찮아요. 자꾸 축축 처지는 느낌이에요."
무엇보다도 가기 싫다고 자꾸 말씀드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오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의 말이 견디기 힘들었다. 왜 내 말을 안 들어주시지? 예전에, 아주 예전에 내 말을 좀 들어달라고 그렇게 말한 기억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난 아버지 댁에 가는 문제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시는지 아닌지와 연관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니 이토록 힘든 것이다.
난 여전히 이기적인 걸까? 결국 지난 주말에도 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의사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복직을 하면 좀 도움이 될 거예요. 복직을 하면 아무래도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할 거고요 몸을 움직이기 싫어도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면 처진 기분도 조금씩 사라질 거고 무언가 하라고 하는 게, 어디를 가는 게 그렇게 부담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무튼 복직이 저에겐 전환점이 될 수 있겠군요."
나는 그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건넸다.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밖에 토하지 않았어요. 몸무게에 대한 강박을 완전히 놓아버렸어요."
그가 놀라워하며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했죠?"
"살이 좀 쪄도 괜찮다고, 대신 건강만 하자고 매일매일 생각했어요. 둥그스름해진 얼굴과 늘어난 뱃살과 굵어진 허벅지를 인정했어요. 하하."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체중계를 멀리했어요. 하루에 수 차례 재던 걸 한 번만 정도만 재고요, 이것도 생각이 안 나면 몸무게를 아예 안 재는 방향으로 돌렸어요. 운동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서 계단 오르기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얼굴도 지금이 훨씬 좋아 보여요."
우리는 이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지금의 나는 과거와 다르다는 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더 이상 토하지 않고 몸무게 숫자에 집착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낯설었지만 좀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학교 일도 그렇게 잘해나갈 수 있길. 나는 나에게 다짐을 하며 한 달 뒤 진료 예약 날짜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