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원, 중앙공원, 영주 하늘눈전망대
38번 버스를 타고 민주공원에 내렸을 때,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발을 쉽사리 떼지 못했다.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여기 주소가 망양로라는 것과 공원이 산복도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텐데. 이제는 집과 함께 늙어버린 산복도로 주택의 주인들이 대부분 노인분들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다.
넓고 넓은 광장에 모인 어르신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편안하게 벤치에 앉아서 한담을 나누거나 나무 정자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었다. 누구는 커다랗게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이나 뉴스를 들었고, 때론 메밀묵을 파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들은 마을 축제의 한 마당처럼 광장을 자연스럽게 즐겼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 나는 젊은 축에 속했고 이런 풍경 속에서 한동안 이질감을 느꼈다.
늘 그러하듯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면 뭔가 마비된 듯한 기분에 빠져서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길목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멍청히 서 있다가 "좀 지나갈게요."라는 말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민주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주항쟁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와 입구 맞은편 나무에 어르신들의 가방이 있었다. 대략 10개의 가방. 다들 어디로 가신 걸까? 주인 없이 가방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달팽이집처럼 둥글게 이어진 길과 횃불 조형물을 보며 상설전시관 안을 엄숙한 마음으로 걸었다.
관람이 끝난 후 중앙공원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탄성재로 포장된 바닥은 걸을 때마다 나를 위로 조금씩 올려주었다. 바닥은 부드러웠고 폭신폭신했다. 산책로를 걸으니 숨통이 틔었다. 한낮의 열기를 식혔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은 벤치에 앉아서 날려 보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바다 위에 뜬 수많은 배가 시선을 붙잡았다.
그러나 상설전시관 안에서 본 내용과 내가 있는 공간의 밝음을 비교할수록 마음속 부채의식이 조금씩 살아났다. 일의 선후관계를 따져보면 결국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토록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갈증도 없었다. 거대하고 일시적인 일들은 전혀 몰랐고, 다만 작고 영원한 자신의 문제들을 위해 살았다.
- 밀란 쿤데라,『농담』에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고 영원한 자신의 문제'를 위해 살았다. 거대한 일들이 어떻게 내 삶에 영향을 주는지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일들이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고는 중앙공원 충혼탑에 올랐다. 인근 유치원에서 체험학습을 나왔는지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걷고 사진을 찍었다. 날은 정말 화창했고 아이들은 귀여웠다. 내가 잊고 살았던 과거에 대해 오롯이 생각하며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2000년대 중반쯤, 중앙공원에 마지막으로 와 봤는데 그 사이에 충혼탑으로 향하는 모노레일이 새로 생겼다. 그때 같이 왔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그들도 여기에 오면 나를 생각할까?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는 타박타박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다.
공원에서 5분가량만 내려오면 하늘눈전망대가 있다. 눈이 부셨다. 멀리 영도 봉래산과 부산항대교와 부산타워가 보였다.
수년 전, 토요일 새벽이면 용두산 공원에 자주 올라갔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서 겨우 잠들어도 새벽이면 눈이 번쩍 떠졌다. 버스를 타고 부산 근대역사관 근처에서 내려 중앙성당을 지나 용두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새벽의 이 길을 당시의 나는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새벽잠 없는 어르신들을 간간이 스치며 용두산 공원 광장에 들어서면 부산 타워가 아주 높고 기다랗게 보였다. 코 앞에서 보던 부산 타워는 목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높았는데 하늘눈전망대에서 바라보니 그저 작고 앙증맞은 탑같이 느껴졌다.
내 우울도 멀리서 보면 작게 느껴질까? 나는 어떻게 하면 우울증으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날 수 있을까? 매번 내게 주어지는 5시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나를 기다리는 건 여전히 두 알의 항우울제와 병원 예약 날짜가 선명하게 적힌 달력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석 달 동안 참말로 많이 걸어 다녔는데 아직도 더 걸어야할 것 같았다. 폭우와 폭염이 당분간 이어진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더위와 비를 피해 걸을 수 있을지, 혹은 더위와 비를 즐기며 걸을 수 있을지 궁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