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대로도 괜찮아

구포 5일장

by 키키 리리

얼마 전, 6명이 참석하는 모임에 나갔는데 처음부터 무척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 자리에서 물방울처럼 둥둥 떠다니는 상상을 했다. 또는 썰물처럼 사람들로부터 끝없이 밀려나가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들 중 아무도 나를 내치지 않았는데 나 혼자 그들로부터 벗어나게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묵묵히 밥을 먹고 가끔 맞장구를 쳐주고 그저 입을 닫았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말하고 싶었다. 잘 안 된다. 어느 모임이든 늘 듣는 쪽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혼이 대화 상황에서 쭈욱 빠져나와 멀리 떠다닌다. 눈을 맞추고 호응을 하면서도 마음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다녔다. 대화 상황에서 청자로 존재하는 이상 적당히 호응하고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모임만 있으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강하게 들었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나처럼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제일 궁금한 점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잘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난 잘 안 되는데 말이다. 분명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하겠지?


모임만 나가면 위축되거나 납작해진 나를 달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제일은 혼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일.


오늘은 시장에 갔다.




일단 밥을 먹습니다


덕천역 1번 출구에서 구포시장으로 향했다. 매월 3,8일에 구포 5일장이 열린다.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아침을 굶은 탓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국밥과 국숫집 간판뿐.


드디어 원하는 식당을 찾아 비빔국수와 김밥을 주문했다. 오전 10시 무렵이었는데 손님이 서너 명 있었다. 매콤한 국수와 밥알이 꼬들꼬들한 김밥과 멸치육수 국물을 먹으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돌아다닐 힘이 생겼다.


첫 끼니로 먹은 비빔국수와 김밥




소소한 재미를 찾습니다


상인들이 상자를 이리저리 뜯어서 이름과 가격을 적어놓은 것을 유심히 쳐다보며 천천히 걸었다. 느릿느릿 걷고 싶었지만 더 느리게 걸었다가는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쭈욱 밀려날 기세였다. 한 곳에 멈추고 싶을 때는 상점과 상점 사이 빈 공간에 잠시 서서 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슬쩍 사진을 찍기도 했다.


부산 사투리도, 맞춤법이 조금씩 틀린 것도 다 흥미로웠다. 잘못 적어도, 일부러 틀리게 적어도 모두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나는 더 걸었다. 미로처럼 얽힌 길은 아니지만 지나온 길을 또 지나치고 또 지나쳤다. 저기로 가고 싶은데 여기로 향하는가 하면 재미있는 간판을 보고 혼자 키득거렸다. 길을 몰라 몇 번이고 돌아온 자리. 저 간판은 아마 5번쯤 봤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다가 다양한 약재 이름에 무척 놀라고


고소한 땅콩 냄새에 홀린 듯 서 있었다. 자동으로 땅콩과 아몬드를 볶아주는 기계를 난생처음 봤다.


새장 앞에서 새 구경을 했다. 암수 한쌍이 몹시 정답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던 트로트 메들리를 요새는 USB에 담아 파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테이프나 CD만 생각했던 나는 냉동실에서 방금 걸어 나온 게 분명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귀동냥을 하니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에게 주인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살 거 아니면 가격 물어보지 마세요."

"얼마든지 편하게 가격을 물어보세요."


오, 이게 뭐지? 똑같은 상황인데 반응은 천지차이다.




집으로


시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었다. 틀린 글자, 사투리도 힘주어 쓰고 손님이 사든 말든 까칠하게 반응하는 주인도 보고, 쑥떡 파는 청도 할머니도 만났다. 시장 좁은 골목길에 작은 좌판을 늘어놓고 5일장에 물건 팔러 나온 사람들도 구경했다. 단골인듯한 사람이 왜 저 넓은 길에 안 있고 여기 있냐고 할머니한테 물으니 텃세에 여기까지 밀려왔다고 대꾸했다. 무슨 일인지 아저씨 2명이 대로변에서 쌍욕을 퍼부으며 몸싸움하는 광경을 지나치고, 너무 비싸다는 손님에게 사지 말라고 으름장 놓는 자존심이 센 주인도 만났다.


시장에서 특별히 한 일은 없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걱정 그만하라는 목소리를 들은 듯도 하다. 모두 제 멋에 살고 있으니 너는 너대로 그리 지내면 된다고 말이다. 열심히 사는 이들을 보고 열심히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글을 말이라 여기고 여기에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으라고 누가 이야기하는 듯도 했다.


내 손에는 국산 콩물 한 통과 쑥떡이 들려있다. 나도 내 멋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하고 싶은데 늘 말할 타이밍을 찾지 못해 버벅대는 나도, 영혼 없는 리액션에 지친 나도, 온갖 부담감에 납작해진 나도 다 괜찮다. 스스로 괜찮아질 거라며 나를 살살 달래 놓고 배를 불리기 위해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갔다.


고소한 콩물에 쑥떡이면 간식으로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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