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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Sep 13. 2022

터널에 진입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걸릴까?

얼마나 걸어야 터널을 통과할까?


우울의 터널에 진입하면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답은 모른다. "100m 앞에 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의 길이는 5km입니다." 누군가 내비게이션 안내처럼 친절히 알려주면 좋겠건만 나도 내가 언제 터널에 진입할지 얼마나 긴 터널을 통과하게 될지 몰라 답답하다. 길게는 몇 주, 짧게는 며칠. 주기도 뭐라고 딱 정할 수 없다. 10년을 우울증과 걷다 보니 터널이 있다는 사실만 안다. 


터널 안에서 주로 무얼 하는지 묻는다면 이건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주로 내면의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하염없이 바라본다. 때론 죽음을 떠올리고 끊임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잠 잘 때면 베란다 창틀에 다리를 걸쳐놓는 나를 상상한다. 이런 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려서 슬프다. 실제 상황이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눈물이 차올라서 말도 못 하겠지만 터널 안에서는 이상하게 실감이 안 난다. 감정이 마비된 듯 잘 느껴지지 않고 남일처럼 생각한다.


더불어 내가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강렬하게 느낀다. 이런 느낌은 정말 황홀한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무쓸모 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먼지 같음이 꽤 매혹적이다. 도망칠 생각도, 달아나고 싶은 마음도 전혀 들지 않는다. 완벽하게 무력한 존재라서 아무런 저항 없이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 왜 자신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사랑받지 못해서겠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다. 이런 상태일 때 의사 앞에 앉아 있으면 분명 그는 심각한 얼굴로 요즘 힘든 일이 있냐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냐고 묻겠지. 아무 일도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테다. 당황한 의사의 얼굴이 보인다. 일부러 그를 골탕 먹이려고 그런 건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2주 만에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 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다. 몸무게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살이 쪘다. 기분도 쉽게 다운되지 않고 이 정도면 꽤나 잘 지낸다고 믿는다. 원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것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알고 싶은 것은 있다. 


'다른 사람도 이럴까? 나처럼 터널 속을 걸을까? 끊임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주기적으로 할까? 자기 자신을 쉴 새 없이 미워할까? 작은 일에도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날까? 갈 곳 잃은 분노가 자신을 향할까? 그래서 자신을 공격할까? 때릴까? 몸을 마구 긁어댈까? 피가 날 때까지 손톱으로 할퀼까?'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내가 답을 안다면 다음 터널에 진입했을 때는 좀 덜 외로울 것 같다. 답을 모른다면 모르는 채로 덜 외로울지도 모른다. 타인의 대답을 내 마음대로 재단해보려고 마음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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