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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Oct 01. 2022

울고 싶어요

모임이 끝난 뒤 

버스를 타고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가슴 언저리를 지그시 누르는 듯했는데 창문을 살짝 열고 병원에서 배운 대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어질어질한 시선이 제자리를 찾아가더니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바닥에 바싹 붙어서 핸드폰을 꼭 쥐었다. 눈을 감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의 모임. 3년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라 괜찮으리라 짐작했다. 물론 나가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핑곗거리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어려운 상황 속에 내던지고 싶었다. 불편한 감정을 거세하며 살아온 수많은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몸이 불편하다고 당일 아침에 약속을 취소한 기억, 핑계를 쥐어짜기 위해 애를 쓴 순간,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나를 탓하며 살아온 세월, 나약한 건 아닌지 수 없이 나를 의심하며 보내온 시간. 


그 모든 순간을 지나서 오늘에 이른 나를 바라보니 그 옛날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꼭 달라져야 할까? 답 없는 질문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가 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믿었다.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 없었다. 불편하다고 피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서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고 외면하며 지내기에는 우울증은 핑계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용기를 커다랗게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 마디씩 거들기만 할 뿐 어느 지점에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다른 장면이 끼어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몸이 두둥실 떠올라 다른 곳을 유영했다. 나는 깊은 바닷속을 조개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거나 숲 속을 치타처럼 뛰어다녔다. 


순간,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하자 그 장면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첨벙 들어갔다. 물을 튀기며 손으로 허우적거리며.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계속 울고 싶었다. 빠져나온 현실이 너무 깊었다. 그들에겐 얕고 가벼운 냇물이 내겐 거대하고 컴컴한 강물이 되어 나를 덮쳤다.


끊임없이 울고 싶었는데 눈으로, 입으로 계속 웃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미소 띤 채 마음을 숨겼다. 어느 곳에도 발 붙이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혼자서 선을 그어버리고 선 밖으로 그들을 밀어낸 내가 미련했다. 나에겐 모든 사람이 그랬다. 내 영역 안의 사람과 밖의 사람. 모 아니면 도.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과 주기 싫은 사람. 


애매하게 경계에 걸쳐 있거나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은 좀처럼 드물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누군가에게 "나, 울고 싶어요."란 말을 한 뒤 모임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라앉은 난파선처럼 쓸쓸하고 황량한 기분에 휩싸였다. 번화가의 불빛과 술에 취한 사람, 거리에 주저앉아 구걸하는 할머니와 막걸리를 마시는 남자와 서로 붙어서 거리를 걷는 연인과 작은 트럭에서 포도를 파는 아저씨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심과 함께 소화되지 못한 말과 몇몇 농담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가지 말걸, 하는 후회가 급격히 밀려왔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를 돌아보며 절망하지 않고 가까스로 버텼다. 어떤 순간은 그리 흘려보냈고, 또 다른 순간은 꼭 붙잡고 있다가 나를 괴롭히는 데 써버렸다. 흘러가라, 흘러가라- 나는 주문을 외우듯 불쾌한 감정을 털어버리려 애썼다. 애쓰지 않고 편하게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도 글렀다.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꼭 달라져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를 돌보며 그렇게 그렇게 사람들을 어려워해도 그렇게 그렇게, 응? 그리 살아도 되지 않을까? 무슨 말로 나를 달래야 할지 몰라 아무렇게나 나를 던져두고는 다음날 내내, 아주 내내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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