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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Oct 12. 2022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와 더불어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인지가 두 개 더 있다. "나는 무언가를 잘못했다.", "나는 무언가를 했어야만 했다."


모든 순간이 그랬다.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톡을 주고받을 때도 그렇다. 내가 실수한 건 아닌가? 허튼소리를 한 건 아닌가? 이렇게 나를 검열한다. 이 감정의 밑바탕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찾고 또 찾는다. 그럴 때마다 괴로움이 나를 꽁꽁 감싸매고 목을 조르는데 어떤 순간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처절하고 어떤 순간은 황홀할 정도로 아프다. 아마 이 상태에 중독되었으리라. 스스로를 괴롭히고 아플 때만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지난달 모임에서 전 직장동료가 "돈이 없어서 걸어 다니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웃었는데 나 혼자만 웃지 못했다. 누군가는 농담을 재미있게 잘한다고 그를 칭찬까지 했다. 그들은 내가 이곳저곳을 걷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들이 휴직 중인 내 근황을 물어볼 때마다 걷는다고 했으니까. 


결국 난 아무 말도 못 했다. 대신 얼굴이 시뻘게져서 머리만 쥐어뜯었다. 내겐 결코 소화시킬 수 없는 농담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해야 했을까? 그러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 "네, 돈 없어서 걸어 다녀요."라며 유연하게 대처해야했을까? 그러면 분위기가 괜찮게 흘러갔을까? 


깊은 밤 뒤척일 때면 말하지 못했던 온갖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팡팡 터진다. 이러다가 내가 미쳐버리겠다고 느낀다. 임상심리사 선생님이 나눠준 부정적/긍정적 인지 예시 종이를 들여다봤다.


"나는 무언가를 잘못했다."와 대응되는 긍정적 인지는 "나는 그 일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였다. 이 말은 내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노파심에, 덮쳐오는 죄책감에 내가 잘못한 일을 찾고 또 찾는 거다. 잘못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서.


"나는 무언가를 했어야만 했다."와 대응되는 긍정적 인지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였다. 이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모자라다고 느낀 모든 상황에서 자책하고 나를 다그치고 못살게 굴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었다. 왜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냐고 후회했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난 최선을 다한 게 맞다고. 다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


생각을 바꾸기란 어렵다. 나는 힘든 일이 떠오를 때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어."


오늘도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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