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심해지자 심장에 납덩이를 매달고 사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책을 읽으려고 침대에 걸터앉으면 심장이 저 밑바닥 아래로 굴러 떨어져 손으로 바닥을 훑느라 허둥댔다. 당연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을 찾지 못해 빈 손으로 책에 눈을 돌리면 상실감이 차 올랐다. 종이에 적힌 글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달아났다. 우울에서 나아질까 싶어 책을 펼쳤지만 책 한 줄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몸을 쉴 새 없이 떨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던 글들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소멸했다. 글을 한 자도 쓸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글 모임 '도란도란' 매거진에 글을 발행해야 하는 일이 즐거움이 아닌 의무감으로 탈바꿈하여 나를 짓눌렀다. 그건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이었다. 멤버들에게 미안해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으나 백기를 들었다. 당분간 쉬기로 결정하자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즐겁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마음먹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낸 모임이었는데 이렇게 나자빠지자 또 한 번 상실감이 밀려왔다.
댓글은 또 어떤가. 다른 작가님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어서 댓글을 주고받는 기쁨이 컸는데 이것 역시 미칠 지경이었다. 답 댓글을 달아야 한다는 의무감만 있었다. 우울증은 내게 기쁨과 행복과 소소한 즐거움을 앗아갔다. 그 자리에 상실감과 좌절을 밀어 넣었다.
주말에 가족사진 촬영을 앞두고 미용실에 가야 하지만 전화기를 꺼내서 연락처를 검색하고, 전화를 걸고, 예약을 하고, 버스를 타고 미용실에 가는 일이 너무 복잡하고 단계가 많아서(예전에는 무리 없이 해낸 일이었건만) 며칠 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결국 미용실에 가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채 사진을 찍게 될 터였다. 어쩔 수 없다. 얼굴에 거대한 뾰루지까지 나서 엉망진창이다.
게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겨우 일으켜 세숫물을 데우고 아침을 차리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다. 그러고 나면 블라인드를 죄다 내려 집을 깜깜하게 만들어 이불속으로 몸을 숨긴다. 어딘가로 달아나기 위해 잠을 청하는 것이다. 밤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잔 탓에 오전의 잠은 죽음과도 같다. 곯아떨어져서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잔다. 물론 서너 차례 깨서 시간을 틈틈이 확인한다. 알람 소리를 놓쳐 둘째 녀석을 데리러 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봄과 여름. 넉 달 동안 부산이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아주 먼 옛일 같아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당시의 나를 완전히 잊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아예 다른 사람이다. 생의 기쁨과 환희를 누리며 새로운 풍경을 끊임없이 눈에 담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꾸준히 돌아다니던 힘이 내게 있었던가? 분명 나였건만 내가 아닌 것처럼 느낀다는 것은 심각했다.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연결되어 있을 터였지만, 그리하여 우울이 바닥을 치는 지금 어찌 되었든 힘을 끌어모아 조금씩 뭍으로 올라가야 하건만 나는 그럴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루 한 번, 나는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항우울제 말고도 다른 약을 하나 더 처방받았고 먹고 있는 중이다. 분홍, 하양, 파랑.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색깔들인지. 나는 약을 먹을 때마다 감탄했고, 그 아름다운 색깔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가 아름답게 작용하기를 바랐다. 내 뇌가 파랗게 혹은 분홍 빛으로 물드는 상상을 했고 잿빛으로 가득 찬 내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 뇌 속에서 펼쳐지길 간절히 바랐다.
파란색 약을 먹은 지 8일째 되는 오늘, 글 쓸 힘이 난다. 신기하다. 약으로 사람의 의지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이건 무척 긍정적인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언제까지 약으로 의지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지 안타깝기도 하다.
둘째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당신과 자연의 대결'이 있다. 주인공 베어 그릴스가 이런 말을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저는 최선을 다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갑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탓했다. 왜 저런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냐고. 그러자 거대한 슬픔이 밀려와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탓하고 비난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고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나를 위해 하는 행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으며 병원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다닌다. 이것만으로도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글이 두서가 없습니다. 되는대로 썼거든요. 다시 정리하려니 도저히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냥 발행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