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를 내리고 자려고 누웠다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 내내 잔다. 아침도 먹지 않고 잔다. 밤에 9시간쯤 잤지만 잠은 늘 부족하다. 내가 잔 잠은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힘들 때마다 에너지로 대체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면 내가 잔 잠은 모조리 어디로 갔을까? 잘 모르겠다는 말처럼 게으른 답변도 없지만 정말 모르겠다. 끊임없이 눕고 싶고 자고 싶고 잠에서 깨기 싫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대부분 가슴이 답답해서 숨 쉴 때마다 그 무게가 한없이 느껴진다. 숨이 딱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무겁다. 훅, 슉, 훅, 슈욱.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 게다가 불안은 우울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태초에 둘이 한 몸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불안과 우울은 기어이 만나야 하는 운명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다.
이 묵직한 통증을 견딜 수 없어서 잠을 자는 걸까? 그리하여 다시 침대에 눕고는 눈을 감는다. 그러다가 10시 언저리 무렵이면 신경질을 부리면서 잠에서 깬다. 전화벨이 울린다. 주말을 제외하곤 평일엔 어김없다. 아버지다.
"뭐하노?"
"그냥 있어요."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누워 있나?"
"네."
차마 잔다고는 말 못 한다.
"초밥 사줄게, 나와라."
"괜찮은데요......"
"초밥 좋아하잖아.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 운동도 되고 좋잖아."
"오늘 추워서 별로예요. 걷는 건 오후에 할게요."
"그, 그래? 알았다."
우리의 대화는 대게 1분 내외로 끝난다. 아버지의 메뉴는 초밥에서 어탕국수, 칼국수, 한정식 등으로 메뉴만 바뀔 뿐이다. 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반갑게 받아본 적이 없다. 늘 내가 자고 있을 때,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때 전화를 거시기 때문이다. 불퉁하고 볼멘 목소리의 딸이 어떤 심정일지 아버지는 알고 있지만 이미 일흔 줄에 들어선 아버지는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딸이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언급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하신다. 하지만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내 고집이 쇠줄 같다.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딸에게 전화를 거는 걸까? 우울증을 10년이나 달고 사는 자식이 있는 부모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그 모른다는 답 때문에 나 역시 부모된 인간이지만 영원히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마음일까? 제발 오늘은 응답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일까?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9시 14분. 오늘은 자지 않고 책을 보며 아버지의 전화를 기다려볼까? 잠에서 깬 목소리가 아니라 그나마 멀쩡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볼까?
혼자서 갈등하지만 내겐 잠이 더 좋다. 아버지가 전화를 걸더라도 일단 잠을 더 자야겠다. 내겐 부족한 건 잠뿐만이 아닌 것 같다. 자식된 도리도 부족하고 생기도 부족하고 활력도 없다.
잠아 달아나라
내게서 달아나라
내게서 사라져라
밤에만 찾아오렴
무거운 밤에만
살그머니 찾아오렴
나는 알 수 없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는 아버지의 전화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잠을 포기할 수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을 놓칠 수 없다. 그러니 매일 거절당할 줄 알지만 매일 전화를 거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영원히 모를 것 같다.
변명같지만 ...
매주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제가 운전해서!!!)
아버지와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다들 한 마음으로 전화 부탁하시니
오늘은 꼭 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