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엄마의 음식
지친 하루의 끝, 머리가 복잡하고 몸이 고단할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의 ‘서대 조림’입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닙니다. 서대 조림을 먹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여수의 바다 냄새를 기억하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혹 그렇지 않다면, 엄마가 여수 사람 이거나 최소 여수 며느리는 될 겁니다. 그것은 여수의 가정식, 밖에서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엄마의 음식이거든요.
엄마는 특별한 반찬이 없는 날에 서대 조림을 해주곤 했습니다. 납작한 냄비에 조려진 반건조 서대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웠죠. 자작한 국물은 밥에 비벼 먹기에 딱 좋았구요.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과 참기름 향이 어우러져 식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바쁜 하루에도 묵묵히 가족을 챙기던 엄마의 정성이 서대 조림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사는 동안, 나는 그 음식이 주는 안락함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문득 엄마가 그리운 날,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집에 서대 있어?" "응, 쌔부렀지." 엄마는 다듬어진 서대를 3팩으로 소분해 택배로 부쳐줬습니다. 엄마의 레시피대로 서대 조림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납작한 냄비를 꺼내 물을 자작하게 붓습니다. 두툼하게 썬 감자를 깔고 그 위에 반건조 서대를 올려요. 고춧가루와 간장을 섞어 양념을 만들고 적당히 물에 풀어줍니다. 재료들이 따갈따갈* 끓어오르는 동안 풍겨오는 냄새가 저를 어린 시절 식탁 앞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엄마가 분주히 움직이며 "다 됐어, 얼른 와."라고 말하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듯했어요. 자작한 국물이 적당히 보타질* 무렵,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온기가 피어오릅니다. "그래, 이거지." 비록 엄마의 손맛과는 좀 다르지만, 그것은 여전히 나의 서대 조림입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음식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에요. 서대 조림 한 접시에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엄마의 사랑과 유년의 흔적을 떠올리며, 오늘도 따뜻한 시간을 맛봅니다.
*따갈따갈 : 물이 끓는 모양을 말하는 사투리
*보타지다 : 국물이 졸아드는 것을 말하는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