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끼 한 잔이 가르쳐준 것
7년 전 히비끼 하모니를 처음 마셨습니다. 너무 가볍고 부드러웠습니다. 잔을 입에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과장이 심하다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갑자기 술이 사라져 당혹스러운 기분을 아직도 잊기 힘듭니다.
그 시절 저는 은은하고 우아한 맛보다 농밀한 쉐리향과 강한 존재감을 쫓았습니다. 원액에 물을 희석시키지 않은 위스키 그 자체를요. 그래서 '글렌파클라스 105'나 '아벨라워 아부나흐' 같은 캐스크 스트랭스(Cask Strength) 위스키를 선호했습니다. 입술에 닿는 순간 알코올이 증발하며 남기는 시원하고 건조한 느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잔을 타고 내리는 묵직한 바디감, 콧속을 치고 오르는 깊은 향과 목구멍을 지나는 불길 같은 뜨거움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생기고 강한 위스키를 즐기던 시절과 점점 멀어졌습니다. 여유롭게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호사가 되었죠. 그렇게 한동안 위스키를 잊고 살았는데, 남편이 어쩐 일로 히비끼 하모니를 한 병을 사 왔네요. 아이를 재우고 생긴 짧은 자유시간, 별 기대 없이 잔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이전과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계곡물처럼 부드러웠습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가볍고요. 은은한 단맛, 오크와 과일이 어우러진 향이 입안에 퍼졌습니다. 그 여운이 잔잔한 물결 위 윤슬 같이 남네요. 예전에는 ‘물을 마신 것인지, 술을 마신 것인지 모르겠다’며 야박하게 평가했던 이 위스키가, 이제는 제게 가장 편안하고 온화한 한 잔으로 다가왔습니다.
'원래 이렇게 좋은 술이었나?' 생각하다가, 변한 것은 위스키가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닫습니다. 예전의 저는 인생을 진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성이 뚜렷하고, 흔들림 없는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적당히 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한 점을 찍어놓고 미친 듯 달리고, 힘을 뺄 줄 몰랐습니다. '짧고 굵게'가 체질이고 그게 '나'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며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되고 점차 부드러움과 균형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불쑥 자장가를 따라 부르는 밤, 혹은 아이와 나란히 앉아 구름을 보며 딸기를 먹는 오후의 시간처럼. 이제는 강렬한 순간만이 아니라, 가볍고 은은한 순간들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히비끼라는 이름처럼,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오래도록 남는 여운일지 모릅니다. 바뀐 취향을, 변한 나를, 스스로 꽤나 낯설어하면서도 마음에 들어 합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 채 변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