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뺑뺑이가 답일까?

100-09.

by 최고미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문해력 업! 예쁜 손글씨 필사 클럽'을 만들었더니 수강문의가 계속 들어온다. 연필을 내려놓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익숙한 알파 세대 아이가 있는 학부모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나 학원 숙제를 할 때 글씨를 보면서 걱정과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지도 못하겠거니와, 연필 잡는 법도 잘못됐고, 글씨를 쓰는 자세가 안 좋으니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있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부모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아이들이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하루 일과가 바빠도 너무 바쁜 아이들이다. 학원 4~5군데는 기본이다. 맞벌이를 하는 집에서는 돌봄을 위해 학원 여러 군데를 돌고 있고,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혹시나 뒤처질까 불안해서 다른 아이들 다니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원을 보내기도 한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국어, 영어, 수학을 미리 해둬야 중학생이 돼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많다. 과목 공부뿐만 아니라, 예체능도 한두 개쯤은 해야 하니 학원 5군데씩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학원을 돌고 집에 오면 저녁 6-7시가 되고, 저녁을 먹고 8시쯤부터 학원 숙제하기 바쁘다. 학원마다 숙제는 왜 그렇게 많은지 밤늦게까지 숙제 쳐내느라 숨 가쁜 요즘 아이들이다.

그런데 부모가 돌봐주지 못하는 불안감이나 아이가 뒤처질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학원을 보냈는데, 그 불안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왜 그대로 있을까?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도 아이도 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을 살펴볼 여유 없이 학원 뺑뺑이만 하고 있으니, 불안과 걱정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목표와 방향 설정을 하지 않았기에, 학원을 보내도 계속 채워지지 않는 갈증만 느끼는 것이다.

얼마 전 짧은 영상을 하나 봤는데, 주제가 '이럴 때 학원 보내지 마세요'였다. 학교에서 집중 잘 못하고 수업을 잘 듣지 않는다면 학원 보내지 말라는 얘기였다. 백 번 공감하는 내용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 샐까? 학교 수업조차 집중해서 들을 의지가 없는데 학원에 백 날 가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기본적인 공부력을 가지고 있어야 보충이나 심화과정으로 학원에 다니는 것이 효과가 있다.

'바른 글씨 쓰기'는 바로 기본적인 공부력을 기르는데 필요한 훈련이다. 글씨를 올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부터 몸에 배어야 한다. 연필을 잡는 손의 힘도 필요하다. 집중해서 올바른 획순에 맞춰 글자를 써야 한다. 글자의 크기를 일정하게 하고, 문장을 쓸 때 줄이 가지런해야 한다. 이렇게 글자를 쓰려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겠지만 매일 조금씩 꾸준히 연습하면서 몸에 익히다 보면 어느새 집중력과 지구력이 생긴다. 바로 그 집중력과 지구력이 공부의 기초체력이 된다.

그러나 요즘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서체를 갈고닦는 수련과정을 아예 하지 않는다. 글자를 깨치기 전부터 태블릿 PC로 음성검색을 해서 원하는 영상을 찾아본다. 연필보다는 자판을 두드리거나 화면을 터치하는 데 더 익숙하다. 진도를 빨리 나가기 급급해서 소리가 글자로 표현되는 원리를 충분히 익히지 못하고 그저 글자들을 보고 따라 그리기 바쁘다. 언어의 삼박자인 듣기와 말하기, 읽기, 쓰기를 한데 융합하지 못하고 제각각 따로 놀고 있다. 그래서 받아쓰기도 안되고, 머릿속에 있는 말을 글로 쓰지 못하고, 못 알아보는 그림 같은 글씨를 쓴다.

옛 선조들은 서체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여유 있고 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서체는 정갈한 반면에 성격이 급하고 학식이 모자란 사람들의 서체는 반듯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붓글씨 연습을 하면서 글자를 깨치는 것을 기본 공부로 여겼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손글씨 쓰기 연습을 부지런히 했다. 8칸 또는 10칸 공책에 반듯하게 쓰기 연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익혔다. 올바른 자세로 문장을 따라 쓰면서 공부의 기초체력을 단련시켰다.

선진 교육으로 알려진 북유럽 지역의 학교들은 타이핑해서 출력한 보고서 작성을 아예 없어버렸다는 기사를 접한 적 있다. 연필을 종이 위에 서걱거리며 손글씨를 쓰는 것이 아이들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글씨 쓰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사유의 시간을 조금 더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활용 능력은 공부의 초석을 다진 후에 길러도 충분하기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익히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수고로움을 줘야 한다. 바른 자세로 앉아 연필을 올바르게 잡고 반듯한 글씨를 종이 위에 사각사각 적도록 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문장 속 글자 하나하나 음미하고 소리 내어 읽으며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둘러 가고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공들여 쌓은 탑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학원 뺑뺑이 하며 모래성 쌓으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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