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레인도 잘한거야!!

100-11.

by 최고미

수영경기장은 8개 레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레인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배정받고 싶어 한다. 제비뽑기 같은 것으로 자리를 배정한다면 오히려 공정할 것 같은데 선수들에게 레인 배정할 때 순위로 한다고 한다. 가장 가운데 4번 레인은 1등, 5번 레인은 2등에게 배정한다. 3번 레인은 3등, 6번 레인은 4등, 2번 레인은 5등, 7번 레인은 6등, 1번 레인은 7등, 8번 레인은 8등에게 배정하는 것이 의례적이다. 어린이 동화 <5번 레인>에서 나루가 매번 초희에게 져서 2등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제목이 이해가 간다.

나루는 수영이 좋아서 하는 것은 맞지만, 재미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혹독한 훈련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기고 싶은 욕심과 이겨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힘든 훈련들을 참고 견딘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루는 생각한다. 강력한 라이벌인 초희를 이겨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수영 연습을 하는 나루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루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 기를 쓰고 1등 하던 반 친구를 이겨보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댔던 만년 2등이었던 소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성격이 털털하고 리더십도 있으면서 밝은 친구였다. 게다가 공부도 꽤 잘해서 전교 상위권에 있던 그 친구가 하필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사실 반에서 1등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새 학년이 되어 교실을 둘러보니 그 친구만 없으면 반에서 1등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그 친구가 있으니 이번에도 계속 2등만 하겠구나 생각하며 약간 실망감도 들었다.

그 친구는 어떤 문제집을 푸는지, 공부를 얼마나 하는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뭐 하는지 계속 예의주시하며 은근히 견제했다. 그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면 책상에 앉아 책만 보는 학생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학교 앞 매점에 같이 놀러 가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자기도 하고, 딱히 책을 펼치는 시간이 길어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그 친구가 얄미워지기까지 했다. 이상한 열등감으로 한 번은 꼭 이겨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상에 꼭 붙어 공부했다.

시험 결과는 항상 2등이었다. 그 친구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인지 좌절감이 밀려왔다. 2학기 중간고사까지 치르고 나서 힘이 많이 빠졌다. 분한 마음도 생겼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저 내 마음에서 가시처럼 돋아난 시기와 질투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한 번 남은 시험에는 꼭 원하는 결과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공부하는데 이기고 싶은 욕심이 너무 앞섰던지, 자꾸 반칙을 하고 싶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친구를 꼭 이기겠다고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틀릴 것 같은 내용을 살짝 메모한 커닝 페이퍼를 만들었다. 초희가 부적같이 생각하는 수영복을 나루가 몰래 훔치는 것처럼.

시험 때 역시나 헷갈렸던 부분에 대한 문제를 만났다. 커닝 페이퍼를 몰래 꺼낼까 말까 고민을 수없이 했다. 그 속에 답이 있는데, 이 문제를 맞히면 그 친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펼쳤다가 괜히 걸리면 그건 더 최악인데,,, 여러 목소리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결국 커닝 페이퍼를 펼치지 못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내 욕심을 짓눌렀다. 그 문제는 결국 틀렸고, 한 문제 차이로 나는 또 5번 레인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나에게 4번 레인에 있던 그 친구가 다가왔다.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자신이 엄청 노력하게 됐다고 했다. 덕분에 공부 습관을 잘 다질 수 있게 돼서 고맙다고 했다. 성적이 좋은 친구가 열심히 하니 자신이 안 할 수 없겠더라며 각자의 꿈을 위해 함께 열심히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양손의 엄지를 들어 올려 보여줬다.

커닝 페이퍼를 펼쳤다면, 그 친구를 이기고 1등은 해도 기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나루가 초희의 수영복을 훔친 것이 들키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유혹을 잘 이겨낸 15살의 내가 떠올랐다. 초희는 대회에서 자신이 이기면 나루를 용서해 주겠다고 한다. 용서를 받고 싶어 일부러 져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나루는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른다. 이번에도 초희가 이기는데, 나루는 어떻게 지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4번 레인에 오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5번 레인도 잘했다고 스스로를 응원해 주는 힘은 바로 정정당당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비겁한 1등보다는 당당한 2등이 되는 것이 더 낫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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