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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같이 쏟아 붓는다. 눈 앞에 물줄기 커튼이 드리워진 것 같다. 회색 구름의 무게만큼 마음이 무겁다. 걱정을 가득 안고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한 손에 돌돌 만 우산을 들고 종종걸음을 옮긴다. 마음이 바쁘다.
우산 아래에 있으니 장대비도 어쩌지 못한다. 언제쯤 나오려나? 목을 쭉 빼고 학교 정문 앞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퍼붓는 비를 바라보며 선뜻 나오지 못하고 서성이는 한 아이에게 시선이 고정된다. 비가 내리는 속도보다 빠르게 달려가 아이 앞에 선다. 나를 발견한 아이가 환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나도 함께 싱긋 웃는다.
우산을 펼쳐 아이에게 씌워준다. 우산을 받아들며 아이는 엄마가 와서 든든하다고, 비가 많이 와도 걱정없다며 조잘조잘 신난 마음을 한가득 비보다 더 퍼붓는다.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폭우 소리를 잔잔한 배경음악으로 바꾼다. 나란히 우산 하나씩 들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 리듬을 발걸음에 실어 걷는다. 늦지않게 우산을 씌워줄 수 있어 다행이다.
내가 이 아이만할 때엔 내 엄마가 우산을 씌워주셨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엄마가 씌워준 우산을 받아 내 아이에게 전해준다. 우산을 기다리던 아이가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되고나니, 이제 조금은 사랑을 알겠다. 받는 기분도 좋지만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크고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사랑이다.
무수히 많은 빗방울들이 아무리 무섭게 다그쳐도 우산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올테면 와보라는 듯이 방수능력을 뽐낸다. 그 어떤 방탄조끼보다도 강하다. 바짓가랑이는 좀 젖는 아픔이야 있을 수 있지만, 쏟아붓는 폭우 속을 뚫고 가라고 동그란 방어막을 씌어준다. 지름 세뼘 공간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셈이다.
우산을 누군가에게 씌워준다는것은 두두두두 빗방울이 쏟아지는 험난한 세상살이를 헤쳐나가라고 응원하며 안전망이 되어주는 일이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면 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빗물인지 비를맞아 아파서 흘리는 눈물인지 알 수 없다. 세찬 빗소리에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면 금새 알 수 있다. 우산 아래에서는 진짜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우산을 여러 개 들고다닐 수 있는 힘을 길러보기로 결심한다. 궂은 날씨에 여러 개의 우산을 들고 다니다가 우산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펼쳐 씌워줘야겠다. 비 맞지 말기를, 또는 비를 맞았어도 더 다치지 말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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