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충전기

100-16.

by 최고미

요즘에는 뭐든 무선이다. 휴대폰은 이미 무선기기의 조상님이고, 무선 청소기, 무선 TV, 무선 CD 플레이어부터 무선 믹서기,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무선인 것도 있다. 무선은 전선이 없으니, 충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충전을 잘 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충전기부터 찾는다. 미리 충전해두지 않으면 필요할 때 쓸 수가 없다.

"안아 주세요."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며 듣는 소리다. 이 말을 듣는 동시에 두 팔을 벌려 내 품 안으로 작고 여린 온기를 맞이한다. 어린아이도 하루를 살아내느라 온종일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냈나 보다. 아무 말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내 가슴에 온몸을 내어 맡기듯 기댄다. 오늘을 살아내느라 수고했다는 듯이 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등을 토닥인다.

5분 후, 기댔던 몸을 일으킨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충전이 다 됐다'라며 이를 닦으러 화장실로 향하는 아이의 모습이 어째 짠하다. 제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리며 뒤따라갔다. 잠잘 준비를 다 마친 아이와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어떤 아이와 무슨 놀이를 했다는 둥, 이번 주에 있을 체험활동이 기대된다는 둥,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다는 둥,,,,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가 새근새근 소리로 완전히 바뀐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히 몸을 일으켜 나왔다.

매일 밤, 아이는 ‘엄마 충전기’를 찾는다. 아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나름의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다. 역할놀이를 하고 싶은데 다른 친구는 블록놀이를 하고 싶어 해서, 같이 못 놀았던 게 서운하다 한다. 점심시간에 조금 매웠지만 깍두기를 용감하게 먹었고, 음악 수업 때 우쿨렐레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엄지에 물집이 생겼다. 글자 쓰기를 하고 있는데 티읕을 거꾸로 써서 다시 써야 했단다. 이런저런 고충이 7살 아이에게도 제법 있다는 사실을 새삼 놀랍다다. 힘든 하루를 이겨냈으니 더 힘껏 안아서 아이에게 기운을 충전시켜 준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시절을 지나온 어른 시각에서 불안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저렇게 하면 넘어지고 다칠 것을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기에, 초기에 막아서기도 한다. 금이야 옥이야 상처 하나 안 받고 자랐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 근심과 불안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위험할까 봐, 실패할까 봐, 다칠까 봐, 지레 걱정하며, 하나하나 모든 것을 다 해주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관심을 두면 세상을 경험하고 알아갈 기회를 섣불리 빼앗을 수 있다. 회사 인사과에 있는 친구가 직원의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힘들어한다며 부서를 옮겨 달라는 얘기였다. 그 얘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선배가 자신의 무릎을 탁 내리쳤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직원이 출근을 못하겠다는 부모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아이가 중국어 학원을 가야 하니 야근을 시키지 말아 달라는 부모의 연락도 있었다. 대학 시간표를 엄마가 대신 짜서 수강신청을 해준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목덜미가 뻐근했다.

‘헬리콥터 부모.’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며 헌신적으로 과잉 양육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부모들은 애초에 힘든 일, 어려운 일, 실패할 일을 아이가 겪지 않게 차단시켜 버린다. 지나치게 두껍고 높은 울타리는, 세상에 아이를 내보내기 두려운 부모들의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 울타리 안에만 아이를 가두는 것은 아이의 에너지를 섞게 만든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휴대폰을 발견했다. 새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고 방전된 채, 서랍 깊숙한 곳에 있던 그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했다. 켜지는가 싶더니, 충전기를 빼자 얼마 못 가 꺼졌다. 배터리가 충전하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게다. 에너지를 쓰고 다시 충전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쓸모를 지켜온 휴대폰이 너무 오랜 방전으로 재충전하는 능력조차 잃어버렸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도 자식에게 계속 충전을 해주셨다. 먹고살기 바쁘다며 품 안에 끼고 살지는 않았어도, 지나가며 '열심히 해'라고 툭 내뱉는 말 한마디, 그냥 말없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던 손길로 따뜻한 온기를 채워주셨다. 세상살이 서글프노 힘들 때도 있다며 '힘내라'라며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든든한 공감의 끄덕임도 잊지 않으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충전할 틈을 주지 않고 그저 온실 속 화초로만 키우는 요즘 시대의 부모와는 전혀 달랐다. 실패하고 깨지고 다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력을 길러준 것이다. 무심한 듯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길 하나로.

아이가 내 품에 기댄 몸을 일으키며 ‘충전 다 됐다’는 한마디에 부모로서 할 역할이 분명해졌다. 아이는 집에서 채운 에너지로 하루 삶을 경험하고 알아간다. 에너지를 다 쓴 후 집으로 돌아와 부모의 품 안에서 재충전한다. 충전하면서 다시 세상에 나갈 힘과 에너지, 지혜와 용기, 끈기와 인내를 차곡차곡 쌓는다. 그렇게 아이에게는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할 충전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세상을 나다니다 돌아올 곳. 돌아와 기운을 채울 곳. 그곳에서 기꺼이 ‘엄마 충전기’가 되어줄 것이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작가의 이전글삼칠일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