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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상담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방학 동안 어떻게 하면 좀 더 공부를 하게 할 수 있을지가 지금 부모님들의 최대 관심사처럼 보인다. 열에 아홉은 방학 동안 그냥 놀게 할 수 없어서 또는 여유 시간이 좀 더 있으니, 부족한 것을 더 채우고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느라 엄마들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상담하면서 부모님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 내가 숨 막힐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떨까 싶다.
방학이 다가오면 항상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방학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방학 때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꼭 한다. 그 이유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에게 방학이 학기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바쁜 시기로 다가오는 듯하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의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모르겠다고? 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과 좀 더 대화를 나눠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의 계획은 부모들의 전략에 묻혀버린다. 학기 중에 늘 아침 일찍 일어났으니 한 시간 정도만 더 잘 계획을 세운 학생이 있었다. 한 시간 더 자고 일어나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체격을 벌크업 해서 학교로 돌아가면 다들 자기를 대단하다고 엄지척해줄 생각에 신났다. 그러나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엄마가 아침 일찍 선행 수학 특강을 잡아놨다고 짜증이 제대로 났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보기에 자신의 생각이 무시당한 것이었다. 왜 묻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냐고 소리를 빽 지른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는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아들을 설득해 달라고 했다. 이것 또한 아이의 의견을 듣지 않고 엄마의 생각만으로 밀어붙인 격이다. 방학 때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엄마가 짜준 시간표에 맞춰 지내느라, 방학 계획을 세우는 것을 모르게 됐다. 모르겠다는 말 뒤에는 계획 세우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뜻이 깔려있는 셈이다.
사실 한 학기 동안 부지런히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업을 해온 아이들이다. 방학 동안에는 학업에 집중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충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방학이 있는 이유다. 그러나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목표의식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학 일정을 세워본 적이 없으니,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방학뿐만 아니라 주말이나 쉬는 시간에 무엇인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수업 사이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나 살펴보면 대부분 유튜브나 웹툰을 보거나 숏폼 콘텐츠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고 있다. 수업 시작 전에 쉬는 시간 동안 뭐 했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주말 동안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대다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별 계획 없이 그냥 티브이를 보거나 SNS를 돌아다니거나 게임을 하는 등 무의미한 것으로 그저 시간을 때웠다는 뜻이다.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아이들에게 방학의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 그냥 마음대로 시간을 쓰라고 줘보는 것도 좋다. 쉽고 빠르게 재미를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에게서 치워버리고 그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써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아이들을 심심하게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빈둥거릴 것이다. 그러다 아이들은 찾는다. 좀 더 즐겁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쉰다는 것이 그저 뒹굴뒹굴 침대나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유튜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내면을 채워 넣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빈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학사일정 속에서 방학은 빈 시간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 시간을 일로 꽉꽉 채워두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여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쉬는 것도 잘 쉬어야 일상을 해나갈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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