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호불사 변시타인 (一毫不似 便是他人)

100-24.

by 최고미

전주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 어진이 모셔져 있다. 경기전을 둘러보면서 조선 왕실의 뿌리가 전주라고 확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진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보여준 5분 남짓한 영상을 봤다. 영상의 마지막에 “일호불사 변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이 말이 진하게 여운으로 남았다.

어진이 훼손됐거나 다시 그려야할 때 모사를 한다. 원본과 털오라기 하나라도 바뀌지 않게 복사기로 찍어내듯 그려내야하는 어진 모사의 과정을 보면서 저절로 숙연해졌다. 수염 한 올, 머리카락 한 올, 심지어 눈동자 빛깔과 눈가주름 하나까지 세심하게 그려내는 모습에 숨죽였다. 혹여나 눈꼽만큼의 실수가 있을까 조심하듯이 말이다. 색을 칠할 때에도 색감이 틀리지 않도록 농도를 딱 맞춰야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 것과 오차없이 그려낸 모사화를 보면서 섬세한 작업과정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털 하나라도 달라지면 다른 사람이라는 말을 계속 되뇌어보니 참 맞는 말이기도 하다. 민감한 사람들은 눈썹을 아주 살짝 각도를 다르게 한 것도 눈치챈다. 눈썹색깔이 조금 더 진해졌는지 아닌지도 안다. 앞머리를 0.1mm만 달라져도 금새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아주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는 섬세함을 가진 사람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가진다.

관찰이란 어떤 대상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을 잘하려면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관심이 없다면 눈길이 안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관심 있으면 주고 싶지 않아도 눈길을 주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관심이 있으면 계속 보고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봐도 또 보고싶은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잠깐 스치듯 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세심히 이목구비 하나하나 담아두고 싶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다. 닳아 사라질까 아끼는 마음으로 모든 세세한 것들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내는 것이 진정한 관심이고 사랑인 것이다.

왕의 초상화를 모사하는 마음은 대상의 머리카락 하나도 아끼고 눈썹 한 올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다. 털 하나라도 대충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본다면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떤 사람도 하찮은 사람이 없다. 터럭 하나도 대충 넘기지 않는 진심을 마음 속에 가득 담아둬야겠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작가의 이전글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