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7. 쉼이 깃드는 순간
휴가시즌이다. 매 년 여름휴가를 어디서 무엇을 할 지 정하는 것도 만만치않다. 치밀한 계획형의 남편은 연초부터 휴가일정을 짠다. 행선지를 정하는 것부터 숙박, 교통편, 둘러볼 것, 맛집 등등 정보 수집에 늘 진심이다. 올해도 늘 그랬듯 엑셀로 정리해둔 여행계획을 뿌듯하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휴가시기가 다가옴을 깨닫는다.
여행을 가기 전 설렘이 참 좋다. 여행지에서 볼 것 먹을 것 등을 기대하며 문 밖을 나서는 발걸음은 늘 경쾌하다.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묘한 긴장감으로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휴가와 여행이 필요한 이유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해야 휴가일까 종종 의문이 든다. 휴가를 잘 보내는 여러 방법이 있을텐데 강박처럼 여행지를 고르고 숙박을 예약한다. 관광지와 유명맛집을 꼭 다녀와야 휴가 때 뭘 좀 했다고 으스댈 수 있을 것 같다. 여행 자체는 좋지만 뭔가 뽕을 뽑아야할 것처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즐겨 채우기 바쁘다. 몸과 마음에 여유공간을 놔두지 않고 꽉꽉 채운다. 휴가의 의미가 무색하다.
휴가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면 좋겠다. 평소에 바빠서 둘러보지 못한 주변을 천천히 살필 여유를 부리고 싶다. 늘 나다니는 동네에서 새로움을 느낄 기회를 발견하는 재미를 경험해도 좋을 것 같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 바쁜 일상으로부터 쌓인 번잡함을 비워내고 몸과 마음을 담백하고 간결하게 정리하고 싶다.
진정한 휴가는 다시 돌아간 일상이 새롭고 낯설게 느끼며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올해도 그 쉼을 가지지 못했다. 여행이 즐거웠지만 일상의 연장선 같았다. 아직 휴가가 하루 더 남았으니, 진짜 잘 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읽으려고 했지만 계속 미뤄둔 책을 꺼내본다. 남은 하루는 진짜 휴가를 즐기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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