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부모의 불안입니다

100-02.

by 최고미

"학교 마치고 4시 영어 학원 있어서 그 사이가 비워져 있어요. 뭘로 좀 채워볼까 생각하다 여기 왔어요."

수강 등록 사전 상담 때, 이렇게 비워진 시간을 채우려고 알아보는 중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수업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일정을 물어보면 깜짝 놀란다. 초등 2학년이 1시 하교 후, 영어학원 갔다가 피아노 학원을 간다. 그 뒤에 발레나 태권도를 가고, 독서토론 학원 갔다나 일반과목 공부방을 간다. 그게 끝이 아니다. 집에 오면 패드 학습지를 하고, 화상영어수업을 듣고, 학원 숙제까지 모든 일과를 마무리하면 9시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는 화요일 목요일 2시에서 3시 사이가 비워져 있어 내가 운영하는 공부방을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어른인 나보다도 아니 연예인보다도 더 빠듯한 일정을 10살도 안 된 아이가 해나가고 있다.

아이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 시선은 계속 아이에게 향해 있었다. 빡빡한 일정을 아이가 소화해낼 수 있었던 건지 살펴봤다. 아이에게 물었다. 비워져 있는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하니, 엄마를 슬쩍 쳐다보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대답에 나는 활짝 웃으며 안심했다. 다행히 아이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시간표에 비워진 공간이 불편한 부모들이 제법 많다. 그 시간에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남의 집 아이들은 앞서가는데 우리 아이가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 걱정한다. 시간을 금쪽같이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철저히 전승하고 있다. 틀린 말도 아닌데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아이를 넣어두고, 부모와 아이 모두 괴롭다. 시간의 틈새가 인생의 큰 구멍을 만들까 불안해 꾹꾹 메꿔 넣는다.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들의 시간과 다르다. 시간의 속도는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는 농담 섞인 얘기 속에 아이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은 돌아서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한 시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10분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다. 10분 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상상만으로 좋아했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좋아하는 웹툰을 보면 최고의 10분을 보낸 거라고 얘기한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10분만으로도 최고의 행복을 얻는데, 1시간이면 오죽할까. 아이들은 말 그대로 갓생을 외치고 엄지척을 하며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만의 행복으로 채울 것이라 장담한다.

이때 분명히 듣는 소리가 있다.

"시간을 주면 놀기만 하니까 학원이라도 보내야 안심이 되죠."

그건 부모의 불안일 뿐이다. 아이들로부터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말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도, 놀고 있는 아이들이 불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른들의 모순적인 논리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넘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종종 아니 사실 자주 생각이 쏟아져 나오는 문을 굳게 닫아둔 아이들을 본다. 멸치 대왕의 꿈을 마음껏 해몽해 보자는 얘기에 각자의 꿈 풀이를 조잘조잘 얘기하며 웃고 떠들고 있는 와중에 한 글자도 못 쓰고 '음,,, 음,,,'하며 끝난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마음껏 사색하는 시간이 그 아이들에게는 없다.

영어로 글로벌하게 나아가고 싶은 목표가 있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피아노 음색에 힐링이 된다며 피아노를 배우고, 체력단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태권도장을 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학원생활이다. 아이들 스스로 목표가 생기고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효용성이 생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로 학원 뺑뺑이 하는 것은 아이를 기계로 만들 뿐이다.

아이가 자신의 일과를 자유롭게 부모와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아이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부모의 눈에는 그저 뒹굴뒹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심심한 시간을 가진 아이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생각한다. 멍하게 그네만 왔다 갔다 하고 있어도 괜찮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과에서 벗어나면, 사색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면, 굳게 닫힌 생각의 문이 열린다. 숨 쉴 틈새 사이로 아이의 생각과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시간표의 빈 공간은 그저 부모의 불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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