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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특강을 기획했다. 공부방을 오픈하고 처음 맞이하는 방학에 수업을 제대로 맛 볼 특강을 준비하고 싶었다. 주변 교습소나 학원에서 하지 않는, 그렇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수업을 생각해봤다. 그렇게 나온 특강 중 하나가 "문해력 업! 예쁜 손글씨 필사클럽"이다.
책읽기 하고 독후활동 및 독서일기 작성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한숨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바로 글씨였다. 나도 그렇게 예쁜 글씨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정도의 글씨는 쓸 수 있다. 명필까지는 아니어도 쓰고자 하는 문장을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연필 잡는 것부터 잘못되어 글씨를 쓰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알아보기 힘들거나 너무 들쑥날쑥한 크기로 쓰거나 줄이 오르락 내리락 파도치고 있을 때에는 천천히 다시 써 보자고 말한다. 그 정도면 다행이다. 한 문장을 쓰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제법 있다. '무엇을 심어야 할 지 정해야 한다'는 문장 하나를 쓰는데, '무엇을 할 해 정한다'라고 쓰는 식이다. 문장을 소리내어 읽으며 써보라고 해도 글자를 차례대로 써내려겨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참 괴롭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우선 글자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 글자들이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서 어떤 소리가 난다는 것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그저 따라 쓰기 급급했을 것이다. '뭘'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멀,' '몰,' 이렇게 쓰는 아이들에게 모음을 'ㅝ'로 써야 한다고 말해주는데도 고치는데 끙끙댄다. 그러고는 '워'라고 쓰고 맞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소리기호를 결합해서 원하는 글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니, 소리내어 읽으며 써보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소리와 글자가 따로 놀아 글로 써내려가지 못하는 것이다.
글씨를 제대로 못 쓰는 두 번째 이유는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글을 배우면서 단어들을 소리내어 읽은 후, 반드시 써보는 연습을 해야한다. 단어쓰기가 익숙해지면 한 문장을 소리내어 읽고 써보기를 하면서, 차곡차곡 어휘력을 쌓아가야 한다. 어떤 어휘를 안다는 것은 듣기, 읽기, 쓰기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인데, 글씨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은 이 세 가지 중 하나 이상을 그냥 지나쳤다. 글자를 알기 전에 단어를 충분히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글자 공부를 하면서 충분히 글자를 보고 읽고, 들은 소리를 글자로 써보는 연습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말은 유창하게 하는 것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실제로 사용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글로 쓸 수 있는 어휘력이 부족한 상태일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좋은 문장을 담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마음에 와닿는 문장 하나를 선택해보라고 하면 '모르겠다'는 답을 한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냥 이야기의 전개만 이해하고 넘어간 경우가 많다. 읽으면서 좋은 표현이나 새로 알게 된 어휘들은 마음 속에 한 번 더 새기면서 소리내어 읽으며 글자로 써 보는 연습을 하면, 그 어휘와 표현을 훨씬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다. 꾸준히 그런 훈련을 해 나가면서 문해력을 기르는 것이다. 맨날 쓰는 단어만 글자로 쓰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익힌 표현과 단어를 말과 글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글을 쓸 때 글씨를 좀 더 또박또박 단정하게 써내려갈 수 있다. 충분히 어휘와 문장을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씨로 표현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글씨를 쓰면서 문해력도 올리고 글쓰기가 더 수월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사클럽' 특강을 기획했다. 연필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좋은 명문장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음미하고, 또박또박 쓰면서 방학 한 달 동안 매일 40분씩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나갈 것이다.
진짜 공부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고작 글씨쓰기 연습이 아니다. 한 달 동안 꾸준함이 가져다 주는 변화를 느끼면서, 무엇이든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잘해내기 위해서는 끝까지 해내겠다는 마음가짐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실행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글씨를 잘 쓰는 것에서 성취감을 맛보면서, 공부근력을 키워나갈 기초토대를 쌓는 것이다. 진짜 공부는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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