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변화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 변화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새롭다기보다 원래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고 보였다. 그 후로 여우는 며칠을 굶었다. 이상하게 사냥하고픈 의욕이 올라오지 않았다. 또다시 입안의 먹을 것을 놓치게 되면 그때는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의 배고픔을 참기 어려워진 지경에 이르러서 간신히 다시 사냥에 나갈 마음이 들었다.
밤이 되자 다시금 어둠이 내려왔고 여우는 자동적으로 몸을 굴 밖으로 향했다. 여우의 기다란 주둥이가 먼저 나오고 머리를 덮고 있는 커다란 두 귀가 뒤를 이었다. 두 여우가 거주하는 굴은 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산이라 해도 들쥐들은 여기는 그냥 평지구나 여길 정도로 제법 넓고 평평했다. 굴 입구로 나오면 멀리 왕국의 경계선인 '타이탄의 끝‘이 멀리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신선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키기 위해 고개를 위로 잠시 젖혔다 원래의 위치로 살며시 내렸다.
“오늘은 불타는 세 봉우리 산 쪽으로 가 봐야지.”
여우는 당일의 행선지를 매번 굴 밖에 나오는 순간 정했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 바람 속에 느껴지는 공기의 무게, 바람을 타고 오는 동물들의 작은 지저귐 속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산맥 쪽으로부터 작은 동물들의 웅얼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불타는 세 봉우리와 타이탄의 끝은 왕국의 양 끝에 위치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하나는 높디높은 곳에서 내려보았고, 하나는 낮디 낮은 곳에서 올려 보았다- 행선지를 정한 여우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머리를 틀었다. 뒤로 고개를 돌리는 찰나의 순간 먼 곳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응…?! 뭐였지…? “
평소와 다른 이질감에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여우는 무의식적으로 큰 귀를 번갈아 쫑긋 움직이며 지나온 시선을 되짚어 봤다. 그러자 여느 때와 같은 여우굴 앞 풍경을 마주했다. 산 중턱의 평지 - 여우의 발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오는 풀들이 무성무성 자라 있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인이 크고 작은 돌들을 듬성듬성 옮겨 놓은 듯한 내리막길이 보였다. 암석으로 이어지던 내리막은 암벽으로 끝을 맺으며 급격히 산 아래로 떨어졌다. 산 아래에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웅장한 숲이 끝없이 펼쳐졌다. 정확히는 끝없이 ‘타이탄의 끝’까지 이어졌다. 동물들을 통째로 짚어 삼킨다는 그 무서운 ‘타이탄의 끝‘ 갈대숲과 늪지대도 이곳에서는 흐릿하게 보이는 옅은 땅덩어리같이 보였다. 그조차도 낮에나 감상이 가능하였고 밤에는 아무리 달님이 열과 성을 다해 비춰도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낮에는 땅과 하늘의 경계가 서로 색다른 푸르름 속에서 선명하게 대조되었다. 땅은 녹음의 푸르름을 뽐냈고 하늘에는 또 다른 호수가 하늘에 떠있듯 파랬다. 하지만 밤에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땅과 숲은 있는 듯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또한 없는 듯했다. 암흑 속에서 경계가 희미해졌을 때는 오로지 별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하늘의 시작을 파악하였다. 짙은 어둠 속 먼 땅 끝에서 별들이 시작되었고 맞은편 땅 끝에서 빛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밤에는 별빛의 경계로 하늘과 땅을 분간했다. 여우는 오랜만에 시선을 올려 별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무수한 별들이 그곳에 있었다.
“정말 언제 봐도 끝이 없구나."
별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감탄의 마음이 가슴에 번졌다. 그렇게 그는 잠시 감상에 젖었다 이내 야행의 본래 목적이 떠올랐다. 사냥 길을 재촉하고자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다시금 선명한 반짝임을 느꼈다. 멀리서 반짝이던 별 하나가 물방울이 되어 땅에 흘러내리듯 떨어지고 있었다.
여우의 앞발이 뒤를 향하는가 싶으면 뒷발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곤 다시 뒷발로 땅을 힘껏 차고 올랐다. 작은 여우의 몸이 하늘을 비추고 있는 초승달처럼 말리듯 오므라들었다 쭉 곧게 뻗었다를 반복했다. 여우의 작은 발이 지면을 닿을 때마다 발톱 만한 작은 돌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지금까지 어떤 사냥물의 뒤를 쫓을 때에도 지금과 같이 집중한 적은 없었다. 여우의 본능적이 무작정 달리라 말하고 있었다. 주변의 돌무더기들을 급하게 뒤로 넘기며 치고 나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인가?’
여우는 뛰고 또 뛰었다. 돌무더기 길이 끝나고 암벽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쉬지 않고 달릴 생각이었다. 그 빛 방울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암벽 끝에서 산을 내려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벽 밑으로 울창한 나무 머리만 빼곡히 보이겠지만, 칠흑 같은 밤이라 빛나는 무언가는 눈에 띌지 모른다. 여우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열심히 네 발을 바쁘게 놀렸다. 흘러내리던 빛 방울은 속도를 점점 빨리 하더니 어딘가로 떨어졌다. 여우는 떨어진 지점이 멀지 않다는 생각에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이제 곧 절벽에 도달할 거란 생각에 속도를 줄이려는 찰나 절벽 끝에 빛나는 존재 하나가 여우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급히 속도를 줄이고 주변에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큰 암석 뒤로 몸을 숨겼다.
‘혹시 위험한 동물은 아닌지 확인해야겠어.’
호기심보다 생명의 안전이 우선인 동물적 본능이 뒤늦게 발동했다. 돌 뒤에 몸을 숨긴 채 밤공기를 크게 들이쉬었다 작게 내쉬었다 하며 숨을 고르게 했다. 곧 여우의 호흡이 침착하게 돌아왔지만 미지의 존재를 마주친 흥분에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우는 작은 몸의 떨림이 마치 땅의 흔들림처럼 느껴져 절벽 위의 존재가 눈치챌까 무서웠다. 하지만 몸을 돌 뒤에 숨긴 채로는 절벽 위의 돌아가는 상황과 미지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여우는 절벽 끝까지 거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에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용기를 내었다. 돌에 귀가 달린 것처럼 삐쭉하고 나오더니 뒤이어 긴 주둥아리를 가진 여우의 얼굴이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두 발자국, 두 발자국 조심스레 빛 방울 쪽으로 네 다리를 옮겼다.
절벽 끝에 코끼리 만한 빛을 내는 무언가가 서있었다. 그러다 점점 작아지기 시작해 물소 만해 졌다 이내 얼룩말 크기로 줄어들었다. 여우가 두어 번 더 돌 뒤에 몸을 숨겼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을 쯤에 작은 짐승의 크기로 작아져 있었다. 크기가 작아졌다기보다 몸에서 나오던 빛이 시나브로 잦아들며 원래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상대가 생각보다 작은 존재임을 확인한 여우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거리를 줄여보기 시작했다. 온몸을 은빛 털로 뒤덮은 여우 한 마리가 절벽 위에 서서 숲을 내려보고 있었다. 빛나는 보름의 달빛이 온전히 담긴 듯 아름다운 은빛 털이 갈대처럼 밤바람에 흩날렸다. 달님이 구름에 가려지고 나타날 때마다 은빛 털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몸에서 발광하던 빛은 사라졌지만 달빛을 받을 때마다 여우의 털에서 여전히 별이 빛나는 듯한 광채가 나는 듯했다. 바람이 불어 털이 휘날리면 절벽 끝 자리에만 하얀 눈이 나리는 듯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