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여우의 작은 가슴이 호기심으로 차 올랐다. 가득 담긴 호기심이 넘치지 못해 진동이 되어 격하게 온몸을 흔들었다. 우샤이를 보고 있으면 환하게 빛나는 달이 떠올랐고 붉은여우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같았다. 이 낯설고 신비한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끝없이 터져 나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우샤이를 가운데 놓고 끝없이 빙글빙글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질문 하나씩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일으키게 할지도 몰랐다. 여우는 신중하게 머릿속의 말들을 가지런히 골라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샤이… 자기의 이름을 가진 여우는 처음 봐요. 당신은 어디서 왔죠? 이곳에는 어떻게 온건 가요?”
흥분으로 주체하지 못한 붉은여우의 떨림이 우샤이에게 전달되었다. 우샤이는 그의 긴장감과 일렁이는 호기심을 느꼈다. 은빛 여우는 붉은여우를 말없이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속 강한 호기심의 충동을 조심스레 발산하는 동족의 행동과 몸짓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신중하면서도 열정적인 눈빛을 보고 있으니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우샤이는 조금 더 친절하고 세심하게 여우를 응대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이름… 저마다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남들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지 아니면 자기 고유의 것을 가졌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본인 이름을 가진 여우를 여럿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훌륭하고 유쾌한 친구들입니다.”
우샤이는 몇 명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려다 불필요한 울음 이란 생각에 주둥이를 하나로 모았다.
“어디서 왔는지… 라. 어떻게 답을 드려야 할지…”
그는 신중히 대답하고자 잠시 시선을 멀리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이내 입을 열었다.
“저는 어제로부터 왔고 내일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그 이상 답변 드리기 어렵군요. 저는 어느 땅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아 특정 지역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우샤이는 다시금 특유의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분명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서 적당히 둘러대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여우는 고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성실하게 답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샤이 입장에서 여우의 질문에 반드시 답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낮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한 우샤이의 미소에서 여우는 강한 배려심을 느꼈다. 타이칸의 산과 들에서 만난 그 어떤 동물들도 우샤이가 보여주는 것과 유사한 언행을 보인 적이 없었다. 만물의 짐승 중에 가장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는 여우라지만 우샤이는 다른 여우들과도 확연하게 달랐다. 그래서 붉은여우는 평소보다 신중하게 되었다.
우샤이의 절제되고 격식 있는 말투, 배려있는 몸가짐이 여우의 행동에 제약을 가져왔다. 그의 부드러운 미소 앞에 붉은여우는 야생성을 잃고 길들여진 짐승 마냥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솟아난 두 귀가 연신 쫑긋 거리며 은빛 주둥이를 향했다. 어디서 왔는지 말하기 어렵다 하니 여우는 분명하게 확인 가능한 다음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이 땅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죠? 당신은 하늘을 나는 여우인가요?”
우샤이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눈앞의 붉은여우를 전보다 유심히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눈앞의 생명체를 확인 고자 바라보았다면 지금은 유심히 파악하고자 들여다보았다. 흐트러짐 없는 미소 속에서 상대방이 그 미묘한 눈빛 변화를 알아 채기는 어려웠다. 우샤이는 여전히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 호기심 많아 보이는 여우에게 조금의 시간을 할애할 의향이 있었다. 다만 어느 수준에서 대화를 이어 갈지가 고민이었다. 가능한 상대가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우샤이가 보기에 붉은여우의 눈은 정직하고 총기가 느껴졌다. 맑게 빛나는 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눈앞에 있는 여우가 자신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들었다.
“여기는 순전히 우연하게 왔습니다. 길을 가다 궁금한 물체를 발로 한번 건드려 보듯, 지나는 길에 이곳 지형이 눈에 들어와 한번 들렀지요. 제가 다니는 길은… 땅의 길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달릴 수 있죠. 그 길은 하늘에 수놓아져 있다가 땅 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 길을 따르다 보면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달리게 되는데… 그것이 당신에게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
붉은여우는 꿈속에서 별들과 하늘을 내달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꿈에서와 같이 육지의 동물이 하늘을 뛰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동시에 그의 말을 순수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가 알고 있는 길은 동물이 자주 다니는 행로를 의미했다. 모든 짐승은 각자가 자주 이동하는 생활 반경이 있었고 그게 각자의 길이었다. 그는 몇몇 동물들이 자주 사용하는 길을 알고 있었다. 다른 짐승과 어울리는데 취미가 없는 여우로서는 항상 그 길들을 피해서 이동하였다. 다른 짐승들의 행로를 피해 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동물의 길이 눈에 들어왔고 냄새로 형체를 파악해 볼 수 있었으며 길의 시작점과 어디로 통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샤이가 말하는 길이라는 것은 도무지 어떤 형태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물며 새들이 활동하는 하늘에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질 않았다. 육지와 달리 하늘은 형체가 무한한 자유로운 공간이었고 그 위를 새들은 경계 없이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모든 짐승들이 자주 드나드는 자신만의 길이 있듯이 저도 저만의 길이 있는 것뿐입니다. 다만 이 길은 저만 볼 수 있고 우샤이의 네 발로만 디딜 수 있으며 달려갈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이동하는 경로와는 절대 겹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말을 하며 우샤이는 하늘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돌무더기를 뛰어오르듯 하늘로 좌우로 사뿐사뿐 뜀박질을 이어 갔다. 세 뜀 정도 올라 하늘에 서서 잠시 붉은여우를 내려 보았다 원래 위치로 성큼 뛰어내렸다. 붉은여우는 하늘을 걷는 우샤이의 모습이 놀라웠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의 모습을 방금 보았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경로가 겹칠 리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엔 걱정 말라는 듯 짧게 눈을 찡끗였다. 우샤이는 마치 붉은여우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 대화했다. 붉은여우는 실제로 자기 생각을 읽을 수 있거나 적어도 그가 말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 자기 머리 위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 걸음씩 하늘로 뛰어오를 때는 꿈속의 자신의 모습이 현실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우샤이와의 대화는 신비로움으로 시작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신선함을 안겼고 이제는 즐거움으로 나타났다.
“당신은 다른 여우와는 완전히 다르군요. 이렇게 뛰어난 여우가 있는지 몰랐어요. 하늘을 달리는 모습과… 아름답게 빛나는 은빛 털에… 당신은 특별한 종족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