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별 - 6

by 달곰

붉은여우는 눈앞의 위대한 존재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작은 체구에 긴 주둥이, 머리를 덮은 큰 귀는 영락없는 여우였다. 하지만 그 외 모든 면에서 우샤이는 다른 여우와 달랐다. 그는 하늘을 내달릴 수 있으니 짐승의 완력도 다른 여우와는 다를 것 같았다. 다른 짐승들을 아우를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다양한 상상을 하며 우샤이를 보고 있자니 붉은여우는 이 세상 어딘가에 여우가 통치하는 왕국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특정한 땅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했으니 어느 나라 왕은 아닐지라도 그 왕족의 일가 정도 일지 모른다. 여우가 왕인 나라는 상상도 못 했는데 눈앞의 특별한 존재를 마주하니 실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우샤이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붉은여우는 전과 달리 여우라는 종족이 대단하게 느껴줬다. 덩달아 본인도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된 듯했다. 마음에 한 번도 담아보지 못했던 자부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 올랐다.

“…한 없이 높게 봐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숨기기 어렵습니다만, 저는 당신과 같은 종류의 여우입니다.”

붉은여우의 예상과 달리 우샤이는 완벽하게 그와 같은 종족이었다. 눈앞의 존재가 자신과 동일한 생명체임을 알게 되자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사냥하는 방법을 처음 알아갈 때의 설렘이 느껴졌다. 동물의 본능을 깨우치고 발전시켜 나갈 때의 떨리는 성취감. 붉은여우는 그런 형태의 감정을 느껴본 지 오래되었다. 지금 우샤이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어미 여우가 사냥을 일러주던 아직 아기 여우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 여우가 아닌 누군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적은 없었다. 이제는 우샤이가 별들과 달리던 꿈속의 여우의 모습을 실현시켜 줄 것 같았다. 붉은여우는 살면서 처음으로 삶의 스승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차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음 질문을 했다.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제대로 된 답을 얻기 위해 차분히 하나씩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저도 하늘을 다닐 수 있는 건가요? “

“지금 주변에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시나요?”

“아니요, 보이지 않아요. 깜깜한 밤하늘만 보여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말이죠.”

붉은여우는 어두운 굴 속 같은 깜깜한 밤하늘과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환한 달님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아래로 달님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 작은 별처럼 빛나는 은빛 여우 우샤이만이 보였다. 우샤이는 여전히 정중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한결같은 표정을 유지하는 그의 미소가 단단한 코뿔소의 피부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길을 볼 수 있을까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모든 짐승들은 자신들 만의 ‘하늘길’이 있습니다. 하늘길은 스스로 발견해야만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남이 알려 준다고 해서 보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늘의 길은 흔히 말하는 일반 길과는 많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하늘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일생을 보냅니다. 모르면 찾을 수도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제가 좀 전에 하늘에 길이 있음을 알려 드렸습니다. 이제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길을 보고 오를 수 있습니다. 그건 오로지 당신 스스로 깨달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


붉은여우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히 좀 전에 우샤이가 하늘로 뛰어올랐던 텅 빈 공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커다란 어둠의 공간만이 그를 맞이했다.

“아무리 보아도 하늘로 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아요. 저에게 하늘길은 없는 건가요?”

우샤이의 표정이 처음으로 미묘하게 변했다. 본인만이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미소가 희미하게 옅어졌다.

“… 보지 못하는 길은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말입니다.”

“그럼 저에겐 하늘을 나는 길은 없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붉은여우가 고개를 땅으로 떨구며 말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던 실망감이 밀려 올랐다. 문득 꿈에서 깨면 안타까움에 눈물짓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지금 느끼는 실망감이 낮 설지 만은 않았다. 하나 몇 번을 경험해도 새롭게 다가서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불편했다. 현실의 상실감은 꿈에서 보다 무척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여우굴을 나서기 전만 해도 꿈에서만 벌어지던 일들이 실제로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지금 앞에 서있는 은빛 여우의 존재가 그 증거였다. 반대로 자신은 우샤이와 달리 하늘길을 볼 수 없음 또한 알게 됐다. 가능성을 앎과 동시에 본인의 역량 미달 역시 깨달았다. 예고치 못한 깨달음이 아픔을 동반했다. 작은 벼락에 온 산이 타오르듯 실망스러운 마음이 급하게 번져갔다. 몸이 더욱 붉게 타 들어가는 듯한 여우를 우샤이는 말없이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언가를 알았다고 해도 곧바로 믿기란 어려운 일이지. 길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길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우샤이는 여우의 실망감을 이해하면서도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짐승은 하늘길의 존재를 모른 채 일생을 살아간다. 그는 하늘길을 찾아 나섰다 중간에 행로를 잃고 방황으로 여정을 마무리 한 동물들을 여럿 보았다. 별과 관련된 꿈을 꾸고 좌절하며 깨어나기를 반복해 온 붉은여우의 지난날을 우샤이는 몰랐기에 그가 느끼는 좌절감의 크기를 정확히 재단할 수 없었다. 다만 실의에 빠져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여우의 표정에서 그의 진지함을 놓치지 않고 읽었다. 우샤이는 몇 마디 말을 채워 주고자 입을 열었다.

“보지 못한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모든 짐승에겐 각자의 하늘길이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하늘길을 찾는 것에 대해 몇 마디 보태도 될까요?”

“네. 부탁이에요 우샤이. 뭐든 알려 주세요!”

우샤이가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내렸다 정면을 다시 향했다. 얼굴에 따스한 미소 대신 단단해진 눈매로 붉은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길을 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물론 방법이 간단하다고 해서 과정까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건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확실한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면 주변에서 길을 알려주는 표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표식을 따라가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길을 향한 첫 발을 디딜 수 있는 디딤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돌처럼 보이고 느껴져 그냥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완벽하게 표식을 이해한 동물만이 디딤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발견하기보다 알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앞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붉은여우는 여전히 그의 주둥이에 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말을 마친 우샤이는 원래의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표식, 디딤돌, 하늘길… 이것들이 다 뭐를 의미하는 걸까. 알아듣기는 쉽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어.’

그는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쉽게 일을 열지 못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물음들을 함부로 꺼냈다간 원하는 대답을 하나도 듣지 못한 채 대화가 끝날 것만 같았다. 다시금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표식은… 표식이란 무엇이죠?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길이 모두에게 다르게 이어지듯이 표식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동물은 자신의 앞발바닥에서 발견했습니다. 누구는 강에 일렁이는 물결 속에서 찾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번에는 우샤이가 말을 아꼈다.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표식은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 어떤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군요. 실례지만 저는 이만 가던 길을 재촉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대화였고 평온한 삶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샤이는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상대방의 답변을 들을 새도 없이 길에 올랐다. 한발, 두발, 그는 절벽 끝에서 낭떠러지를 밑에 두고 하늘로 서서히 올라섰다. 점점 속도를 올리더니 이내 붉은여우의 눈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그의 은빛 털이 하늘을 내달려 올라설 때 땅에서 별이 하늘로 떨어지는 듯했다.

여우는 그날의 사냥을 포기하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발길을 돌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지만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우샤이의 짧은 만남의 장면과 그와 나눈 대화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점점 무거워지는 머리를 허공에 저울질하다 이내 잠이 들었다. 그는 우샤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여우는 먼 하늘을 날아가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별이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컸고 달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작았다. 그는 힘차게 허공을 가르는 불덩어리를 자세히 보고자 가까이 날아갔다. 근처에 다가서고 나서야 그것이 별도, 달도, 혜성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커다란 은빛 여우들이 한 데로 뭉쳐 날아가고 있었다. 각자 환하게 빛나는 모습 하나하나가 우샤이의 모습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여우들이 하나씩 갈래를 나뉘어 하늘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곧 거대한 혜성은 세상에 뿌리를 내리듯 빛이 되어 나아갔다. 여우는 자기도 함께 한줄기로 뿌려지고자 속도를 내어 같이 달리고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느끼는 순간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여우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로 다짐을 하였다. 안타까운 마음도, 눈물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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