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여우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서렸다. 그에게 엄마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제 하늘길을 찾아 떠난다고 해서 영영 가족과 이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늘길을 찾으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의사를 분명히 알렸다. 그럼에도 엄마 여우는 여전히 강력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그녀는 은빛 여우와 있었던 일을 믿지 않는 듯했다. 지난밤 꿈에서 벌어진 일을 착각하느냐고 몇 번을 아들에게 따져 물었다.
자신의 얘기를 믿지 못하는 엄마에게 여우는 은빛 여우가 우샤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여우가 이름마저 가졌다고 하면 자신의 말을 더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을 이해 못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들은 서운했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가야 할 목표가 분명히 보이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반복되는 삶을 살아갈 운명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야생의 삶과 엄연히 다른 생활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아니 우샤이를 만나 찾았다. 우샤이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조금 지나 그 짧은 인연이 기적처럼 느껴졌고 이제는 필연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아들은 빈약한 믿음에 힘을 얻고자 엄마에게 자신의 지난날의 일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그녀가 아들의 생각에 반색하여 호응하면 더욱 확신에 차서 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즉각적인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아들의 눈에 엄마는 전에 없이 확고해 보였다
“나는 승낙할 수 없구나. 지금 네가 말하는 허황된 얘기들을 믿으라는 거니?. 우리가 살아온 이 땅을 버리고 어디를 가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건지 나는 도저히 알 길이 없구나.”
“엄마의 승낙을 구하자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제 계획을 알려 드린 것뿐이에요.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다른 삶이 있고 제가 그 길을 찾아가고 싶다는 것뿐이에요.”
“지금의 삶은 네가 찾는 길이 아닌 거니?”
“……”
“그래서 그 길이라는 것을 찾아가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다는 거니?”
“……”
둘 사이에 침묵이 오갔다. 아들 여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보다 앞으로 찾고자 하는 인생이 더 낫다는 확신은 없었다. 설령 자신 있다 해도 그녀 앞에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부정하고자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아들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자 입을 굳게 닫았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그녀를 향한 서운한 감정이 고스란히 표정에 담겨 있었다.
‘확고하구나… 자신의 생각에 한번 빠지면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그런 점은 지 아비를 빼다 박았구나.’
엄마 여우가 자식의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순한 자식이기에 그나마 홀몸으로 애를 돌볼 수 있었다. 허나 아이는 한번 고집을 피우면 끝내하고 싶은 바를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아들의 여리다 보면 단단하게 곧은 심성이 남편을 떠올렸다. 그녀는 피해 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작별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알고 있었다. 만남과 이별은 어차피 모두가 마주하게 되는 필연이라 되새겼다. 그럼에도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그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알았다. 지혜가 짧은 나로서는 더 이상 설득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좋다. 가고 싶으면 가거라. 하지만 떠나더라도 엄마를 이해시키고 갔으면 좋겠다. 너는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날이 언제일지 기약하지 못하겠다. 이대로 헤어지면 엄마는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니.”
아들로서 거절하기 힘든 요청이었다.
“알겠어요. 저도 엄마를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엄마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이 땅의 동물에게 너의 꿈을 얘기하고 그들의 반응을 모아 오렴. 많은 짐승에게 묻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고 나서 네가 하고 싶은걸 다시 이야기해 다오. 다른 다양한 생각을 종합하여 저울질해보고 싶구나. 그래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식견의 부족함이 문제겠지. 그때는 너의 뜻을 꺾지 않으마.”
엄마 여우가 찰나의 꾀를 내어 말했다. 주변의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아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또한 다른 짐승의 의견도 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녀가 보기에 아들의 생각은 야생의 현실과 동떨어졌다. 그를 이해할 동물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타이칸을 찾아가 보겠어요.”
아들에게서 그녀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타이칸….? 호랑이 타이칸 말이니?”
그녀는 이 땅에 둘도 없는 이름을 괜스레 되물었다. 아들은 호기롭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네! 이 땅의 주인 타이칸 말이에요. 그의 의견을 구하면 다른 동물들과는 더 이상 얘기 나눌 것도 없겠지요. 그는 만물의 지배자니까요!”
“… 허투루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 그를 만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하는 소리니?”
“타이칸을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이 어디 있을까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그는 왕이니 제가 모르는 사실도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우리보다 더 많이 이해할지도 몰라요.”
우샤이와 대화는 여우에게 삶의 전환점을 선사했다. 타이칸 또한 이 땅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여우는 타이칸과의 대화도 우샤이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타이칸과 우샤이, 두 짐승 모두 남다른 존재이기에 유사한 기질을 가질 거라 믿었다. 여우와 호랑이는 하늘과 땅만큼 유별하지만 이름을 지닌 우샤이와 타이칸 사이의 거리는 그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반대로 우샤이는 동족이지만 생김새를 제외하고 완전하게 다른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어제까지 그냥 ‘여우’에 불가했다면 지금은 우샤이에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지금껏 하늘길을 찾아 떠나겠다는 짐승을 만나지 못했다. 남들과 다른 목표를 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타 동물과는 달라진 기분이었다. 왠지 모르게 우쭐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는 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너무도 괜찮았다. 살면서 처음 가져보는 설렘이 있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의 감정이 새어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오로지 하나의 방법만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떠나야 했다.
“……좋다. 어느 동물과 대화할지는 온전히 너의 뜻이다. 내 아들이 어리석은 판단은 하지 않기를 엄마 호수에게 비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들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역시 눈의 끄덕임으로 대화가 끝났음을 아들에게 알렸다. 아들이 굴을 나서면서 뒤돌아 엄마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는 우샤이처럼 정중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는 그 행동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