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안으로 아들 여우가 들어왔다. 그제야 엄아 여우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터덜터덜 네 발로 들어오는 아들을 맞이하고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내려 다시 자신의 앞발을 턱으로 감쌌다. 엄마는 벌써 아들이 돌아오는 환영을 여러 번 보았다.
‘여우가 목숨을 걸고 호랑이를 대면하는 게 쉬운 일인가. 결코 만나지 못하리라.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으니 몇 날은 왕을 만나겠다고 스스로 고생하겠구나. 그러다 알아서 포기하면 다행이다.’
그녀는 아들이 실제로 타이칸을 만난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는 작은 여우가 호랑이와 대면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작은 여우가 맹수로부터 생명을 부지하느라 지친 육체를 이끌고 배회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엄마는 걱정의 말들을 혼자 안으로 삼켰다. 때로는 자녀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사명임을 그녀는 알았다. 다만 아들이 실현되기 어려운 일들로 사서 고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방황이 계속될수록 아들과 자신에게 고된 시간이 길어질 뿐이었다. 그녀는 어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도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 시각 아들 여우는 차마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큰소리를 치고 나왔는데 아무 성과 없이 엄마가 있는 곳에 갈 수는 없었다. 일전에 오소리가 쓰다가 버리고 간 굴을 알고 있었다. 종종 혼자 있고 싶을 때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아들 여우가 주인 없는 오소리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그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울부짖는 왕좌에서 도망치듯 길을 떠난 지 벌써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굴에 돌아오는 내내 여우는 쫓기듯 길을 재촉하여 달렸다. 그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타이칸이 여전히 등뒤에 있을 것 같았다. 가시지 않는 타이칸의 뜨거운 숨결이 아직 여우의 머리 위에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열기에서 벗어나고자 여우는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시원한 맞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도 등에 남은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굴에 도착해서야 여우는 호랑이를 등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안식처에서 여우는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가볍게 떨어 자신의 몸에 눈처럼 덮여있는 두려움을 털어냈다.
‘너무도 고단하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못하겠다.’
하늘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자신의 꿈이던 낮에 있었던 타이칸과의 만남이던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일념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여우는 울부짖는 왕좌 앞에 갇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멀리는 포효하는 세 봉우리가 보였고, 가까이로는 울부짖는 왕좌만이 있었다. 고개를 아무리 돌려도 같은 풍경이 반복되었다. 갑자기 발아래로 하얀 불길이 솟아올랐다. 여우는 놀라 근처 높은 바위 위로 피신했다. 하얀 불길은 사방으로 번져 점점 타올랐다. 불길은 살아서 움직이듯 보였다. 여우가 땅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불길은 작은 호랑이 무리였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백호들이 여우를 잡겠다고 서로 아우성이었다. 여우는 살려달라고 울면서 하늘에 한참을 빌고 또 빌었다. 갑자기 굵은 비가 여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비는 삽시간에 온 세상에 물줄기를 쏟아부었다. 새하얀 호랑이들은 비를 맞고 기세가 사그라들더니 이내 모두 사라졌다. 여우는 눈물도 기도도 멈추지 않고서 잠에서 깨어났다.
여우가 눈을 떴다.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방울이 마저 뺨을 따라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온몸을 괴롭혔던 어제의 두려움도 마치 다른 세상의 일 같이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