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별 - 16

by 달곰

딱딱. 딱딱딱. 딱.

형 원숭이가 나무 아래 있는 주먹만 한 돌멩이를 들어 리듬감 있게 나무를 두들겼다. 나무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에 있는 동물은 아무리 봐도 원숭이가 아닌 것 같은데.”

예측 못한 방향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여우는 흠칫 놀랐다. 위를 올려 보니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숨긴 채 않아 있었다. 무리에 위협을 감시하는 보초 원숭이였다. 원숭이 형이 태연스럽게 답하였다.

“엄마 호수에서 마주친 여우다. 샤프먼을 만나기를 원해서 함께 왔다.”

“샤프먼을 만나겠다고…?”

나무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거칠게 변했다. 보초 원숭이는 몸을 내려 두 팔로 나무 가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원숭이 몸의 대여섯 배 높아 보였다. 몸을 가볍게 한두 번 흔들어 보이더니 두 손을 놓았다. 너무도 사뿐히 착지하는 모습에 ‘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가벼운 동물로 착각했을 것이다. 보초 원숭이는 건장한 성인 수컷이었다. 내려와서 보니 몸의 크기가 형 원숭이의 곱절 이상이었다. 평온하던 원숭이 형제는 보초 원숭이가 다가오자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무슨 이유라고 하던가."

"알지 못한다. 여우는 무리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보초병의 고압적인 태도에 형 원숭이는 목소리에 자신감을 잃었다.

“여차하면 먹이로 삼을 수 있다!”

여우에게는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춰 동생이 형을 거들었다.

“듣기 싫다, 멍청한 놈들!!"

보초병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짧게 형제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형제들은 갑작스러운 위협에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는 안전을 생각해서 무리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이 불편했다. 이유조차 파악하지 않은 어리석은 어린 개체들을 나무라고 싶었지만 보초 원숭이는 화를 안으로 삭였다. 그는 시선을 여우에게 돌려 성큼성큼 다가섰다.

“샤프먼을 만나겠다는 이유를 말하라, 여우여.”

가까이서 마주하는 보초 원숭이의 풍채가 아담한 여우와 대비되어 더욱 우람해 보였다.

'위협적이구나. 하지만 타이칸에 비할 바가 없다.'

평소의 여우였다면 자신보다 거대한 짐승의 등장에 위축됐을 것이다. 전날 타이칸을 대면했던 일이 여우에게 큰 경험이 되었다. 어제 느낀 무서움과 공포의 떨림이 아직 몸에 미세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호랑이에 비하면 원숭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보초병을 맞이했다.

“샤프먼을 만나 말을 나누고 의견을 구하고 싶어요. 내가 꾸는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해요..”

"… 네가 타이칸에게 꿈 얘기를 늘어놓았다는 그 여우인가?"

“… 맞아요. 내가 그 여우예요.”

원숭이들은 역시나 소문이 빠르다고 여우는 생각했다. 보초 원숭이는 여우를 내려 보며 어제 일을 떠올렸다.


모두가 잠들려는 캄캄한 저녁이었다. 다음날 보초 근무가 있기에 그는 평소보다 잠자리에 일찍 몸을 뉘었다. 딱히 정해진 잠자리가 있는 건 아니기에 깨어있는 일행들과 거리가 있는 적당히 평평한 곳에 터를 잡았다. 그때 왕의 시중을 드는 원숭이가 무리로 돌아왔다. 다른 원숭이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는가 싶더니 갑자기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는 시끄러운 소리로 잠자리를 방해받아 신경질이 나는 동시에 무슨 일인가 궁금증이 들었다.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에 갔다. 원숭이들은 자신의 꿈을 말하고자 호랑이를 찾아온 여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정신 나간 여우를 웃음거리로 말을 한마디씩 보태며 원숭이들은 비웃었다. 그는 제 발로 호랑이를 찾아온 여우 얘기를 믿을 수 없었다. 무리에서도 강인한 편에 속하는 보초 원숭이였다. 그조차 먼발치에서 호랑이를 본 것 만으로 온몸의 털이 솟아 도망친 경험이 있었다. 하물며 하찮은 여우가 호랑이를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실없고 심심한 원숭이 하나가 말장난한다고 여겼다.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적어도 평범한 여우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 그 여우가 와있었다. 보초 원숭이가 말했다.

“그냥 돌아가라. 최근 무리가 혼란스러워 모두가 예민하다. 좋은 시기가 아니다.”

“무리에 무슨 일이 있나요?”

“샤프먼에 반발하는 무리가 생겨나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들고 있다. 샤프먼을 만나러 가다 너에게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호랑이 타이칸이나 코끼리 헤리티아와는 달리 샤프먼이라는 이름은 특정 동물 고유의 것이 아니었다. 무리 중에 가장 힘이 강하고 영리하고 무리를 잘 이끄는 원숭이가 샤프먼이 되었다. 문제는 유독 힘이 강하거나, 머리가 비상하거나, 동료를 잘 병합하는 원숭이가 많다는 점이다. 지배자의 위치는 언제나 위협받는 자리였다. 자세히는 아니어도 대략적인 원숭이들의 생활 체계를 여우는 알고 있었다.

“나도 야생을 살아가는 짐승이에요. 내 목숨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요.”

여우가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원숭이는 다시 전날의 일이 생각났다.

‘그냥 여우로 보이는데 당돌하구나. 타이칸도 만났다는데 샤프먼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보초 원숭이는 간단하게 생각하고 명료하게 행동했다.

“알겠다. 나를 따라와라.”

몸을 돌려 대나무 숲을 향해 나아가며 보초 원숭이가 말했다. 쉽게 길을 내주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여우는 반색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원숭이 형제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보초 원숭이 또한 대나무 숲 안으로 몸이 사라져 갔다. 여우는 길을 놓칠 세라 급히 원숭이의 뒤를 밟았다.


대나무 사이를 몸으로 비집으며 한참을 나아갔다. 원숭이가 앞에서 대나무를 밀고 나아가면 그 반동이 다시 대나무를 뒤로 날려 보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여우는 밀려오는 대나무를 피하느라 입을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 밀려오는 장애물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햇살이 여우의 눈으로 가득 밀려왔다. 순간적으로 여우는 눈을 감았다. 서둘러 눈을 떠서 보니 햇볕이 가득 내리는 들판에 여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들판이 끝나는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나무 크기만 한 절벽이 있었다. 절벽은 커다란 돌을 층층이 겹 쌓아 올린 듯 솟아났다. 각 층에는 원숭이 무리들이 삼삼오오 자리 잡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원숭이 무리는 전체가 100마리가 넘었다. 절벽 가장 낮은 층에는 새끼 원숭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암컷 무리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늙은 원숭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시선을 위로할수록 활동적인 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 맨 위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덩치가 남다른 한 마리의 털을 다듬고 있었다. 주변에는 세네 마리의 원숭이들이 그를 경호하듯 에워싸듯 자리했다. 여우는 본능적으로 그가 바로 샤프먼일 거라 생각했다. 먼발치에서도 우두머리의 위엄이 느껴졌다. 여우가 보초 원숭이에게 물었다.

“절벽 맨 위에 자리한 커다란 원숭이가 샤프먼인가요?”

“그렇다. 밑에까지 안내하마.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처신하라.”

“알겠어요.”

절벽으로 다가오는 여우를 발견한 절벽 위 원숭이들이 수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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