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즐기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논어, 학교에 스며들다.(1-5)

by 최성조

교사는 1년 단위로 업무 분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3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면 같은 학년 또는 같은 부서의 선생님들과 1년간 같은 교무실에서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각 부서의 부장 역할을 맡은 교사는 업무분장에 꽤 많은 공을 들인다. 업무분장을 할 때는 교사의 희망과 교과 배분, 남녀 교사 성비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결국 가장 크게 고려하는 점은 관계성이다. 교사들과 관계가 좋은 분은 어떻게든 자기 부서로 데려오려 하고, 교사들과 관계가 좋지 못한 교사는 다른 부서로 보내려고 한다. 그래서 업무 분장이 이뤄지는 12월부터 2월까지 학교 분위기는 꽤 어수선하고 업무분장의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구성된 부서는 1년 동안 거의 ‘가족’처럼 부대끼며 지낸다. 그 인연은 다음 해에 서로 다른 교무실로 흩어져도 종종 모임으로 이어지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임이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지속되는 모임도 있다. 나 역시 여러 학교를 거치며 좋은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16년 인천국제고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모임은 각별하다. 학년부장을 포함한 7명의 담임교사 모임이 10년 가까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모임에서 가장 연장자이시며, 내가 성인(聖人)이라고 부르는 세 분의 선배 교사 중 한 분이신 고명호 선생님 덕분이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인천효성고등학교에서였고,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그분은 관리자로 승진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학교 사정을 배려하느라 승진을 포기하고 평교사로 정년퇴임하신 분이다.

2016년 1학년 담임으로 함께 배정되었을 때 나는 1학년 1반, 고명호 선생님은 1학년 2반 담임이어서 교무실에서 서로 나란히 책상을 두고 1년을 함께 생활했다. 같은 교무실에서 생활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고명호 선생님은 이미 인천국제고의 터줏대감 같은 분이셨고, 나는 인천국제고 2년차 교사였다. 선생님 곁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고명호 선생님은 교직원 중에서 가장 먼저 출근을 하셨다. 학교가 영종도에 있어 이른 출근이 쉽지가 않은데도 항상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교무실 불을 밝히고 계셨다. 나도 일찍 출근하기로는 다른 사람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인데 교무실에 들어가면 항상 책상에 앉아 조용히 수학 문제를 풀고 계신다. 수학과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임에도 매일 아침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도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면 8시쯤 아이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교무실로 몰려든다.

상위권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목 중 하나는 수학이다. 특히 문과아이들에게 소위 SKY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을 가기 위해서는 수학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몰려들면, 고명호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줄을 서시오”라고 말을 하시며 한 명씩 한 명씩 아이들이 하는 질문을 해결하신다. 한 명씩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다음 선수!”라고 크게 외치신다. 그러면 한 명이 나가고 그 다음 학생이 수학 문제를 내민다. 그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영화 『범죄도시』에서 불량배를 하나씩 하나씩 처치해 나가는 마동석과 같은 모습에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매일 10명이 넘는 아이들의 질문을 해결해 주다 보면 조회 시간이 되고 학급에 조회를 하러 들어가신다.

담임 교사는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쉴 틈이 없이 아이들에게 시달린다. 그래서 아침 시간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고명호 선생님은 그 시간을 오롯이 아이들의 질문을 받는 것으로 대신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루는 조용히 여쭤봤다.

“선생님, 아침에 아이들이 오는 거... 솔직히 귀찮지 않으세요?”

“우리 학교 아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니깐 학원을 다닐 수가 없잖아요. 밤에 면학을 하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물어볼 데가 선생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문제를 나에게 가져와서 물어본다는 것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잖아요. 난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질문을 하는 게 너무 좋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러 오면 마음 한구석에 조금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하는 게 왠지 실력이 부족한 교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은 아이들이 질문을 하러 오는 질문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일찍 출근을 하고 아이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해주기 위해 매일 아침 그렇게 수학 문제를 풀고 계셨던 것이다.

고명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만 훌륭한 교사인 것은 아니다. 정년퇴임을 하는 그 순간까지 다른 분들이 꺼려하는 담임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하셨고, 학교 교직원의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상조회 회장까지도 솔선수범하여 맡으셨다.

학교와 학생의 수호신 같았던 그 분도 어쩔 수 없이 지난 2024년 8월 정년 퇴임으로 학교를 떠나시게 되셨다. 그런데 8월 퇴임인데 교육청에서 후임 교사 발령을 내주지 않아 한 학기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야 한다고 하자 교장선생님께서 기간제 근무를 해주기를 요청하셨고 흔쾌히 기간제 교사로 2025년 2월까지 근무를 하시고 학교를 떠나셨다.

이제는 좋아하시는 여행도 하시고, 편하게 쉬시기를 바랐는데 또 다른 학교의 교감 선생님(고명호 선생님과 교사로 근무하셨던 적이 있던)이 고명호 선생님께 기간제 교사로 와 주시기를 요청하셨고 흔쾌히 현재도 담임 역할까지도 하는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또 아침마다 “다음 선수!”를 외치고 계신다.

나는 고명호 선생님께 몇 번을 망설이다 여쭤본 말이 있다.

“선생님,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것이 좋으세요?”

그 분은 학교 이야기, 아이들의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부터가 달라지신다. 그러시면서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요. 사랑스럽고. 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아요.”

정년퇴임을 하고도 아이들과 함께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고명호 선생님을 볼 때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힘들어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천국일 거야”라고 말했던 내가 부끄러워 진다.

2023년 스승의 날을 맞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유·초·중·고 및 대학 교원 675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 교직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3.6%에 그쳤다. 교직 만족도는 2006년 첫 설문에서 67.8%를 기록했는데, 이번에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시 태어나면 교직을 택하겠냐는 질문에는 20%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 역시 같은 문항 조사를 시작한 2012년 이래 가장 낮다.

최근 발표된 다른 교원단체 설문조사에서도 교사들의 직무만족도가 크게 떨어진 모습이 관찰됐다. 교사노동조합이 조합원 1만1377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는 최근 1년간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했다는 교사가 8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만족도가 떨어진 데는 분명 교권보호와 악성민원, 행정업무 과중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 현장에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너무나 행복해하며 교직을 천직으로 삼고 계시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훌륭한 선생님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을 ‘즐겨야’ 한다는 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리를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공자는 깨달음의 과정을 ‘지지자(知之者)’, ‘호지자(好之者)’, ‘낙지자(樂之者)’의 3단계로 구분하는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지지자(知之者)’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교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지자(知之者)’는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단계이다. 교육대학교나 사범대학교에서 전공과목과 교양과목, 그리고 교직과목 등을 이수하여 전문성을 갖추고 임용고사에 합격하면 교사로서 ‘지지자(知之者)’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지지자(知之者)’에 머물러서는 학생들과 진정한 교감을 할 수가 없다. 차츰 경력이 쌓이고 수업과 생활지도 등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이게 되면 ‘호지자(好之者)’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부터 교직에 대한 갈등이 느껴진다. 정말 교직이 나의 천직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선배의 역할이다.

정철희는 『교사의 고통』에서 ‘선배는 단순히 어떤 분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니다. 그 시간에 스며 있는 경험의 의미를 나름의 방법으로 기록한 사람이자 그 기록 속에 녹아 있는 수많은 삶의 방향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정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진정한 선배는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해!”라면서 내용과 방법을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앞으로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요!”라며 위치와 방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선배는 ‘후배들에게 한 걸음 물러나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조망적 시각을 갖게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도 고명호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선배를 만나 ‘호지자(好之者)’로 교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낙지자(樂之者)’로 넘어가는 것은 본인의 능력에 달려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낙지자(樂之者)’, 사실 나는 ‘낙지자(樂之者)’가 되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해 교육전문직으로 전직하였다. 우리 교육이 성공을 하려면 훌륭한 선생님들, 즉 ‘낙지자(樂之者)’인 선생님들이 교직에 계시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행정업무를 감축하고 법 제도로 선생님들을 보호하는 것으로만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당연히 선생님들이 안전하게 마음 편히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고,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키우고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그 권위가 세워질 때 선생님들은 ‘호지자(好之者)’에서 스스로 ‘낙지자(樂之者)’가 될 것이고 ‘낙지자(樂之者)’가 된 교사가 ‘호지자(好之者)’ 교사의 선배가 되어 ‘호지자(好之者)’를 ‘낙지자(樂之者)’로 이끌어 줄 것이다. 나는 좋은 선배를 많이 만났음에도 나의 능력이 부족하여 ‘호지자(好之者)’에 그친 사실이 참 많이도 아쉽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호지자(好之者)’인 선생님들이 ‘낙지자(樂之者)’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 선배 교사가 후배 교사에게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이야기로 전해주고, 후배 교사는 그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언제든 자신의 고민을 선배들과 나눌 수 있는 문화, 그 문화 속에서 아이들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고, 아이들과 교사가 모두 행복한 학교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도 다시 교직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교사가 늘어나지 않을까?

이전 04화‘삼인행(三人行)’ 협업에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