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1-6)
공자의 핵심 사상은 ‘仁(인)’이다. ‘仁(인)’이라는 글자는 ‘人(사람 인)’과 ‘二(둘 이) 자의 합자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짊’이 시작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어짊’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仁(인)’의 핵심일 것이다. 사람의 삶은 모두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특히 교사의 삶은 학생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중 4주간의 교육 실습을 하기 위해 모교를 찾았다.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지만, 처음 사범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꿈이었기에 교육 실습을 모교에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모교인 울산 학성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신청하였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6년이 지나 나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다른 학교로 옮기셔서 은사님과 함께 교단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진 못했지만, 3년간 소중한 꿈을 꾸었고,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던 교정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고, 무엇보다 아직은 실습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후배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벚꽃도 아름답게 떨어지던 4월 첫날,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어색한 모습으로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영어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으로 승진하여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한 달간 나를 지도해 주실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나를 지도해 주실 선생님은 1학년 3반 담임 교사로, 조금 마른 편에 웃는 인상이 아주 좋은 국어 선생님이신 최경덕 선생님이셨다.
나와 인사를 한 뒤 나에게 물으셨다.
“최 선생님, 선생님은 졸업하고 난 뒤 교사가 될 생각입니까?”
나는 사범대학에 진학한 이유가 교사가 되기 위함이었고,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교사가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육 실습을 마치고 난 뒤 교사의 꿈을 포기하는 예비교사가 꽤 많다고 한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네! 여기 학성고에서 교사를 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최경덕 선생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실습을 나온 교육 실습생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의 진짜 담임이 되어 생활해 주십시오.”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수업도 하고 싶은 만큼 하시고, 생활지도도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십시오. 나는 최 선생님이 교직에 뜻이 없다고 했으면 한 달간 고향에서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도록 해 줄 생각이었는데, 교직에 뜻이 있다면 진짜 교사처럼 한번 해 보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실습 기간 4주 중에서 첫 주는 조·종례를 비롯해서 지도 교사의 수업을 참관했지만 둘째 주부터는 내가 조·종례를 하고 지도 교사의 수업을 모두 맡아 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교육 실습을 나가면 빠르면 셋째 주부터 늦게는 마지막 한 주 정도 수업을 하거나 지도 교사의 수업 일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꽤 많은 수업을 해 보는 배려를 받았던 것이다.
나는 정말 담임 교사가 된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늦게까지 남아서(당시는 아이들이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시절이다.) 상담을 하고 수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는, 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최경덕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
“최 선생님은 왜 교사가 되려고 합니까?”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답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런 평범한 답을 듣고자 질문을 하신 것은 아닌듯 싶었다. 한참 고민을 하느라 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는
“최 선생님이 여기를 다니던 시절의 꿈이 교사였습니까?”라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법대에 가서 법관이 되고 싶은 꿈도 꾸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사실은 성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범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는 점을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으시더니,
“교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기를 참 잘했네요.”라고 하시는 것이다. 난 아직도 법관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으로,(언젠가 방송통신대학교에 로스쿨 과정이 도입된다면 난 꼭 그 과정을 이수해서 법관의 꿈에 도전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가요?”라고 시큰둥하게 답을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최 선생님, 내가 과제를 하나 낼게요, 그 답을 한번 찾아보세요. 세상에는 ‘사’자로 끝나는 직업이 참 많고, 많은 사람들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희망하죠.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등이 있죠. 근데 말입니다. 나는 그중에서 교사가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교사가 될 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왜 교사가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인지 아십니까?”
나는 한 번도 ‘사’자로 끝나는 직업 중에서 교사가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답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을 보시더니
“지금 당장 답하라는 게 아닙니다. 한번 고민해 보시라는 말입니다. 교사, 참 좋은 직업입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다 가치 있지만요, 나는 그중에서 교사가 가장 좋은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최 선생님도 그 답을 스스로 찾아 가슴에 담아 두면 좋겠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왜 교사가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인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꼭 고승에게 화두를 받은 수도승처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끝내 교육 실습이 끝나는 그날까지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답은 내가 교사 생활을 하다 우연히 찾게 되었다. 그것도 나의 교직 생활 중 가장 힘든 학급의 담임을 맡았을 때,
성철(가명)이는 종종 사고를 쳐서 학교 맞은편에 있는 지구대 파출소로 데리러 가야 하는 아이였다. 그날은 서울에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던 날이라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지구대에서 몇 번 인사를 한 적이 있던 경찰관이었고, 그분은 나에게 익숙한 듯이 “오셔서 아이를 데려가셔야겠는데요.”라고 말을 했다. 성철이는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하는 아이였고, 아버지는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시는 분이시라 야간에는 잘 연락이 닿질 않는다. 그렇기도 하지만 아이가 극도로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점을 경찰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아이가 어떤 잘못으로 지구대에 오게 되면 늘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은 서울에서 모임을 하던 중이라 빠르게 인천까지 갈 수가 없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먼저 일어나기가 싫어 평소와는 다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경찰관에게 화를 내지는 못하고 “제가 지금 멀리 와 있으니 당장 데리러 갈 수가 없습니다. 성철이 아버지께 연락해 보시죠.”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난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내 모습을 보던 친구가 나에게 “무슨일이고?”하고 물었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검사 생활을 하는 친구로, 고등학교 때에는 정말 친하게 지냈지만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나게 되었고, 내가 그때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던 법관의 꿈을 그 친구는 사법고시를 통과하여 검사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시시콜콜 사정을 다 털어놓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나 역시 검사 못지않게 중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은 마음에 “뭐, 별거 아냐. 꼭 날 찾는 전화가 온다. 아이들이 사고만 치면 날 찾는다 어째!”하고 말해 버렸다.
그 말을 들은 검사 친구가 “경찰관이 애 데리고 가라고 하는 것 같던데, 고딩때부터 파출소 드나드는 놈들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 놈들은 초장에 잘 잡아라. 니가 잘 안 잡아 놓으면 나중에 나한테 끌려 온다. 그럼 답 없다 아이가.”라고 말을 하는데, 그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교생 시절 나를 지도해 주셨던 최경덕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비로소 난 교육 실습 지도 선생님께서 나에게 화두로 던졌던 ‘사’자 직업 중에서 교사 직업이 가장 가치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사’자를 가진 직업의 공통점은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이다.(물론, 판사와 검사의 ‘사’자는 ‘事’이고, 변호사는 ‘士’, 의사와 교사는 ‘師’를 쓴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그중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모두 범죄자나 범죄의 혐의가 있는 사람을 다룬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다룬다. 하지만 교사는 아직 미완성된 사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 아이의 인생이,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사라는 직업이 그 어떤 ‘사’자 직업보다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길로 친구들을 뒤로하고 지구대로 달려갔다. 두 시간 정도 걸렸지만, 지구대에 도착하니 여전히 성철이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누워 있었다. 경찰관께서 미안한 표정으로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애가 어디서 먹었는지 술을 많이 먹고 아파트 옥상에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아버지한테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요.” 나는 아이를 깨워서 데리고 나와서 순대국밥 가게에 들어가 순대국밥을 시켜놓고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아니 나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의 미래를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이 아이의 인생을 잘 만들어 볼 수 있겠나? 그걸 못하겠다고 하면 교사를 관두는 게 맞다.”
내가 찾은 답이 최경덕 선생님이 생각한 답이 맞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의 답을 그때 찾은 것이다.
『논어』에 이런 글귀가 있다.
자하가 말하였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한 심정으로 묻고 가까운 것을 미루어 생각할 줄 알면, 인이 그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이 글귀는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 말한 자하의 명언이다. 하지만 나는 ‘인’을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라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과연 아이들과의 진솔한 관계를 맺기 위해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히 하는 교사가 될 수 있을지, 그래서 인(仁)을 실천하는 올바른 교육자가 될 수 있는지 절실한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날 이후로 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 보고자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지구대를 자기 집 드나들 듯 드나들던 성철에게 정성을 다했다. 학년 초부터 결국에는 자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던 주변 선생님들의 우려와는 달리 항공 정비 기술을 배우는 직업학교 위탁과정에 들어가 항공 정비 자격증도 따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졸업식 날 처음 성철이의 아버지를 뵈었다.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던 내게 성철이와 아버지가 다가오셨고, 나는 성철이를 꼭 안아 주었다. 무사히 졸업하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버지께서
“선생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더니 길바닥에서 나에게 절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 역시 길바닥에서 맞절을 하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나의 교생 지도 선생님이셨던 최경덕 선생님께 조용히 말을 건냈다.
‘선생님! 선생님이 내신 과제 이제야 끝낸 듯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만, 그리고 그 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이 내 주신 과제가 제 교직 생활의 큰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은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인이 이르러 오는 것이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여 이제야 ‘인(仁)’이 무엇인지 알 때쯤 되니, 인(仁)이 나에게 다가옴을 느꼈던 것이다.
SNS에서 어떤 선생님께서 교무수첩에 ‘떠드는 애가 정상이다. 뛰는 애가 정상이다. 모르는 애가 정상이다. 알면 지가 선생하지’라는 써 놓으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선생님이야말로 진정 ‘인(仁)’의 경지를 넘어 ‘도(道)’의 경지에 이른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자로 끝나는 직업 모두가 가치가 있는 직업이다. 그중 교사 직업이 특출나게 좋은 직업일리도 없다. 하지만 교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을 길러내는 멋진 직업임에 틀림이 없다. 아직 우리 아이들이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자 ‘어짊’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완성인 아이들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존재로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하나씩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자 공자님이 말씀하신 ‘인’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