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1-7)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사자성어이다. 온고(溫故)’의 ‘온(溫)’은 ‘따뜻하다’의 의미이지만 옥편을 찾으면 ‘학습하다’, ‘익히다’의 의미도 있다. ‘고(故)’는 ‘옛날 또는 옛일’의 의미이므로, ‘온고(溫故)’는 ‘옛일을 익히다’, ‘옛것을 학습하다’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지신(知新)’의 ‘지(知)’는 ‘알다’의 의미이고, ‘신(新)’은 ‘새로운’, ‘새것’의 의미이므로, ‘지신’의 의미는 ‘새것을 알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지신(知新)’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온고(溫故)’에 의한 ‘지신(知新)’이 핵심이다. 즉, 옛것을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여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는 힘을 말한다.
자장이 여쭈었다.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자가 주나라를 제대로 계승한다면 백 세대의 일일지라도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공자는 역사를 공부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과거와 이어지는 현재를 알 수 있고,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은 조나라의 군사와 맞서 싸우면서 장수들에게 물을 등지고 진을 펼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여러 장수들은 병법에 진을 펼칠 때는 오른쪽으로는 산이나 언덕을 등지고, 왼쪽으로는 강물을 끼고 있는 곳이 적절하다며 반대했지만 한신은 배수진을 펼쳐 승리를 거두게 된다.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배수진에 대해 묻자 한신이 대답했다.
“이것도 병법에 나오나 잘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병법에 ‘군대를 죽음의 경지에 빠뜨려야 살길이 있게 되고, 군대를 패망할 지경에 빠뜨린 뒤에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또 나는 나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병사도 아닌 오합지졸(烏合之卒)을 이끌고 싸워야 했으니 군대를 사지에 몰아넣어 자발적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선의 신립(申立)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탐금대에서 남한강을 등지고 너른 벌판을 앞에 둔 배수진을 쳤다. 당시 종사관 김여물은 험한 문경새재에 복병을 배치할 것을 주장하였나, 신립은 여진족 이탕개가 침입했을 때 기병으로 여진족을 물리쳤던 기병 전술의 대가였던 까닭에 조령이 천혜의 요새이긴 하지만 기병의 기동력을 앞세운 기마전술을 펴기에는 넓은 들판이 유리할 것이고 또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급조된 오합지졸(烏合之卒)로 강한 왜군을 상대하기에는 배수진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여 배수진을 치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너른 벌판은 논밭이 많아 질퍽하여 기동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고,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엄폐할 곳 없는 개활지에서 상대하는 것은 불가항력이어서 결국 8,000여 명의 조선 군사는 전멸하고 만다.
한신은 강한 조나라 군사를 맞아 기존의 병법을 응용하여 완전한 자신만의 병법으로 소화하여 승리했지만, 신립은 한신의 배수진을 지형의 변화와 기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여 실패한 것이다. 이와같이 ‘온고지신’은 단순히 옛것 그대로의 답습이 아니라 한층 발전시켜 옛것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접목시키고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안목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동서양의 여러 위인들의 삶에도 ‘온고지신’의 진리가 녹아 있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나 아이폰을 개발하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꾼 스티브 잡스 역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진리의 전형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8세 무렵부터 서당에서 한학(漢學)을 배우기 시작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삼경을 익히면서 ‘인의(仁義)’와 ‘충효(忠孝)’ 등의 핵심 가치를 내면화하였고, 특히 천하가 하나의 집처럼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대동(大同)사상’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조화를 중시하는 유교 윤리가 안중근의 기본 세계관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뤼순 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밑바탕이 되었는데, 비록 『동양평화론』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한·중·일이 서로 침략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기본 원리가 ‘인의(仁義)’에서 비롯되었으며, 국제 관계에서도 상호 존중과 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예(禮)’의 사상에서, 국경과 민족을 넘어서 공동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 ‘대동(大同)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온고(溫故)’를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전통 유학에서 익힌 지혜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국제 체제의 비전을 제시하였는데 서구 열강의 ‘균형 외교’와 ‘국제 연맹’의 개념을 참고하여 한·중·일 3국이 공동의 군대를 조직해 서양 열강의 침략을 방어하고, 공동 화폐, 공동 교육기관, 무역 협정을 체결해 경제·문화적 통합을 추진하자고 역설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그린 한·중·일 3국의 비전을 보면 현대 사회의 한·중·일과 미국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국제 관계에 대한 선구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전통 유학의 관념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면 『동양평화론』과 같은 미래 비전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야말로 ‘온고(溫故)’를 바탕으로 한 ‘지신(知新)’을 실천한 전형적인 지식인이었다 할 수 있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역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1971년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다니던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선(禪)불교 센터를 운영하던 스즈키 순류를 찾아간다. 깊은 깨달음을 원한 고등학생 잡스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스즈키 순류의 법문집 ‘선심초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 대학 시절 선(禪) 수행을 함께한 동급생이자 함께 인도 순례를 떠나기도 했던, 애플의 12호 정규직원인 대니얼 콧키는 “잡스는 선에 심취한 사람입니다. 그의 모든 접근 방식은 순전한 미니멀리즘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선에서 얻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선불교는 잡스의 개인적 성격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잡스 전기를 작업한 월터 아이작슨은 “애플 제품에는 잡스의 성격이 반영되었다(His personality was reflected in the products he created)”고 단언한다. 20세기의 매킨토시부터 21세기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핵심 철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전한 통합(integration)이다.
잡스는 2002년 타임과 인터뷰하며 ‘통합에서 비롯되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가치관을 설파한다. “애플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운영체제 등 모든 걸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용자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불교식 통합적 접근법은 때때로 애플의 단기 비즈니스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설프게 디자인한 하드웨어, 사용하기 불편한 소프트웨어, 이해할 수 없는 에러 메시지, 조잡한 인터페이스로 가득한 테크놀로지 세계에서 애플 기기를 단연 돋보이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아이작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이에게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교토 선불교 사원의 정원을 걷는 것만큼 숭고한(sublime as walking in one of the Zen gardens of Kyoto)” 일이었다.
또한 잡스는 대학 중퇴 후에 리드 칼리지에서 서체(타이포그래피)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다. 전통 활자 디자인과 동양 서예에서 영감을 받아 매킨토시에 당시로선 혁신적인 다양한 글꼴과 미려한 화면 표시 기능을 탑재하였다. 전통적인 인쇄미학을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적용함으로써, 디지털 디자인의 새로운 표준을 만든 것이다.
이렇듯 잡스 역시 동양의 ‘선(禪)’과 서체에서 익힌 가치를 새로운 기술과 환경 속에서 재창조하며 혁신적인 제품과 문화를 만들어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줄여 쓰는 말로,
이 구절을 통해 공자는 직접적으로 스승의 조건을 말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물론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면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의미겠지만, 이는 스승이 되려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사에게 ‘온고(溫故)’는 교과 내용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깊이 있는 학습과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발달 단계별 심리와 행동 특성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을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신(知新)’이란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니며 보고 배웠던 선생님들의 모습과 대학교와 대학원, 교육연수원 등에서 배운 교과 관련 전문지식 그리고 교수·학습 방법 등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학교와 학생들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고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진정한 교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따라 학교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반의 학습 도구를 활용한 에듀테크를 활용한 학생 맞춤형 학습을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반영하듯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모든 교과교육에 디지털 기초소양(디지털 문해력) 함양 기반을 마련하고, 정보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컴퓨팅 사고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AI 등 신기술분야 기초·심화 학습을 내실화있게 운영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해왔던 교과 지식을 암기하게 하는 주입식 교육은 줄이고,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자기 주도적으로 협업하도록 하며, 디지털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실생활의 문제에 대한 해결력을 기르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학교에서 해 온 주입식 지식 교육이 잘못된 교육이었을까?
내가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국어 과목은 암기 과목’이라는 점이다. 나는 교사 시절 아이들을 만나는 첫 수업 시간에 항상 ‘국어는 암기 과목’이다. 꼭 외워야 할 것은 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는 암기는 ‘태정태세문단세…’나 한글 창제는 1443년 반포는 1446년과 같이 일방적이고 의미 없는 암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학 작품을 감상할 때 ‘문학 비평의 4가지 관점 중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라 할 수 있으니 표현론적 관점에 의해 감상해 봐야겠어.’와 같이 표현론적 관점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사상, 감정 등을 표현한 결과물로 보는 관점이라는 점을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이 작품에 대해 감상의 평을 나눌 때 자신의 관점과 그렇게 작품을 이해한 이유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억하지 못하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장자)
혜온 작가는 위 말을 인용하면서 ‘암기와 이해는 양자택일적 관계가 아니다. 짧게라도 기억하지 않고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식물이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 역시 머릿속에 저장되어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만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컴퓨터 안에 있거나 책장에만 있어서는 생각 회로를 작동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기억된 지식과 생각은 함께 성장한다. 암기는 지식을 섭취하여 생각의 양분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생각은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고 해당 지식은 생각을 통해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나도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지식과 원리를 암기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되면 흔히 말하는 문리(文理)가 트이게 된다. 문리가 트인다는 말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말로, 즉 지식이 지혜가 되는 순간을 말한다. 지식이 지혜가 되면 하나의 정답에만 해당할 것 같던 지식이 삶의 어느 순간의 문제든 해결의 밑바탕이 되는 지혜가 되고, 이것이야말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여 학생들이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교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교수 학습 방법을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책임지고 있는 교사로서 의사들이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경험을 쌓아 새로운 환자를 치료하는 치료법을 생각해 내듯, 그동안 마주한 수많은 학생들을 마음을 어루만지고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학생들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여 학생 하나하나가 모두 결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공자가 말한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무엇보다 교사는 우리 교육의 기둥이자 희망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교사의 끊임없는 ‘온고(溫故)’를 통한 ‘지신(知新)’을 위한 노력으로 우리 교육의 질이 한층 더 높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