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1-8)
2009년, 탤런트 이두일과 유태웅이 주연한 블랙 코미디 뮤지컬 「더 팬츠(The Pants)」를 관람한 적이 있다. 주인공 이두일은 때밀이로, 목욕탕에서 유일하게 옷(팬티)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갑자기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손님 유태웅이 팬티를 입고 목욕하러 들어온다. 그러자 이두일이 팬티야말로 때밀이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라며 유태웅에게 팬티를 벗을 것을 요구하고, 팬티를 절대로 벗을 수 없다는 유태웅과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때 이두일이 부른 OST 「거친 인생 살아가며」의 가사 중
“거친 인생 살아가며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될 나만의 상징, 나만의 희망, 나만의 세상! … 지치고 힘들어도 지켜내야 해! 세상이 무너져도 지켜내야 해!”라는 부분이 있다.
이두일이 말하는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될 나만의 상징’이자 ‘세상이 무너져도 지켜내야’ 하는 것은 때밀이만 입을 수 있는 팬티이다. 팬티야말로 다른 사람과 때밀이를 구분해 주는 상징적인 것이고, 자신이 때밀이임을 드러내는 정체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철희는 『교사의 고통』에서 ‘상징은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이야기가 응축되어 만들어진다. 자신들이 수행하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을통해서 유지되며, 공동체의 자발적 합의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이런 이유로 사회에서 소위 전문직이라고 인정받는 공동체는 그들만의 상징으로 답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한 상징, 자신들이 하는 일상적 행위를 표현하는 상징,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표현하는 상징을 만들어 나간다.’고 했다.
이 뮤지컬을 보며 나는 과연 교사의 상징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의사를 떠올리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하얀 가운, 청진기가 떠오른다. 판사를 떠올리면 법전과 정의의 여신 디케가 떠오르고, 검사 역시 법복과 5개의 선분으로 이루어진 검찰의 마크가 떠오른다. 공무원 중에서도 군인, 경찰, 교도관, 소방관과 같은 특정직 공무원은 제복을 착용하는데, 이들이 제복을 입는 이유는 소명 의식과 자긍심을 느끼기 위해서이고, 제복 입은 공무원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빠르게 알아보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복은 사명감과 동시에 공권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제복 입은 공무원을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라 칭하면서 이들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제복 입은 공무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고,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제복을 입지 않는 공무원인 교사는 최근 엄청난 수난을 당하고 있는데 왜 그 누구도 지켜준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교사는 제복 입은 공무원이 아니기에, 제복이 교사의 상징이 될 수 없다. 그러면 과연 교사의 상징은 무엇일까? 스승의 날과 카네이션일까?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로 교사는 카네이션 한 송이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한다. 꽃집을 가보면 스승의 날은 어버이날에 팔지 못한 카네이션의 재고를 처리하는 날처럼 보인다. 교사들은 차라리 스승의 날을 휴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이다.
2011년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체벌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사랑의 매’가 교사의 상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체벌이 있을 때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 이런저런 이유로 참 많이 맞고 학교를 다녔다. 2005년에 처음 교직을 시작했고, 초임 교사 시절 학생부에서 근무를 했기에 나 역시 체벌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체벌을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랑의 매’는 ‘학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들게 되는 매’가 아니라 ‘교사가 사랑하는 매’였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을 선도(善導)는 해야겠고 하지만 바른 성장을 지도하기에는 너무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사랑의 매’는 단시간에 교사의 권위를 내세워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 즉 교사의 권위적인 위엄을 드러내고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또한 언제 교사의 권위에 도전할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교사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수단 즉, 교사의 권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언제나 옆에 끼고 사랑해 왔던 매가 ‘사랑의 매’였다.
그렇다면 교사의 상징은 무엇일까? 나는 ‘교단(敎壇)’이 교사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교단’의 뜻을 찾으면,
1) 교실에서 교사가 강의할 때 올라서는 단
2)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곳. 좁게는 학교를 이르며, 넓게는 교육 행정 기관도 포함한다.
라고 나온다.
내가 교단을 교사의 상징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교단이야말로 아무나 설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단은 아이들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과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교사밖에 없다. 아이들은 교단에 서 있는 교사를 향해 신뢰와 호기심, 그리고 애정의 눈빛을 보낸다. 갑자기 낯선 사람이 교실에 들어와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지도 않지만, 마주친다고 해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낯선 사람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교사가 교단에 설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교단에 설 때 교사는 개인적인 삶의 모습과 교사로서의 삶의 모습을 구분해야 한다. 제복을 입은 공무원이 제복을 입을 때와 벗을 때의 삶의 모습이 다르듯, 교사도 교단에 설 때와 서지 않을 때의 모습이 달라야 한다. 교단에 선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아이들과의 눈을 맞추겠다는 다짐,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끝까지 믿고 사랑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모든 아이들과 연대하며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교단을 교사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학교에는 교단이 사라지고 없다. 교단이 높은 곳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기 때문에 권위주의의 잔재이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교단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교단은 교사가 올라가서 학생들을 내려다보는 높은 단상의 의미가 아니라 학생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상의 유무와 높낮이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과 마주 볼 수 있는 자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떳떳하게 서 있는 자리면 그 자리가 어디든 교단인 것이다.
2025년 7월 국회 교육위원회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교직 경력 5년 미만 교사의 조기 퇴직 현상이 점차 심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전체 중도 퇴직 교원 수는 2020년 6,704명에서 2024년 7,988명으로 약 19% 증가했다. 이 중 교직 경력 5년 미만의 교사는 같은 기간 290명에서 380명으로 31% 늘었고, 전체 중도 퇴직자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4.3%에서 4.8%로 소폭 상승했다고 밝혔다. 교육위원회는 “교권 추락,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악성 민원 및 가중된 행정 업무로 젊은 교사들의 교단 이탈이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지방의 높은 중도 퇴직률은 인력 불균형으로 이어져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고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교직에 대한 만족도는 갈수록 낮아져 젊은 교사 퇴직 비율이 급증하고, 예비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 경쟁률도 매년 낮아지고 있다. 물론 교직에 대한 낮은 만족도로 인해 교사를 꿈꾸고, 교사가 천직인 예비교사가 교직의 꿈을 접는 것은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는 큰 손실임이 틀림없으나 나는 단지 우수한 학생이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훌륭한 교사가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에서 성적이 오르지 않아 힘들어하는 학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의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걸 왜 못하지?”, “이게 왜 안되지?”라고 말해 학생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는 것처럼 학생들의 어려운 상황에 공감하지 못해 이들의 생활지도를 어려워하는 교사가 늘어나는 것은 교사의 대부분이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감 능력의 차이이지 교사가 살아온 환경의 차이는 아니겠지만 꼭 학업 성적이 좋은 사람이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험과 체험을 통한 사유의 능력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에 나는 그동안 꾸준히 언급이 되었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던 교원 양성 시스템 개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교원 양성 시스템으로는
첫째, 실습 중심의 교사 양성 과정으로의 변화이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의 과정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처럼 바꾸는 교육전문대학원을 추진한다는 논의가 있었는데, 나는 교육전문대학원보다는 현재의 의과대학과 같은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의과대학은 6년제 학부 과정으로 2년의 교양과정과 4년의 본과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통합하여 역시 6년제 학부 과정으로 구성하고 2년의 교직교양과정은 교육대학생과 사범대학생이 함께 교육학과 교수학습방법론, 교육철학 등의 과목을 이수하고 Pass/Fail로 평가를 한다. 이때 2년의 교직교양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교직에 대한 적성과 교직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교육봉사와 교사의 자부심 형성 등 교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구성해야 한다.
2년의 교직교양과정을 통과하면 4년간의 본과과정으로 진급하는데, 이때부터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분리하여 운영하며, 본과 1~2년은 교과별 전공과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학습한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교과에 대한 전문성이다. 본과과정 2년 동안 교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야! 너는 육언(六言)과 육폐(六蔽)를 들어 보았느냐?” 하시자, 자로가 대답하였다.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앉거라. 내 너에게 말해 주리라. 어진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게 되는 것이고, 아는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탕하게 되는 것이고, 믿음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치는 것이 되고, 정직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답답한 것이 되고, 용맹한 것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지럽히는 것이 되고, 강(剛)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경솔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도 아무리 어질고 똑똑하고 믿음직스럽고 정직하고 용맹하더라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고 방탕하고, 남을 해치고, 답답하고, 어지럽고, 경솔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만큼 배움이 중요하다. 이 중요한 것을 본과 2년 동안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후 본과 3~4년은 학교 현장에서 실습을 하는 기간으로, 교육실습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예비교사의 적성과 능력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되고 교직에 대한 진출을 결정하는 기회이므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4월 또는 5월 한 달간 교육실습을 하기 때문에 학교가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이후에 실습을 하게 되어 신학기의 그 정신없는 시간을 교육 실습생은 겪어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학교에 나가게 되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학기의 폭탄 같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혼란을 경험하며 신규 교사로서의 포부를 펼치기도 전에 신체적·정신적인 번아웃을 겪게 된다. 또한 한 달이라는 시간은 학교가 교육 활동과 학생 생활 지도 이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며, 이러한 일들로 교사가 지닌 역량을 얼마나 과도하게 소진시키는지 경험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기업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집중적인 직무교육인 OJT(On the Job Training)를 운영하며,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임용 첫 3개월 정도 일하면서 배우는 일종의 수습 기간인 시보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교직은 임용교사에 합격하면 신규 교사 직무연수가 있지만 실제 학교 생활을 경험해 보기 보다는 교육청의 정책 이해와 행정 업무 처리 방법, 공무원으로서의 지위와 의무에 대한 강의식 이론교육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 수업 및 생활지도와 연결성이 약하고, 학교 특성에 맞는 역할과 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연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현장성이 떨어져 신규 교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교육실습 학기제를 도입하여 본과 3학년 1학기는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실습, 3학년 2학기는 실습에 대한 피드백을 위한 대학 강의, 4학년 1학기는 2학기를 준비하는 교직 실무 대학 강의, 4학년 2학기는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실습과 같이 온전히 1년을 실습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교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교사 면허를 부여 하는 것이다.
현재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졸업하거나, 교육대학원 등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하면 교사 자격을 받게 되지만 앞으로는 교사로서 자격을 입증하고 현장에서 검증된 자만이 교단에 설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임용고사라 부르는 지금의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은 공립학교에서 교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공무원 임용 시험이지 교사 자격시험이 아니다. 따라서 의사 국가시험과 같은 절대평가에 의한 평가를 통해 자격을 받게 되면 이후 사립학교든 공립학교든 본인이 희망하는 학교로 갈 수 있는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교에 임용되면 2급 정교사의 자격으로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2급 정교사는 의사의 전문의 과정처럼 학교에서 3~4년 멘토 교사의 지도 아래 수련 과정을 거치게 한다. 3~4년 중 1~2년 차는 멘토 교사의 부담임 역할을, 3~4년 차는 담임 역할을 해 보며 동료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평가를 받고, 일정 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1급 자격 연수 대상자로 지정해 1급 정교사 자격을 부여하고 정년 보장 등의 안정적인 정규직 교사 신분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3년의 경력이 지나면 모든 사람이 1급 정교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교직 경험을 충분히 쌓고 충분히 학생을 지도하고 후배 교사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을 때 1급 정교사 자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6년간의 대학 생활과 3~4년간의 불안정한 2급 교사의 자격 등 10년을 버텨낼 유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보수 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 힘든 의과대학 생활을 견뎌내는 이유는 의사가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급여와 사회적 대우에 대한 기대도 한몫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교사의 월급으로는 그 누구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교사가 되고자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3~4년의 2급 정교사의 생활을 버텨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은 통합하여 모두 국립대학으로 전환하여 등록금을 국가에서 부담을 하고 6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임용이 되었을 때는 현재와 공무원과 같은 급여를, 1급 정교사가 되었을 때는 급여를 대기업 이상의 수준으로 상향하여 지급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5급 공무원 시험 합격자를 만난 자리에서 ‘돈 벌려면 기업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왜 공무원은 돈을 벌면 안 되는 것일까? 청렴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청렴하다는 것과 보수를 많이 받는다는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사와 법관, 그리고 교사는 높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의사와 법관 그리고 교사는 모두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다. 아픈 사람을 다루는 의사와 법적인 문제에 연루된 사람을 다루는 법관과 달리 교사는 특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다루는 가장 중요한 직업이다. 의사와 법관이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오랜 시간 공부를 하고 노력한 대가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다룸에 있어 금전적인 유혹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는 교사 역시 금전적인 유혹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급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은 은나라가 망한 후 남아 있던 기자라는 신하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기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규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말해 주는데, 그중 세 번째 덕목이 신하들에게는 충분한 녹봉을 주어 집안을 잘 이끌 수 있게 해야 한다. 녹봉이 적으면 집안이 화목할 수 없고 직무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한 교육업체에 따르면 유명 인터넷 강의 업체들의 국어·영어·수학 일타강사 연봉이 평균 100억 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타강사 중에서도 스타강사로 꼽히는 강사는 계약 연봉만 수백억 원이며 교재 판매 금액과 출강까지 다 하면 500억 원 가까이도 번다고 알려져 있다. 교사가 학원강사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는 학원강사가 아닌 교사가 한다. 그리고 많은 학원강사들이 교사들에게 양질의 문제를 사서 자신의 이름으로 문제집을 출판하고 있다. 최근에 사교육 카르텔이라고 하는 이슈로 학원과 거래를 한 교사가 고발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는 반대로 학원강사보다 유능한 교사들이 매우 많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공립학교 교사는 그 어렵다는 임용고사를 합격한 사람들이고 학원 강사 중에서는 임용고사에 떨어져 학원으로 간 사람들도 많다. 물론 학원강사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일타강사 자리에 오르기 위해 피땀 흘린 강사들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철밥통 교사 생활에 안주하여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교사는 비판을 받고 퇴출되어야 한다. 나는 교사와 학원강사를 대립 관계에 두고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사도 학원강사만큼 노력하면 그에 맞는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기업으로 가라’가 아니라 ‘교사가 되어도 돈을 벌 수 있다’가 되어야 한다. 대신 촌지를 받거나 교사로서 품위가 손상되는 행동을 하다 적발되면 그 순간 즉시 퇴직 처리가 되고, 그동안 받았던 혜택, 무상으로 다닌 대학 등록금을 포함하여 품위 손상에 의한 벌금까지 확실하게 징계하여 이재명 대통령의 표현대로 ‘폐가망신’하게 한다면 교사의 경쟁력은 향상되고 교사의 수준은 더욱 높아져 우리 교육의 수준 역시 높아지지 않을까?
또한 교사가 수업과 학생생활지도에만 집중하고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학교도 대학과 같은 구조로 변해야 한다. 2011년 나는 2학년 담임교사이자 교무부 기획 업무를 맡고 2학년의 문학 수업 매주 4시간 3개 학급, 3학년 화법과 작문 수업 매주 2시간 3개 학급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미안했던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오롯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현재 대학에서는 행정업무는 행정직원들이 맡아 하고 교수는 수업과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도 대학과 같이 행정업무를 하는 직원과 수업하는 직원을 따로 분리하여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교사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려면 교사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공자는 다음 말에는 진리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다.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
교사도 교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는 열정과 각오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교단에 오르면 오롯이 학생만을 바라보고 학생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의사가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견디는 것이 오직 환자를 돈으로 봤기 때문일까?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환자가 생사의 길에서 헤매고 있는 10시간의 수술을 버텨내는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노력일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사람들은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하고 흰 가운을 입을 자격이 있는 의사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교사도 학생 한 명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할 때 사회는 교사에게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하고 진정한 스승이라 일컬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을 이끌어 내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 민주시민 국가가 된 것은 국민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교육의 힘, 우리 교사의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을 닦지 않는 것과 학문을 강구하지 않는 것과 옳은 것을 듣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 바로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이다.”
이 구절은 학생들에 대한 공자의 걱정이라 할 수 있지만 공자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자 반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교사들은 그 스스로가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인지 돌아봐야 한다. 한 점의 부끄럼이 없는 교사의 모습을 스스로 갖출 때 우리는 교원 양성 제도의 개편, 학교 구조의 개편, 그리고 교사 보수 체계의 개편을 소리 높여 외치고, 이러한 사회 개혁으로 인해 얻게 되는 모든 이익을 학생들의 성장으로 돌리며 우리 사회가 올바른 교육을 받은 아이들로 인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어갈 수 있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