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2-1)
“선생님, 상담하고 싶은데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그나마 조퇴를 할 수 있는 시험 기간임에도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기말 성적처리에 생활기록부 마감에 바쁜 행정 처리로 마음이 분주하던 차에 아직 시험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우리 반 연희(가명)가 상담을 요청했다.
그날은 4일간의 기말고사 기간 중에 유일하게 조퇴를 하려고 생각하던 날이었는데, 상담을 해 달라는 말에 짜증이 몰려왔다.
‘시험 끝나고 상담하면 안 될까?’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특수목적고등학교의 특성상 시험 기간에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고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서 지내며 시험이라는 중압감을 견뎌내야 하기에 시험 기간은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다독여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상담을 요청한 연희의 표정이 너무나 좋지 않아 알겠다고 하고 점심 식사 후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
예정에 없던 급식을 먹고 짜증스런 표정으로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연희가 들어왔다. 내 옆자리에 앉고는 아무런 말이 없다. 얼른 상담을 끝내면 조퇴를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던 나는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올라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일로 상담을 요청했을까? 너도 내일 시험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할 텐데, 얼른 말을 해 볼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마도 첫날 치른 국어 시험과 둘째 날 치른 수학 시험의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나 보다. 다른 때 같으면 최대한 다정한 몸짓과 말투로 달래고 어르고 위로하고 했을 텐데, 그날 내 마음은 온갖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양이다. 화장지를 건네고는 차가운 말투로
“울지 말고, 울 시간에 내일 치를 과목의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어때? 너보다 시험 못 본 애들도 지금 면학실에서 죽어라 공부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울 시간이 있어?”하고 말해 버렸다.
연희는 눈물을 그치고는 나에게 “선생님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뭐예요?”하고 묻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라도 조퇴를 하고 싶었던 마음에 그 해 우리 반의 급훈이었던 ‘우공이산’의 뜻을 묻는 연희의 질문을 들으니 더욱 짜증이 났다. 이미 학년이 시작될 때 ‘우공이산’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왜 우리 학급의 급훈으로 결정했는지도 충분히 설명을 했던 터라 이제와서 ‘우공이산’의 의미를 묻는 저의가 무엇인지 곱게 받아 들여지지가 않았다.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텐데?”
“선생님, 저는 ‘우공’도 못 되나 봐요. 정말 열심히 하면 ‘이산’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평소 같으면 ‘우공’이 산을 다 나른 것은 아니다. 우공의 노력에 감동한 하늘이 산을 옮겨 준 것이다. 선생님이 늘 진인사(盡人事)하고 대천명(待天命)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니? 그러니 너도 하늘이 감동할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니? 등등의 격려하는 말로 잘 달랬을 텐데 그날은 그러질 못하고
“‘우공이산’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가서 더 ‘이산’을 해, 하늘이 감동할 때까지 해 보고 말을 해.”하고 면학실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돌아가는 처진 어깨를 보면서도 나는 오랜만에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할 수 있다는 기쁨에 가방을 챙겨 학교를 나왔다. 그러고는 인천대교를 신나게 달렸다.
인천대교를 달리고 있을 때 인천대교 밑 바다를 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수영 동호회 사람들과 을왕리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생각이 났다.
아침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출근을 하던 나는 수영을 꽤 오래 해서 잘하는 편이고, 비록 오픈워터(Open Water)지만 스킨스쿠버 자격도 취득을 한 터라 바다 수영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수영 동호회 사람들과 가끔 을왕리로 바다 수영을 나가는데 바다 수영은 수영장 수영과 너무나 다르다.
바다는 수영장과 달리 조류로 인해 수영을 하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떠내려 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을 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팔을 젓고 발차기를 해야 한다. 조류가 쎌 때는 아무리 수영을 해도 그 자리에 있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그럴 때는 제자리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체력 소모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다 수영을 할 때는 체력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조류가 세지 않는 곳에서는 부표를 잡고 한동안 쉬었다가 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면학실에서 혼자 울고 있을 연희가 생각났다. 연희는 평소에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았다.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상담할 때는 공부 방법 중심으로 상담해 왔던 아이이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욕심은 많고 상위권 대학 진학에 대한 의지도 강해 스스로 자신을 힘들게 하고는 한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면 수시 진학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다. 시험 전 상담을 할 때 자극을 주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이번 기말고사에서 받아야 하는 성적 목표를 정해주었고 아마도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나를 찾아와 상담을 신청했을 것이다.
내가 급훈으로 ‘우공이산’을 선택했을 때는 끝까지 꾸준히 노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학년 초 급훈의 의미를 소개하며 난 『논어』 자한편 18장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산을 쌓다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그만둔 것이다.
또한 비유하자면 땅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한 삼태기의 흙을 갖다 부었어도 일이 진전되었으면 그것은 내가 진보한 것이다.”
위 구절을 설명하면서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그만두지 마라. 만약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어도 그것은 내가 그만둔 것이지, 선생님이, 부모님이, 사회가, 이런 핑계를 대지 말라고 했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5화에서 드림즈 팀은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돈이 부족해 다른 팀에게 원했던 선수를 빼앗기고 만다. 그때 운영팀장이 백승수 단장에게 “어차피 경쟁팀보다 예산이 적어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고 말하자 백승수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돈이 없어 졌다. 과외를 못해서 대학에 못 갔다. 몸이 아파서 졌다. 모두가 같은 환경일 수 없고, 각자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같은 상황에서 또 집니다. 우리는 오사훈 단장한테 진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어진 상황한테 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져서 좌절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도 핑계를 대지 말라고 했다. 대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라고 했다.
그리고 비록 남들은 아직 모자라다 하지만 내가 한 삼태기의 흙을 부었다면 그것이야 말로 내가 진일보 한 것이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한 삼태기의 흙을 붓도록 해라 그것이 공부라고 강조했었다. 비록 원하는 성적을 한번에 얻을 수 없더라도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긴 것이라고 힘을 주어 말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연희는 한 삼태기의 흙을 붓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는 느낌이 들 것이고, 내가 이렇게 산에 흙을 부었으면 이제 하늘이 감동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인천대교를 건너면서 바다 수영을 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류가 약한 곳에서는 쉬어야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아이들에게는 쉬지 않고 흙을 옮기는 ‘우공’이 되라고 했는지, 나는 아이들에게 한 삼태기의 흙을 붓고 돌아올 때는 가볍게 천천히 쉬면서 돌아와야 함을, 그리고 또다른 흙을 져 나르기 전에 너무나 힘이 들면 쉬다 숨을 고르고 다시 흙을 짊어져야 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반성을 했다.
나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조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짜증을 낼 줄 알았지 아이들에게도 쉼이 필요하다는 것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연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연희야, 바다 수영을 할 때는 말이지, 조류를 잘 읽을 줄 알아야 해. 조류가 약할 때는 부표를 잡고 꼭 쉬어야 한단다.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기며 떠 있다가 힘이 비축되면 거센 파도를 헤치며 힘차게 나아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단다. 매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결국에는 조류에 떠밀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만단다.”
물론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금요일 오후 집에 가기 전에 돌려받기 때문에 문자 메시지를 당장 내일 확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시험이 다 끝나고 휴대전화를 받았을 때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스로 쉼의 시간을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들이 교실에 오기 전에 급훈인 ‘우공이산’ 다음 쉼표(,)를 찍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아이들은 급훈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우공이산’이라는 급훈에 신경을 쓰기 싫었을 수도 있다.
시험이 끝나고 귀가를 앞둔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지쳐 보였다. 나는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논어』의 한 구절을 자로(子路)편 17장의 내용을 들려주려고 교무수첩에 적어 놓았다.
자하가 거보의 읍 책임자가 되어 정사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조그만 이익을 보지 말아야 한다. 빨리하려고 하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그만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 말조차도 아이들에게는 짐이 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칠판에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사자성어를 적었다.
“시험 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우생마사(牛生馬死)’의 뜻을 가장 먼저 쌤한테 문자로 보내는 친구 5명에게는 햄버거 쿠폰을 쏘겠다. 오늘은 집에 가서 실컷 자고, 치킨 많이 먹고 와라.”라고 말을 하고 종례를 끝냈다. 그나마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져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는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의미로, 땅 위에서 소는 매우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데 반해 말은 시속 60~7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그런데 홍수가 나서 말이 물에 빠지게 되면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마치 땅 위에 있는 것처럼 달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허우적대다가 얼마 가지 않아 힘이 빠져 죽게 되는 것이다. 반면 소는 땅 위에서처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떠내려가다가 조금씩 강가로 이동하여 물이 얕은 곳에 닿으면 느릿느릿 다시 육지로 올라와 살아남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이 말처럼 달리길 바랐는데, 결국에는 소처럼 힘을 빼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이 그 의미를 찾으면서 쉼의 가치를 알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보면 “밥 먹었니?” “먹고 하자, 버티려면!”, “좀 쉬었다 할까? 지금은 쉴 타이밍이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귀가하고 나도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가장 먼저 연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생마사(牛生馬死)’의 의미를 찾은 걸까?
“쌤! 문자 잘못 보내신 거 아네요? 저 수영 못하는데요ㅜㅜ”
이런,,,연희가 이번 국어 시험을 망친 이유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