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논어에 스며들다.(2-2)
“선생님. 저 독서토론대회 안 나갈래요”
갑자기 우리 반 영철(가명)이가 와서 대뜸 국어과에서 주관하는 독서토론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내가 근무했던 인천국제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등학교로 많은 학생들이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를 위해 교내 대회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갑작스레 대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특히 영철이는 내신 성적은 괜찮은 편이어서 조금만 준비를 잘하면 학종(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서울권 대학에 원서를 넣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1학년 때 교내 대회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본인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2학년 때는 꼭 상을 받아야 한다며 여러 대회에 참여를 하면서도 많이 조급해 했다.
그해 내가 지도한 화법과 작문 과목의 수행평가가 반대신문식 토론이었는데, 영철이는 논제에 대해 다양한 근거와 사례를 철저히 준비했고, 말도 논리적으로 잘해서 수행평가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영철이에게 독서토론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했고 당연히 참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 영철아, 대회 참가는 본인의 자유니깐 안 나가는 것은 괜찮은데, 왜 참가를 안 하기로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선생님, 어차피 참가해 봐야 들러리밖에 되지 않잖아요.”
“들러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3학년 선배들이 상을 다 받을 거고, 2학년이 상을 받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말이 어딨어? 학년별로 수상 인원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잘하면 상을 받을 수 있는 거야. 2학년이라도 3학년보다 잘하면 상을 받을 수 있어.”
“저희가 어떻게 3학년 선배보다 잘해요? 그리고 2학년 중에도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받아도 걔들이 받겠죠. 저는 괜히 준비하느라 시간만 뺏길 것 같아서 안 할래요.”
더 강하게 설득하고 싶었지만, 영철이 말대로 대회는 학년 구분 없이 참가가 가능해 실제 높은 순위의 상은 3학년 학생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수상 인원도 참가 인원의 20%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참가 인원이 많아야 수상 인원이 많아진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참가 인원을 늘리기 위해 학생들의 참가를 독려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철이가 ‘들러리’라고 표현했던 것이 수상 인원을 늘리기 위해 참가 인원을 늘리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영철이에게 참가를 권했던 나의 마음이 참가 인원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왜곡된 것 같아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영철이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수상이 가능했고, 혹여 상을 받지 못해도 올해의 경험을 발판 삼아 내년에는 높은 순위의 상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올해 상을 받을 가능성이 낫다고 도전조차도 하지 않은 영철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염구가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 너는 스스로 안 된다는 한계를 긋고 있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 염구는 10명의 뛰어난 공자의 제자 가운데 특히 정치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다. 노나라의 실세였던 계강자가 공자에게 제자 중에 자기를 도와 노나라의 정사에 종사하게 할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공자는 염구가 재주가 많아서 정치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염구는 계씨 집안의 가신이 된다.
하지만 공자는 계강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계강자는 노나라의 대부이면서 세도가였는데, 당시 노나라는 ‘맹손 씨’, ‘숙손 씨’, ‘계손 씨’의 3대 가문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들은 노나라 주공(周公)보다 더 부유하고 국정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 가문 중에서 계손 씨의 세력이 가장 강했고, 계강자는 계손 씨 가문의 서자였다.
염구는 이러한 계손 씨 집안의 가신이 되어 계손 씨를 위해 세금을 더욱 악착같이 걷어 들이고, 노나라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계손 씨를 위한 정치를 하자 공자는
“염구는 나의 제자가 아니니, 제자들아! 북을 울려 소리 높여 죄를 꾸짖는 것이 옳다.(子曰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염유가 도를 실천하기에 힘이 부족하다고 하자 공자는 훗날 이렇게 될 줄 알았는지 스스로 안 된다는 한계를 긋고 있다고 말하며 더욱 도를 깨닫기 위해 분발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왠지 영철이가 스스로 안 된다는 한계를 긋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영철이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렀다. 평소에는 상담을 하자고 부르면 왠지 밝은 표정으로 교무실로 오던 영철이가 내가 왜 불렀는지 아는 듯 표정이 굳은 채로 교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영철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영철아, 선생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테니 가볍게 들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시험에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를 쳐다보는 영철이 표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재수 없겠지만, 선생님은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쳤는데, 200점 만점에 197점으로 울산에서 가장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할 때는 대학 배치표에 나오는 성적보다 훨씬 하향 지원을 해서 특차로, 특차는 지금의 수시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지금은 6번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당시에는 한 번만 지원이 가능했는데, 특차로 대학에 합격했다. 그 이후에 그 어렵다는 임용고사도 대학교 4학년 때 한 번에 합격을 해서 졸업과 동시에 교사가 되었다. 하다못해 운전면허, 워드프로세서 자격시험 등 크고 작은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부럽냐?”
“……”
“부러워하라고 한 말이 아니다. 영철아, 선생님이 시험에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뭐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아니다. 선생님은 말이다. 한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시험을 보는 것이 두렵다. 지금 도전하고 싶은 시험이 있는데 그 도전을 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오히려 여러 번 떨어져 본 경험이 있었다면 그 시험을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를 해 보겠는데, 혹시나 떨어질까 봐 너무나 두려워서 도전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선생님은 말이지, 너가 나와 달리 많이 떨어져 보고, 많이 실패해 봤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널 위해 하는 말이야.”
그리고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생존자 편향’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해군분석센터 연구원들은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전투기들의 총탄 자국에 대해 분석을 했다. 분석 결과 전투기의 총탄을 가장 많이 맞은 부분은 동체였고, 가장 적게 맞은 곳은 엔진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동체 부분을 더 튼튼하게 보강하여 적의 공격을 받더라도 전투기의 손실을 최소화할 것을 권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수학자로서 통계연구팀에 있던 아브라함 왈드(Abraham Wald)는 정반대로 엔진을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군분석센터에서는 살아 돌아온 전투기만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는데 돌아온 전투기는 그렇게 총탄을 많이 맞았음에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으므로 동체를 보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총탄을 적게 맞은 곳인 엔진 부분에 총탄을 맞은 전투기는 격추되어 돌아올 수 없었으니 돌아온 전투기의 총탄을 맞지 않은 엔진 부분의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생존자 편향의 오류’라고 하는데 어떤 문제에 대해 진단할 때, 이미 특정의 선택 과정을 통해 걸러진 일부의 데이터만으로 판단하여 잘못된 결론을 얻게 되는 논리적 실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늘 성공만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강점을 잘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으로 생존자 편향을 인용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그리고 임용고사에 합격했을 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내가 합격한 사례를 합격의 비밀인 양 의기양양하게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을 보강하지 못했던 거야. 생존자 편향에서 말하는 엔진 부분을 보강한 것이 아니라 동체만 계속 보강해 왔던 것이지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전투에 나가기가 두려운 전투기가 되어 버린 거야.”
“우리가 코로나 때 백신이 만들어지기를 엄청나게 기다렸던 것 기억나니? 백신은 병원체를 처리하여 기능을 약하게 만들어 인체에 주입하거나 인체가 병원체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도록 하여 인체가 항체를 형성하게 함으로써 면역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지. 남들이 보기에는 계속 성공만 해온 사람 같지만, 정작 선생님은 마음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 같아.”
“나는 말이야. 영철이 네가 마음 백신을 자주 맞았으면 좋겠다. 떨어지면 어때? 다시 도전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눈앞의 성공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네가 지금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 중요한 것은 지금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에 있는 한계의 선부터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계속해서 마음 근육이 단단해질 거야. 나는 마음 근육이 단단한 영철이가 됐으면 좋겠다.”
영철이는 한동안 아무런 반응 없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재수없다는 표정은 사라지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영철아, 너에게 들러리가 되라고 독서토론대회에 나가라고 하지 않았어. 선생님은 네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독서토론대회에 나가라고 했던 거야. 들러리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한 네 말에 선생님은 동의하고 오히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네가 대견하다. 하지만 대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 들러리가 되지 않는 방법인지, 진정 들러리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해 보라고 불렀다.”
영철이는 잘 알겠다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중용(中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하게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영철이는 독서토론대회에 참여를 했다. 수행평가때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했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토론에 임했다. 비록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학년 학생 중에서는 가장 높은 상을 받았다.
영철이는 자신의 스스로 그어 놓은 한계의 선을 하나 뛰어넘은 듯 보인다. 앞으로도 스스로 그은 선을 마주하면 아마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나 역시 영철이와 상담한 이후 두려워했던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아마도 영철이에게 했던 많은 말들은 나 자신에게 하고픈 말들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내 마음속에 스스로 그어 놓았던 한계의 선을 넘기 위해 도전을 했고, 처음으로 시험에 떨어졌다. 하지만 또 다시 도전을 해 두 번째 도전한 시험에서 합격을 했고 그래서 지금 장학사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