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논어에 스며들다.(2-3)
나는 특수목적고등학교 중 하나인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7년을 근무하였다.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특목고의 설립 취지에 맞는 진로를 가지고 있고, 자기주도적 학습 태도가 잘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입학한 학생들을 보면 하나같이 중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과 올바른 태도를 지닌 모범생들이다.
특목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입학 경쟁에서 생존했다는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또다른 경쟁에 시달리게 된다. 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만 같던 중학교 때와는 달리 특목고에 진학한 아이들은 평범한 학생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처음 인천국제고로 옮겼을 때 낯선 광경에 조금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일반고에 근무할 때는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교실에서 신나게 떠들고 선생님들은 교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가끔 반장이나 지각한 아이, 조퇴할 아이 등 선생님에게 특별한 용건이 있거나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른 아이들만이 교무실에 모습을 보이고, 이 아이들조차 교무실에서 빨리 나가려는 듯 엉덩이를 쭉 빼고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인천국제고에 와서 보니 쉬는 시간에 교무실을 배회하는 아이들이 더러 보였다. 특별한 용건이 없는 듯한데 교무실을 기웃거리지 않나 괜히 선생님께 와서 “시험 범위 나왔어요?”와 같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왜 왔을까? 궁금해서 아이들을 불러서 “왜 왔니?”, “누구를 찾아왔니?”하고 물어봤다. 그러면 나에게 쪼로록 와서 “선생님, 오늘 수업 시간에 뭐해요?”하고 말하며 꼭 처음부터 나에게 질문이 있어 온 것처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동아리 이야기나 그날 급식 이야기 등 꼭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는 것이었다.
일반고에서 겪은 쉬는 시간의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도대체 이게 뭐지?’하고 있던 차에 인천국제고에 꽤 오래 계셨던, 그리고 나의 교직 멘토셨던 선생님이 의아해하는 나의 표정을 읽고는 말을 하셨다.
“최 선생님, 쟤들 왜 와 있는지 이해 안 되죠?”
“네, 부장님(그 당시 부장의 직책은 아니었지만, 내가 처음 이분을 뵀을 때 교무부장님이셨기에 늘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특별히 용건이 있어 온 것 같지도 않은데요?”
“관심이 고픈거죠”
“네? 관심이 고프다고요?”
“쟤네들 중학교 때 늘 반장, 부반장 하던 아이들이고, 아니면 교과부장이면서 반에서 1~2등 했던 아이들이잖아요. 쟤들 중학교 때는 쉬는 시간에 자의든 타의든 늘 교무실에 가던 아이들이고, 교무실에 가면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던 아이들 아닙니까? 하지만 여기에 오니 그냥 평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그 생각에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이 관심을 보여주길 바라는 겁니다. 그러니 조금 쉬고 싶으시더라도 아이들 이름 한번 불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주고 관심을 보이시면 됩니다.”
일반고에 있다가 특목고로 온 나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런 아이들이 모여 있는 특목고는 성적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중학교 때 1~2등 하던 아이들 중에서 누군가는 29등 30등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도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잘하는 것, 춤을 잘 추고 공을 잘 차는 것과 같은 하나의 재능일 뿐이다. 그러기에 공부를 잘하는 것을 타고난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요령이 있는 친구들도 있다. 반면에 공부에 대한 요령이 없어서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하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타고난 능력이라고 해서 저절로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능력을 발현하는 것은 노력의 힘이다.
‘추사체’라는 서체를 창조해 낸 서예가 추사(秋史) 김정희가 이재(彛齋) 권도인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 되지만, 70년에 걸쳐 10개의 벼루를 갈아 닳게 했고,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고 했다. 에디슨의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재능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일 수밖에 없다.
내가 담임을 했던 우리 반 민영(가명)이는 상담을 할 때 더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민영이가 상담을 요청해 왔다.
“선생님, 저 일반고로 전학가려고요.”
특목고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당시 인천국제고는 내신 1~5등급 정도까지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5~8등급까지는 정시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으로 입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신이 5~8등급인 아이들 중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도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결국 재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일반고로의 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일반고로 전학을 가게 되면 내신 1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교과 우수 전형으로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이 가능할 것이고, 또한 운이 좋으면 지역균형선발이나 학교장 추천 등으로 서울대학교 진학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고로 전학을 가겠다는 학생들이 있으면 나는 일단 말리고 본다. 인천국제고에서 버텨보라고 설득한다. 그런데 민영이는 정말 고민스러웠다. 더 버텨보라고 말하기도 미안했다. 그렇다고 일반고로 전학을 간다고 해서 내신 1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뭐라고 답을 해줘야 했다. 상담할 때 학생의 말을 계속 들어주는 것도 좋은 상담 방법이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답을 해 줘야 할 때가 있다. 민영이는 어떤 답을 기다리고 있을까? 가지 말고 더 해보자는 답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일반고로 전학을 결정한 결심을 응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까?
그때 나는 나의 은사님의 책에 쓰여 있던 글귀가 생각났다.
일본인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필즈상을 수상했던 인물로,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했던 말이다.
“나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실 이 문구는 나의 은사님이 평역하신 『논어』의 다음 구절과 함께 쓰여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진리를 안 것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탐구한 사람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공부도 재능이라 생각하기에 타고나는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히로나카 헤이스케도, 공자도 평범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서 필즈상을 수상하고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민영이에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 울산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순위가 정해져 있는 학교에 원서를 내고 200점 만점(20점은 체력장 점수)의 시험을 봐서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을 봐야 했다. 나는 중학교 때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에 당시에 가장 성적이 우수하다는 학성고등학교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고등학교의 생활은 정말 험난한 시간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때 1~2등 하던 학생이었으나 내신 15등급 중 8등급 정도를 받았지만 14등급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난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지도 못했고, 그래서 내가 희망했던 여러 진로를 포기하고 사범대로 진학을 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함께 야간 자습을 하면서 꿈을 이야기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축제 준비를 위해 밤새 프로그램을 짜도 졸리지 않았던 컴퓨터부 동아리 활동도 있었고 무엇보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에서 진정한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싫어했던 수학과 과학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국어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작정 외워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탐구하여 보고서를 쓰고 발표하고 그런 공부 방식이 좋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즐겁게 공부를 해서 4학년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사에 합격했다.
물론 대학교 4학년 때는 내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참 건방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하지만 살면서 실제로 최선을 다한 경험을 하는 것이 몇 번이나 될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항상 결과를 동반할 때가 많다. 시험에 합격한 것과 같이 원했던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와야 최선을 다한 것이 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즉 최선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판가름 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임용고사 시험 전날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썼다.
‘나는 내일 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에게 하루가 더 주어진다고 해도 더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어떠한 결과를 받게 되든 일말의 후회도 없다. (중략)’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시험장에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고, 시험을 치는 동안 조금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담담히 그 결과를 기다릴 수 있었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내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지 다른 그 어떤 이유로 인해 시험에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그때 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일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린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난 뒤에 얻은 결과에 대해 겸허해지는 마음. 그 어떤 결과가 주어지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민영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민영아, 전학을 생각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겠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남보다 두세 곱절의 시간을 투자할 각오를 한다고 하지만 민영이는 이미 남들보다 두세 곱절을 하고 있다는 것 알아, 근데 학교란 곳은 말이야 공부만을 잘해야 하는 곳은 아니란다.”
민영이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보는 마음이 아프다.
“학교는 평생 함께 기댈 수 있는 친구도 사귀고 이런저런 과목을 배우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고, 미래의 너의 꿈을 그려보는 곳이라 생각해.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한 곳으로 나는 우리학교가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이 생각하는 너는 최고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지 몰라도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재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사람이야. 선생님 믿고 좀 더 다녀보지 않을래?”
그리고는 내가 종종 학급에 적어 놓는 『맹자』의 구절을 적어 건네주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의 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에 빠뜨리며 그가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흔들리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품을 인내하게 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결국 민영이는 전학을 가지 않고 졸업했다. 3년 동안 시험이 끝날 때마다 힘들어했다. 하지만 등수에 집착하던 모습은 조금씩 내려놓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결국에는 반장도 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다. 삼수 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민영이는 나를 찾아왔다.
“축하한다. 결국에는 해 냈구나”
“선생님, 저는 전학을 안 간 것이 잘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학을 갔더라면 재수만 해도 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학교를 졸업한 것에 대해 후회는 안 해요. 그날 선생님이 해 주신 말을 듣고 난 뒤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었거든요. 그래서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어요. 적으로만 보이던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도 생겼어요. 하지만 누가 특목고에 가고 싶다고 하면 저는 말릴 거에요, 저처럼 힘들게 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 하지만 난 누군가가 특목고에 간다고 하면 난 적극 응원할거야. 내가 학성고를 졸업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때 함께 꿈꿨던 내 친구들이 너무나 소중하니깐. 우리 10년 후에 다시금 만나서 또 이야기해보자. 그땐 내 생각이 또는 네 생각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으니깐.”
10년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나는 민영이가 서울대학교에서 진정한 학문의 즐거움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꼭 고등학교 시절을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