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킥오프(Kick-Off) (4)

by 최성조

2005년 7월 백록기 전국 고교 축구 대회 결승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백록기 전국 고교 축구 대회 결승전이 치러지고 있는 제주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현재 전반전이 끝난 상황에서 수원고등학교가 학성고등학교를 2대 0으로 앞서고 있습니다. 전반 13분 수원고 포워드 이종현 선수의 단독 돌파에 이은 골과 전반 37분 학성고 김진성 수비수의 페널티박스 안에서 핸들링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이종현 선수가 성공시켜 현재 두 골차로 앞서고 있습니다.

김시현 해설위원은 전반전을 어떻게 보십니까?”

“네, 객관적 전력으로는 수원고가 크게 앞섭니다. 수원고는 올해 두 개 대회에서 이미 우승을 차지했고, 연령별 대표 선수도 5명이나 포진되어 있고요. 예선전을 포함해서 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라왔거든요. 특히 이종현 선수가 현재 7골로 최민혁 선수 다음으로 다득점 2위에 올라 있고요.”

“이종현 선수가 전반 2골을 추가해서 9골로 최민혁 선수와 동률이죠.”

“아, 그렇군요. 맞아요. 오늘 두 골을 넣었으니 9골이네요. 그런데 최민혁 선수는 오늘 꽉 막혀 있어요. 수원고 김철민 감독이 오늘 수비수 두 명을 전담시켜 최민혁 선수를 막고 있거든요. 아무리 최민혁 선수가 개인기가 좋아도 두 명의 밀착마크를 뚫기가 쉽지 않죠. 오늘 후반에도 특별한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우승은 수원고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학성고등학교 락커룸.]

우리 곰팅이 감독님이 지쳐있는 선수들을 쭉 훑어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에게 시선을 멈춘다. 2대 0으로 지고 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개를 들 힘도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최민혁, 개안나[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다. 안 아픈 곳이 없다.)

목소리 톤을 더 높여 특유의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억량으로 물었다.

“학성고 개안나[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안 괜찮겠지.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목소리!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되나? 하나도 안 개안은데[괜찮은데]?”

“네, 괜찮습니다!”

(악이라도 써 본다.)

핸들링 반칙을 범해서 페널티킥을 내 줬던 김진성 선수를 보며 감독님이 말했다.

“진성이는 와 대답도 안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노? 니 때문에 실점한 것 같아 미안하나?”

“……”

아무런 대답이 없다.

“김진성! 고개를 들고 다른 선수들을 쳐다 봐! 누구 하나 니 원망하는 사람 있나? 이 중에서 진성이 원망하는 놈 있나?”

“없습니다!” 오늘 나온 목소리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였다.

“봐라, 진성아. 축구는 우리 모두가 한 몸처럼 함께 움직이는 거다. 너가 열심히 하다가 재수가 없어서 페널티킥을 내 준거고, 그 누구도 널 원망하는 놈 없다. 그니깐 고개 숙이지 말고, 더 열심히 뛰면 된다. 알겠나?”

“네.”

“목소리가 작데이, 열심히 안 뛸끼가? 다른 놈으로 바꿔주까?”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뛰겠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진성이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면서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죽지는 말고, 이 경기가 니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고의 경기는 될끼다 그니까, 죽지는 말고.”

(이 경기가 최고의 경기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휴’하고 큰 한숨을 쉬고 나서 감독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는 준준결승에서도 연장전을 치렀고, 준결승도 연장전을 치렀데이. 이제 체력이 바닥이 났을끼다. 남은 45분, 서 있는 것도 힘들 끼고.”

(맞아요. 서 있는 것도 힘들어요. 눕고 싶어요.)

약간 미소를 띄며 말을 이어서 하셨다.

“다행히 우리가 2대 빵으로 지고 있으니, 오늘은 연장전을 안 가도 되겠다. 45분만 버티면 편안하게 집에 갈 수 있을 끼다. (다행이라고요? 편하게 갈 수 있다고요?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말씀만 하신다.) 그런데 집에 가서 누우면 이 경기가 계속 생각이 날끼다. 며칠 동안 계속 생각 날끼다. 조금 더 뛸 걸, 그때 내가 받은 패스를 조금만 각도를 죽여서 때릴걸. 그때 몸을 날려서 공을 막을 걸. 그렇게 45분이 평생 너희를 따라 다닐 끼다. 그게 지옥같을 끼다. 이제 그라운드에 나가면 45분밖에 안 남는데이. 그 45분이 지옥 같으면 니들의 45년은 천국일 끼다. 남은 45분이 천국이면 너희들의 45년은 지옥일 끼다.”

(45분도, 남은 45년도 천국일 수는 없을까요? 너무 힘든데요.)

“선택은 니들이 해라. 지옥에서 45분을 살래? 아니믄 지옥에서 45년을 살래? 살면서 평생 우승 한 번 못 해 본 사람은 엄청 많데이. 그니까 우승 한 번 못했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데이. 하지만 준우승만 해 본 사람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일끼다. 3학년 놈들은 고교 시절 우승을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그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겠냐?”

(제가 3학년입니다. 아직 우승 한번도 못해 봤어요. 우승 너무 해 보고 싶습니다. 정말 해 보고 싶어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내 앞에 오셔서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모든 선수가 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특히 민혁이가 정말 잘 해줬데이. 그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을 끼다. 근데 나는 오늘 경기에 민혁이보다 더 잘 해주는 놈들이 있었으면 좋것다. 그냥 미치는 놈들이 있었으면 좋것다. 진성아 나는 니가 후반에는 미쳤으면 좋겠다.”

감독님의 말씀에 진성이가 희미한 웃음을 짓다가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뭔가에 씌인 사람처럼.

“지금 저들은 민혁이를 막는데 전담 수비 두 명, 그 뒤에 또 한 명 모두 세 명이 따라다닌데이. 포백이라 세 명이 민혁이 근처에 있으면 다른 공격수에게 공간이 열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데, 다들 공을 잡으면 민혁이에게 넘겨주느라 바쁘다 아이가. 그러면 당연히 고립되고 공이 돌지 않는데이. 후반에 들어가면 민혁이는 힘들겠지만 수비들을 달고 더 구석으로 뛰어라. 다른 선수들은 공을 잡으면 한 번은 민혁이에게 한 번은 다른 공격수에게 넘겨라. 민혁이는 공을 잡으면 빼앗겨도 좋으니까 드리블해서 계속 니가 해결사라는 것을 상대편 수비수들이 알게 해야 한데이. 오늘 승리는 민혁이 발이 아닌 다른 공격수의 발에서 나온다. 알겠나?”

[수원고등학교 라커룸]

“잘하고 있다. 이제 우승컵이 거의 우리 손에 왔다. 올해만 세 번째 우승이다. 그동안 한 해에 전국대회 세 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학교는 없었다. 이제 우리가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다.”

“후반에는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대신에 후반 시작하고 상대편 첫 터치 후 강한 밀착 수비를 한다. 강하게 프레스 했을 때 공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를 잘 봐. 만약 민혁이에게 공이 가면 계속 지금처럼 준식이와 성철이가 민혁이를 밀착 마크하고 민섭이가 그 뒤를 받쳐서 흐르는 공을 따내서 공격수로 바로 연결한다. 그런데 만약 공이 민혁이 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편 공격수에게 넘어간다면 더 이상 민혁이한테 두 명이 밀착하지 않고 준식이만 밀착 마크하고 정상적인 포백으로 간다. 알겠냐?”

“네.”

“강한 압박 수비를 하느라 힘든 거 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죽어라 체력 훈련을 해 왔던 이유를 생각해봐. 공격은 승리를 가져오지만, 수비는 우승을 가져온다. 우승은 후반에 우리가 어떻게 수비를 하느냐에 달렸다. 후반에도 지금처럼 민혁이만 막으면 된다. 그럼 우리는 우승이야. 그리고 이미 이번 대회 MVP는 종현인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왕이면 득점왕까지 되면 좋지 않겠냐? 한 골만 더 밀어주자.”


“자,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후반 45분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성고는 후반에 새로운 전술을 들고나와야 할텐데요.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을 봤을 때는 두 팀 다 선수 교체가 없는 듯합니다.”

[후반 22분]

“네, 학성고 수비수가 걷어 낸 공이 하프라인에 내려와 있던 최민혁 선수에게 연결됩니다. 후반 시작하고부터는 수원고가 전반전에 했던 밀착 수비를 하지 않고 정상적인 포백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최민혁 선수가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 줍니다.”

“네, 하지만, 최민혁 선수가 공을 잡으니깐 바로 두 명의 수비수가 달려들죠? 여전히 최민혁 선수를 견제하고 있는 거죠.”

“최민혁 선수 빠르게 드리블하려다가, 최민혁 선수 아, 안느턴을 보여 줍니다. 대한민국 월드컵 영웅 안정환 선수가 주로 썼던 기술이라 안느턴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두 명의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반대편 달려오는 박동섭 선수에게 패스를 넣어 줍니다. 박동섭 선수 앞에 수비수가 없어요. 골키퍼와 1대 1 상황, 슛, 골!!! 골입니다. 학성고가 만회골을 넣습니다. 2대 1로 따라잡습니다.”

“네, 최민혁 선수의 한 템포 빠른 패스가 정말 좋았습니다. 두 명의 수비가 붙자 드리블하는 척하다 순간적으로 공을 뒤쪽으로 접어놓고 반대 발로 빠르게 터치를 한 후 패스, 정말 예술이네요. 고등학생이 사용하는 기술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개인기입니다. 후반에도 전반과 마찬가지로 최민혁 선수가 계속 돌파를 시도했기 때문에 세 명의 수비수가 오른쪽으로 몰려 있었거든요. 그 사이 박동섭 선수가 빠르게 대쉬를 해서 만회골을 터트립니다. 이대로 학성고가 물러나질 않네요.”

[후반 44분]

“이제 정규시간은 1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기심이 추가시간 5분 남았다는 신호를 보내네요. 이제 우승은 거의 수원고가 가져갔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말씀드리는 순간 학성고 골키퍼가 길게 찬 공을 헤딩을 따내려던 수원고 선수가 학성고 공격수를 밀어 넘어뜨리는 반칙으로 학성고가 좋은 자리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어 냅니다.”

“학성고 입장에서는 마지막 찬스가 되겠네요. 학성고 선수들 골키퍼까지 전원 올라갑니다.”

“올라가야죠. 어차피 여기서 골을 못 넣으면 우승컵을 넘겨줘야 하거든요. 마지막 기회에요. 특히 학성고에는 장신 수비수들이 많아요.”

“자, 프리킥을 골대 가까이로 올려줍니다. 헤딩슛. 아 골대를 맞습니다. 골대를 맞고 나온 공, 슛 골!! 골입니다. 극적인 동점골입니다. 최민혁 선수의 동점골, 전반에 핸들링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내 줬던 학성고 수비수 김진성 선수의 멋진 헤더로 골대 포스트바를 맞고 나온 공이 바로 최민혁 선수 앞에 떨어져 최민혁 선수가 왼발로 공을 잡아 놓고 오른발로 강하게 슛을 차 골을 넣습니다. 동점입니다. 동점입니다.”

“네, 학성고 선수들 대단하네요. 특히 최민혁 선수가 골을 넣기 전에 김진성 선수 엄청난 헤딩슛이 있었어요. 정말 점프력이 대단하네요. 체력이 바닥이 났을텐데, 엄청난 점프로 헤딩을 따냈고요. 그 공이 아쉽게 골대를 맞았지만 최민혁 선수 앞에 바로 떨어졌습니다. 최민혁 선수 왼발로 침착하게 공을 잡아 놓고 오른발 슛, 멋집니다. 경기는 이제 연장전으로 가겠네요. 학성고 선수들에게는 천금같은 골이지만 또 연장이네요. 이제는 정신력으로 뛰고 있습니다.”

[연장 후반 종료]

“연장전까지 2대 2. 승부를 내지 못하고 승부차기로 돌입합니다. 선수들 정말 대단합니다. 120분을 뛰었어요. 특히 학성고 선수들은 준준결승과 준결승 모두 연장전을 뛰었거든요. 정말 대단합니다. 모든 선수가 다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네요. 정말 멋진 승부입니다. 이런 승부를 고교 축구에서 보다니요. 이제 마지막 승부차기입니다.”


[승부차기 3:3]

“학성고는 첫 번째 키커의 공을 골키퍼가 막아냈고, 수원고는 두 번째 키커의 슛이 골대 크로스바를 맡고 나와 현재 승부차기 스코어는 3대 3입니다. 정말 팽팽합니다. 학성고의 다섯 번째 키커 최민혁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을 신중하게 내려 놓고 있습니다. 어디로 찰까요?”

“자, 갑니다. 슛”

“골!”

“네, 골키퍼를 완전히 속였네요. 4대 3으로 학성고가 앞서갑니다.”

“수원고의 다섯 번째 키커 이종현 선수, 슛, 골, 다시 4대 4가 됩니다.”

“이제 학성고의 여섯 번째 키커, 아, 수비수 박찬민 선수네요. 오늘 박찬민 선수 몸을 날려 여러차례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막아냈어요. 정말 육탄 방어였어요. 마지막 골까지 성공시킨다면 오늘 공수 최고의 활약일텐데요. 기대를 걸어봅니다.”

“네, 많이 지쳐 보입니다. 침착해야 해요.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눈에 힘을 줘야 해요.”

“자, 갑니다. 슛, 아, 골키퍼 선방이에요. 왼쪽 구석으로 잘 찼는데요. 수원고 김민철 선수 눈치를 채고 몸을 날렸습니다.”

“자, 이제 수원고의 여섯 번째 키커, 여기서 성공하면 수원고의 우승, 실패하면 다시 일곱 번째 키커로 갑니다. 여섯 번째 키커는 오늘 최민혁 선수를 철저하게 마크했던 정준식 선수입니다. 자, 갑니다. 슛! 골! 골입니다. 수원고가 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렇게 나의 대회는 준우승으로 끝이 났다.

킥오프4.jpeg


작가의 이전글[소설연재] 킥오프(Kick-Off)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