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오늘도 달리러 나왔다. 며칠 동안 매일 10킬로미터를 달렸더니 무릎이 뻐근한 듯하다. 다친 왼쪽 무릎에는 테이핑을 강하게 하고 무릎 보호대까지 착용했다. 사실 정확하게 무릎이 아픈지 안 아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릎에 무리가 될까 조심스럽다. 그러다 보니 달리는 속도를 올리기가 겁나고, 달리는 자세가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그래서인지 뛰고 나면 오른쪽 무릎이 예전 다쳤던 왼쪽 무릎보다 더 아픈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하루라도 빼먹으면 다시 달리기 힘들 것 같아 오늘도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내가 축구교실로 픽업해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차량 대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시간밖에 없다. 10킬로미터를 시속 6~7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달리면 두 시간 채 걸리지 않는다.
아카시아가 피었는지 아카시아꽃 향기가 바람에 날려 온다. 천천히 무릎의 통증을 살피면서 집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연꽃공원을 지나면서 연꽃을 피우려는 꽃봉우리를 보며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며 기분좋게 달리는데,
“헛, 둘, 헛, 둘, 고개 들고 다리를 더 올리고 뛰어야지, 다리 끌지 말고.”
갑자기 따릉따릉 하는 자전거 경적소리가 울리더니 뒤에서 또 그 영감탱이의 잔소리가 들린다.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의 음량을 올린다.
“마라톤 대회 나갈 거 아니잖아. 속도를 높여야지. 그렇게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슬슬 뛰면 언제 몸이 만들어지나?”
오늘은 유난히 잔소리가 길다. 도저히 못 참겠다. 오늘은 꼭 물어보리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저기요, 할아버지.”
자전거가 멈추지 않고 달려가 버린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다시 달린다.
“저기요, 할아버지.”
“응, 왜?”
“할아버지 뭐 하시는 분이세요?”
달리면서 말을 하려니 힘들다. 더구나 자전거의 속도에 맞춰 달려야 하다 보니 더 힘들다. 스마트워치를 봤더니 자전거의 속도가 시속 15킬로미터를 가리킨다. 너무 빠르다. 이 페이스로는 40분이면 1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속도이다. 내 숨이 거칠어진다.
“나? 보면 몰라? 자전거 타며 운동하는 동네 노인이지. 허허”
“헉, 헉, 그럼 자전거 타시면서 운동하시지, 헉, 헉, 왜 저만 보면 자꾸 달리라고 하세요.”
“혼자 자전거 타면 심심하잖아.”
“헉, 헉, 전 안 심심해요.”
“응 난 심심해. 같이 운동하면 좋잖아. 나는 스포츠도 혼자 하는 개인 운동보다 축구나 야구 같은 단체 운동이 좋아.”
“헉, 헉,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에요. 헉, 그럼 자전거 동호회 같은 거 하시면 되잖아요.”
“자, 발바닥 전체로 달리지 말고, 뒷발을 들고 발의 앞부분으로 착지해야지.”
“저도 알아요. 포어풋(Forefoot) 주법이 스프린터에 좋다는 걸요. 하지만 저 무릎이 안 좋아서요. 헉, 헉, 미들풋(middlefoot)으로 착지를 해야 무릎에 무리가 덜 가서요.”
“무릎? 다쳤어? 발의 앞부분으로 착지해야 무릎에 부담이 덜 가.”
“근데,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헉 헉”
“마라톤 나갈 것도 아니고, 어차피 빠른 스피드와 민첩성이 필요한 거면 속도 더 올려야지”
“제가 마라톤 나갈 것 아니란 거 어떻게 아세요?”
“자네 근육을 봐, 지근 근육보다 속근 근육이 훨 많구만. 왕년에 축구 좀 했겠는데?”
“하하하, 제 허벅지가 굵긴 하지만요, 헉 헉, 근육이라기보다는 지방입니다.”
“다시 그라운드에 설 생각이라면, 그냥 뛰지 말고 차라리 인터발로 뛰지 그래? 그게 도움이 돼.”
“네? 그라운드에 다시 서다니요?”
나는 멀어지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멈추었다. 저 영감탱이 뭐지? 내가 그라운드에 다시 선다고? 날 아나? 저 정도 나이가 들면 독심술도 생기나?
영감탱이의 자전거 속도 덕분에 평소 45분 정도 걸리던 소래생태공원 매점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소래생태공원 매점 옆 벤치에는 자전거 수리 봉사활동을 하시는 할아버지와 그 영감탱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소래생태공원 공용 주차장을 지나 소래포구 새우타워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하지만 잠시 멈추고 영감탱이 뒤쪽 벤치에 앉았다.
나만 보면 잔소리하던 영감탱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전거 수리 할아버지와 대화에 열중하고 계신다.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영감탱이를 바라보다 뭔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도 아니고 달리기를 하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화가 나는 일이었는데, 갑자기 나를 모른 척하시니 뭔가 섭섭하고 아쉬웠다. 나는 머쓱한 느낌이 들어 혼자 앉아 있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소래포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미들풋이 아니라 포어풋으로 달려보기 시작했다. 어라, 무릎이 안 아프네. 아냐, 내일이면 엄청 아파서 내일은 달리기를 못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