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이 만들어준 일상의 루틴들
조금 늦게 자취를 시작했어요.
밤샘이 일상인 건축학과에 다니다 보니 친구들은 다들 자취를 했는데, 저는 강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집에서 통학을 했어요. 그러다 늦바람이 들어서 스물아홉에 자취를 시작했는데, 너무 어색했어요. 엄마랑 장 볼 땐 장바구니 밑에 신쫄이 같은 주전부리를 몰래 넣고 모르는 척하는 게 제 특기였거든요. 근데 혼자 사니까 내가 장바구니에 뭘 몰래 넣어도 결국 제가 제 돈을 내야 하더라고요. 어이없지만 그게 참 허전했어요. 신쫄이도, 방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내가 나를 가꾸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가꾸어줄 수 없더라고요. 당연한 걸 알면서도 가끔은 힘이 빠져요.
도시락을 싸고부터 저녁이 조금 분주해졌어요.
전엔 오늘 저녁 해 먹고 설거지 끝나면 뒹굴뒹굴했는데, 이제는 다음날 점심 도시락 메뉴를 생각해야 하거든요. 내일은 또 뭘 싸가나. 일단 생각이 안 날 땐 쌀부터 씻어요. 손을 담가서 밥물을 맞추고, 윤기 좌르르 밥이 되라고 다시마도 두어 개 휙 얹어요. 밥만 먹을 수 있나요! 냉장고를 열어서 뭐가 있나, 쟤네들을 조합해서 무슨 반찬을 만들어갈까, 생각하다 보면 금방 냉장고에서 삐삐 소리가 나요. 레시피 정하고 재료들을 톡톡 썰어두고 냉동실 재료들은 해동을 해둬요. 준비를 마치고 행주로 물기를 싹싹 닦아내면 끝! 뜨듯한 옥수수차를 호로록 마시면서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듣고 있자면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어요.
스스로를 키우는 감각에 대해 생각합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러그를 팡팡 털고, 걸레를 빨아 바닥에 있는 먼지들을 싸악-싹 훔치고, 내일의 하와이안쉬림프를 위해 새우를 맛술과 소금 후추 바질 톡톡 재워서 냉장고에 쏙 넣어두는 것. 그리고 올해부터는 '아티스트 데이트'를 해볼 생각입니다. 연인과 데이트하듯 평소에 보고 싶었던 전시를, 그 옆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찾아 스스로를 대접하는 시간을 보내려고요. 자신의 일상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내가 가꾸어주는 만큼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오늘도 잘 키워봅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