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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민정 Dec 15. 2023

그림책 출간이 미뤄졌다, 엎어진 김에 울고 가자.

12월 둘째 주의 작업일지 




그림책 출간이 미뤄졌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그림책은 내 첫 그림책. 물론 지금까지 꼬물꼬물 저 혼자 만든 그림책은 엄청 많지만, 출판사랑 계약하고 책을 만드는 건 처음이니까. 한겨울 눈길을 헤치고 심부름 가던 아이에게 작은 눈사람이 궤변을 늘어놓는 이야기다. 올해(2023) 4월에 전시를 하고, 5월에 출판사랑 계약하고 장장 8개월을 달려왔다. 이제 마감이 코앞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아무래도-아무래도 눈사람은 겨울에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출간 연기를 제안했다. 


아이고. 머리야. 






물론 나도 지금의 그림들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저도 책을 연기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던 게 사실. 기간을 늘리면 조금 더 실력을 연마해 슥슥 삭삭 더 잘 그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보다 더 솔직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책을 준비하다 보니 수입이 없는 상황을 8개월이나 더 견딘다는 게 아득해졌다. 







아. 

이럴 땐 일단 맛있는 국밥을 먹자. 

엄마가 챙겨줘서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몸국. 

보글보글 끓여서 위에 파송송 고추 쫑쫑 고춧가루 깨까지 얹어서 

한 그릇 후루룩 마시면 등 따시고 배부르고 잠이 솔솔 온다. 











생각해 보면 한동안 '그려야 하는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그림보다, 그림책 장면을 수없이 다시 그리다 보니 그림에 조금 마음이 지쳤다. 가장 좋아하던 일을 숙제로 하는 기분. 그런 기분으로 그린 그림을 책으로 낸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 


그래. 

출간을 연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연기하는 장점을 최대한 즐겨보자. 







오랜만에 신나서 낙서도 하고. 

그래, 이 마음이었지. 

내가 그림을 그리던 마음. 







다른 작가님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사진은 수수진 작가님의 <나는 알람 없이 산다>. 덜 힘든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일 수 있다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괜히 마음에 위로가 닿는다. 나도 나한테 잘해줘야지. 







운동도 열심히. 

사실 운동 하고 나서 저 조그만 낙서를 하는 게 나에게는 더 즐거운 일이라, 초반에는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는데 어느 순간 이후로 선생님한테 들켰다. 나는 기록만 하고 몸으로 복습은 안 한다는 사실을... 앞으로는 몸으로도 복습해야지!







머리도 마음도 비우고 왔더니 얼래. 

갑자기 왜 이렇게 잘 그려지지? 왜 이렇게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지? 


정원샘(우리 그림책 학교 대장 선생님)이 제안해 주신 방법은, 마감이 미뤄졌다고 마냥 손 놓기보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정해 지켜보는 것. 선생님의 다정하고 지혜로운 조언 덕분에 나 혼자 2023년의 눈사람 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하튼, 

그림책이 미뤄진 덕분에 나에게는 한동안 또 눈이 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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