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자라고, 나도 자란다.
치지지지- 스팀 우유를 데우는 소리가 난다.
밖은 코가 떨어질 듯 춥지만 카페 안은 볕이 좋다. 아기를 성준이에게 맡겨두고 카페에 왔다. 안자이 미즈마루 책을 읽고,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쓴다. 오랜만에 문명인처럼 보내는 시간.
노트 한 권의 기록을 마치고 다시 첫 장을 펼친다.
지금이 2026년 2월 7일이니까, 자그마치 1년 3개월 전의 기록. 그때의 기록이 너무나도 까마득해 전생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젠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읽으면 또 전생 같겠지.
육아일지를 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내 전시를 보러 와주셨던 진희샘이 이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며 노트를 한 권 선물해 주셨다. 임신하고 입덧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강렬한 기억들이 참 많았는데 이 노트 저 노트에 단편적으로 기록을 해두다 보니 어떤 묶음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진희샘의 선물 덕분에 '노트도 생겼는데, 써볼까?' 하고 시작한 작업이 벌써 노트 한 권이라니. 새삼 한 권의 노트에 꾸준히 기록하는 것의 위대함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오래된 진실을 새기게 된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육아일지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제 아기가 285일을 지나가는 지금 다시 펼쳐보니 왠지 육아일지라는 단어가 민망하다. 육아를 하고 보니 겉보기에는 내가 아기를 키우는 것 같지만, 아기 덕분에 내가 자라는 게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육아일지보다는 나와 다르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찰일지'가 더 알맞지 않을까 싶다.
차근히,
빼곡한 노트를 다시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