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태명은 '회복이'이다.
다들 태명을 처음 들으면 오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왜 그런 이름을...?' 다시 되묻기도 했다. "해복이라고?"
보통 태명은 밝고, 사랑스럽고, 좋은 의미의 이름으로 짓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우리 부부가 지은 태명은 모두에게 낯설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회복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가 남다르다.
나는 회복이를 품기 전에, 한 아이를 품었었다. 그 아이의 태명은 꼬곰이다. 난생처음으로 찾아와 준 새로운 생명이 너무나 신기했다. 하리보 젤리 모양의 귀여운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꼬마곰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고 앞으로 만날 일을 기대하며 소망했다.
임신 초기에 나는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을 해왔지만, 삶에 지치고 막다른 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그들의 삶에 다가가는 것이 때로는 힘들었다. 우울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그들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복합적인 감정들이었다.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좋은 것들을 보고 느끼기는 어려웠다. 태교를 따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뱃속의 꼬곰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당시 정기적으로 노인 우울예방 프로그램을 나가야 했는데, 운전을 자주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사고가 날 뻔하기도 하고 깜짝 놀란 일도 여러 번이었다. 집요한 성격장애 민원인으로 인해 많이 시달리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입덧으로 인해 잘 먹지도 못했고, 일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곤 했다.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도 자주 까먹곤 했다. 무거운 짐도 아무 생각 없이 들기도 했고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티도 안나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되돌아보았을 때 이 모든 게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게 보내리라 기대했던 2018년 8월의 여름휴가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과 마주한 시간이 되었다.
휴가 첫날, 병원에 가기 전 평소 영양가 있게 챙겨 먹지 못해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백화점 지하에서 혼자 샤부샤부를 먹었었다. 먹으면서도 평소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었는데 아이가 내 말을 들었는지 미세한 떨림이 느껴져서 신기하기만 했는데... 그렇게 갑작스레 이별이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혼자 잘 검사하고 돌아오겠다고 씩씩하게 들어섰던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검사 결과를 듣고 신랑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 분명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데.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이별을 해야 한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꿈은 아니겠지. 누군가가 나에게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급히 반차를 내고 달려온 신랑을 보고도 놀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 이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시간이 흐르고 나는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봉긋했던 배는 홀쭉 가라앉았다. 아무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요함만이 감돌뿐이다.
내가 너를 품고, 느꼈던 그 순간들도 다 꿈이었을까.. 너의 떨림과 온기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이 허하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말도, 위로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함이 감도는 어두운 강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듣기 싫고, 보기 싫다.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음에 거부감이 들었다.
아이가 떠난 뒤 나에겐 후회와 자책만이 남았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만 머리에 맴돌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 마음속에는 의문 투성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주어졌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아이를 지켜주실 수 있었을 텐데 왜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했나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만 되풀이하고, 내가 믿는 신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혹시나 일을 한 것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까, 차라리 그만뒀다면 아이를 잃지 않았을까?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한 채 누워있다가, 시간 되면 의무적으로 식사하고 다시 멍하니 있곤 했다. 몸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안정되질 못했다. 아이가 떠나고 나의 시간은 멈춰있는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간다. 몸조리를 해야 하는 상황조차도 부정하고 싶었다.
힘든 순간에 곁을 지켜준 남편과 친정가족들 앞에서도 툭하면 눈물이 흐르고, 부정적인 말만 되풀이하며 나약한 모습만 보였다. 그리고 회복되지 못한 채 휴가는 끝이 났다. 나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할 것 같고 주변에서도 걱정스러워해서 당분간은 친정집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
출근을 하니 다들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 눈들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일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깊은 우울감에 잠식당할 것 같았다. 내 마음과 생각을 애써 억누르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며 세뇌시키듯이 말하곤 했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아이 생각이 나면 뛰쳐나가서 혼자 펑펑 울고 들어오기도 했다. 빨간 토끼눈이 된 채로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급한 통화하는 척도 하고, 괜찮은 척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버티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혔나 보다. 다행히도 아주 천천히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다. 시간이 약은 맞나 보다.
신랑과 꼬곰이 이야기를 할 때면 꼬곰이가 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꼬곰이가 먼저 천국에 가 있으니까, 나중에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가자. 꼬곰이가 우리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게."
꽉 껴안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낸 우리의 첫 아이를 그리워하며, 신랑과 이야기하다가도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이미 내게 주어진 고통에 대한 자책과 원망은 그만하기로 했다. '왜'라는 질문은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며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현재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 아이도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우리를 보고 있을 테니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용기를 내었고 하나님께서는 또 새로운 생명을 우리 부부에게 허락하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에게 와준 아이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우리는 회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 부부에게 회복이 되어주고, 세상을 회복시킬 아이, 회복이"
회복이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었고, 무사히 세상에 나와 빛을 봤다. 그렇게 우리와 만났다. 나는 회복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울컥해서 펑펑 울었다. 회복이의 탄생과 함께 우리는 부부에서 가족이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꼬곰이의 공간이 소중히 자리 잡고 있다. 내 평생에 잊히지 않을 우리 첫 아이. 나는 아이의 초음파 사진과 써왔던 일기들을 버리지 않았다. 꼬곰이도 엄연한 우리의 자녀이고 훗날 회복이가 크면 꼬곰이의 존재를 이야기해주고 싶다. 꼬곰이와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아이와 이별을 하게 되었던 그 과정들이 있었기에, 현재 회복이와의 작은 일상들 또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건 모두 다 꼬곰이 덕분이다.
하늘의 별이 된 우리 꼬곰이. 엄마는 너와 함께한 6개월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우리, 훗날 웃으며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