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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an 14. 2024

하이브 심리상담 고문의 조언, 동감하셨나요?

케이팝 육성 시스템과 청소년 인권


최근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캡처본이 하나 있다. 업로드된 위의 사진이 그것인데, 캡처본을 요약하자면 하이브의 심리 상담 고문이 고민을 상담하는 연습생에게 어떤 조언을 주는지에 관한 인터뷰이다. 전체 인터뷰를 확인할 수 없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내용의 답변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편적인 캡처본에 대한 아이돌 팬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대체로 직업을 가진 누구라도 들어야 하는 좋은 조언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혹자는 어린 나이의 연습생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조언인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문득 이 캡처본은 단편적인 인터뷰이지만, 케이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짧은 캡처본에 대한 반응이 곧 케이팝 업계를 향한 대중과 팬덤의 시선일지 모른다.



동방신기가 2세대 아이돌의 포문을 열면서, 케이팝을 대표하는 독특한 육성 시스템 역시 자리를 잡아갔다. 한 회사가 데뷔 전의 다수의 가수 지망생들을 ‘연습생’ 이라는 이름을 붙여 트레이닝하는 방식은 케이팝을 대표하는 문화이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회사의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서 외모와 사생활을 관리받기 때문에 케이팝 아이돌들이 지금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자명한 사실이다. 자본, 마케팅, 기획 등 다양한 영역이 케이팝의 장점으로 꼽히지만, 케이팝의 명(明)을 만들어낸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이 육성 시스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꽤 오래 전부터 케이팝의 암(暗)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아이돌 평균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데뷔하는 아이돌의 수가 늘어날수록 연습생들의 평균 나이대도 낮아졌고, 그 수도 늘어났다. 초등학생 즈음에는 회사에 들어가 연습생을 시작해야 10대 후반에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다는 것은 업계에서는 일종의 불문율이 되었으며, 2019년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업계 추산 연습생은 약 100만 명일 정도로 그 수가 증가했다. 이렇게 연습생들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연습 기간은 길어지자, 그 과정이 청소년 인권 침해로 인식되는 일 역시 늘어났다.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이 이른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2023년 12월, 서울특별시 청소년 문화예술인의 권익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체중감량이나 성형 강요 등, 아이돌 트레이닝 과정에서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막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국 국적의 멤버들은 모두 자퇴한 엔시티 드림

체중이나 성형과 같이, 외모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또 지적받는 것이 있다. 연습생들이 통상의 교육 과정을 겪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로 꼽힌다. 어린 나이부터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한 아이돌 멤버를 찾는 것은 실제로 그리 어렵지 않다. 데뷔해 문제 없이 연예인으로서 자리를 잡는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데뷔에 실패하거나, 데뷔했다 하더라도 높은 인지도를 갖지 못한다면 새로운 길을 찾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검정고시를 통과한다 할지라도, 통상 청소년 시기에 배울 수 있는 생활지식은 물론, 의무적으로 필요한 기초 상식을 익히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예인이 아닌 다른 직업에 대해 알아보거나 이해할 수 있을만한 시간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인권적인 측면이 아니라, 사업적으로 보아도 상술한 문제들은 리스크로 인식된다. 케이팝 산업이 해외에 진출해 덩치를 키우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회사에서 학대를 받았음을 고백하는 아이돌 사례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일부 연습생 출신들이 혹독한 시스템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이 문제는 더욱 불씨를 키웠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문화·정서상 우리나라에 비해 인권 관련 문제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가진 해외 팬덤은 더욱 냉랭한 시선을 보내왔다.



SM 루키즈 중 하나였던 '헤린'

팬덤 뿐만 아니라 해외 연습생 수급에도 차질을 빚는다. 해외를 타겟으로 하는 케이팝 그룹이 많아지면서, 해외 국적의 멤버를 포함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자라 정서적으로 케이팝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해외 국적의 연습생들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해외 시장의 소비자들을 노려야 하는 현재의 케이팝 시장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고 있는 연습생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연습생 수급에 걸림돌이 되고, 나아가 사업 리스크로서 기능한다. 그래서인지, 대형 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심리 상담이나 기초 의무 교육을 커리큘럼에 추가하며 이런 문제에 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다시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하이브에 심리상담 고문이 생긴 이유도 위에서 나열한 상황과 연결된다. 미성숙할 수밖에 없는 미성년자가 대부분인 연습생들에게 멘탈 케어를 제공하기 위해 심리상담 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었을 테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의 일부는 심리상담 고문이라는 사람이 제공하는 상담이 미성숙한 정신 상태를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지나치게 냉정한 스탠스라고 반응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조언이라는 반응도 역시 보인다. 결국 대중과 팬덤의 반응을 모아보면 이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아이돌 산업에서의 육성 시스템은 성인이라면 몰라도,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에겐 가혹하다는 것이다. 결국 엔터테인먼트사가 아무리 교육과 심리 상담을 커리큘럼에 포함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통상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데뷔하는 현재의 구조를 바꾸거나, 엄청난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한, 케이팝의 육성 시스템이 청소년 연습생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인식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로 인해 일어나는 리스크도 마찬가지로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엔터테인먼트는 이 리스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정말로 데뷔하는 아이돌들의 평균 연령대를 높여야 할까? 혹은 엄격한 트레이닝 시스템을 폐기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그를 포기하는 순간, 곧바로 케이팝의 경쟁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리스크를 대폭 줄이는 방법이 있다. 소속사가 곧 학교가 되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를 일부 실현한 사례도 있다. 2023년, SM엔터테인먼트는 종로학원, 에스팀과 함께 ‘SM Universe’를 개원했다.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다소 복잡해 학원의 방식을 택했으나, 실질적 커리큘럼은 학교와 가깝게 운영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커리큘럼이 기획되어 있고, 6시 이후로는 야간 자율학습이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원생들에게는 자퇴가 필수적이다. 대신, 기초적인 교육을 커리큘럼에 넣고 검정고시 응시를 돕고 있다. 다소 현실감이 없어보이지만, 이렇게 엔터테인먼트사 단일, 혹은 여럿이 모여 예술 고등학교 등을 설립해 연습생들을 입학시키는 방식으로 육성 시스템을 변경하는 것도 일종의 리스크를 방어하는 방법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즉각 근본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에 필요한 비용이나 시간이 엄청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심리상담이 청소년에게는 부적절하거나, 많은 수의 연습생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하고, 콘텐츠진흥원에서 관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그것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연습생들이 평균의 10대 청소년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있음도 고려 대상이다. 그들은 이미 사회에 진출한 사회인이면서도 미성숙한 청소년이다.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그에 맞는 상담을 정립해두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필자 역시 업계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연습생 시스템을 케이팝의 성공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을 도무지 떠올리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러나 점점 더 인권적 감수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대에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이 업계가 가진 이 시스템은 꼭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껴안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직업인을 떠나 사람으로서 이 시스템을 바라보면, 미성숙한 인격에게는 과도한 처사로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다소 현실성이 없더라도, 비용이 크게 들더라도, 사업의 더 먼 미래를 고려하며 새로운 모델을 생각해볼 필요는 분명하다고 말해보고 싶다.




By. 이하보

https://brunch.co.kr/@hab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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